묻지 않는 공감
잠깐만, 지금 최주는 왜 저기 서서 말을 하는 거야?
출발하려는 차를 멈춰 세웠다.
차 안에 있는 우리는 아주 작은 말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끝날 모습이 아니다. 자기 차로 가지 않고 그대로 서서 계속 입을 움직인다.
뭔가 진짜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운전석 창문을 내린다. 최주가 다가온다.
최주, 아직 말이 안 끝났던 거야?
한두 명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우리는 차에 있고, 최주는 혼자 남아 이야기하는 상황이 왜 일어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최주는 투명하다.
입을 열면 어디서 자랐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아직 말이 다 안 끝났는데......왜 먼저 다 타버렸대
그래서 어디로 오라고.......
눈이 잘 안 보이는 나 같은 사람은 산에 가면 땅만 보고 간다.
넘어질 수 있으니 땅을 보고 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걷다가 뒤 돌아 일행들 오는 상황을 살핀다.
날이 추우면 걸음은 더 빨라진다.
최주는 헉헉 힘들단다. 통통한 볼이 더 볼록해진 것 같다.
최주는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충청도 특유의 친근함으로 잘 섞였다.
실없는 농담도 자주 던진다. 나 같은 사람은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또 던진다.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시도한다.
산에서 내려와 출발 전에 차 트렁크를 열어 신고 온 양말 발바닥을 턴다. 눈보다 더 하얄 것 같은 뽀얀 흰 양말이 한눈에 들어온다.
운동화를 갈아신고도 한참 후에 출발한다. 말도 행동도 느긋하다.
집에 있으면 핸드폰이랑 놀면서 시간은 잘 가지만 남는 게 없어 산이라도 가려고 왔단다.
최주랑 두 번째 산행이다.
처음 최주가 온 날, 최주는 뒤따라 걸었다.
사람들 말소리를 듣는 것도 재밌다며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온 오늘, 남자 동행은 최주 하나다.
여자 셋에 남자 하나.
최주가 남자가 없는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최주 답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랑 같다.
나는 린디님과 앞서 걸었다. 최주는 여전히 뒤따라왔다.
땅을 보며 정상까지 가는 동안 린디님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앞서며 뒤서며 함께 걸었다.
내려올 때 린디님은 산에 다니게 된 이야기를 꺼냈다.
식사를 못 하고 먼저 간다는 린디님 뒷모습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묻지 않은 것.
묻지 않고 듣는 것.
산에 갈래?
외에는 서로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 사람들이 만드는 공감은 어떤 걸까.
묻지 않으면 우린 듣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다.
듣는 공감.
정상을 보고 출발지점까지 한 시간 동안 함께 걷다 보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온다.
말을 하지 않아도 닿는다.
우리는 묻지 않는 공감으로 서로의 마음을 연다.
내가 나를 말하지 않아도 본다. 묻지 않음으로 듣는다.
며칠 뒤 조금 더 가파른 산에 가기로 했다.
최주는 또 같이 간다.
이번에도 여자 셋에 남자는 최주 한 명이다.
최주는 골프 연습장에 가도 되고, 다른 약속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어도 우리랑 산에 간다.
함께 걷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말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헤치지 않으면서 겹치는 결을 찾아낸다.
나를 덮지 않고, 내가 덮지 않는 관계.
그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사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