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

행정과 사람을 잇는 다리

by 우리동네지영씨

결심, 섰어요?


내가 서 있는데,

내가 섰는지 묻는다.


설 때 됐지? 이제 넌 준비 된 것 같은데.

경희씨 눈빛이 그런다.

내가 서 있을 거라고 확신한 사람 같다.


내가 경희씨를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경희씨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그냥 집회에 나와 곁에 서서 응원해주는 사람으로만 본 게 아니다.

나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경희씨는 자신을 중증장애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귀가 트여 경희씨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 뒤로 경희씨를 ‘장애인’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함께 집회 하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셔도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전동휠체어가 들어가기 편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 불편한 짐을 들어주는 것뿐이다.


가서 머릿수 채우자

처음 생각은 이랬다.

왜 나와 있는지 사정은 잘 몰랐다.

거기 사람이 있으니 한 번이라도 함께 서주자.

사람이 있지만, 사람이 없는 곳.

한 명이라도 절실하게 사람이 필요한 곳.

그곳에 간다. 시작은 단순하다.


경희씨는 20일째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시의회 정문에서 집회를 한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예산 배정을 요구하고 있다.

경희씨와 한 시간 함께 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출근 시간.

한참이 지나도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쌍둥이 유모차가 지나간다. 항상 같은 시간 같은 방향에서 나타난다.

유모차를 밀며 가는 젊은 아빠 발걸음이 바쁘다.

말을 걸어보려다 얼른 삼킨다.

다음날 또 기다린다. 이렇게 길 위에서 정이 든다.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며 담소를 나누는 한 무리가 다가온다. 실컷 아는 척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평소에도 이렇게 나와봐요?

경희씨가 고개를 흔든다.


장애인의 집회에 비장애인이 함께 선다는 것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본다.

그들만의 집회가 내가 옆에 서 있음으로 우리의 일로 변한다.

이제 이건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전체의 일이다.


젊은 쌍둥이 아빠가 아이 하나만 태운 유모차를 밀며 온다.

여전히 바쁜 걸음이지만 이번에는 말을 건넨다.

“오늘은 왜 하나에요?”

“아파서 엄마랑 병원 갔어요. 이따 엄마랑 올거에요.”

잠시 뒤 유모차가 나타난다. 아이를 하나만 태웠다.

유모차 뒤에서 낯익은 어린이집 가방이 달랑거린다.


버스로 출근하는 직원이 온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고개를 숙인다.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지나쳐

우리가 없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불편한 1분.


서로 잘못한 게 없는데 우린 서로 편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서로 눈이 맞는다.

“관심 가져주세요.”

들고 있는 푯말을 흔든다. 고개를 끄덕이며 흘깃 푯말을 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계속 인사를 한다. 보든, 안 보든 일단 두드린다.

‘안녕하세요’ 가 이런 일을 한다고? 나도 놀랍다.


나날이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다.

출근하는 직원들, 지나가는 시민들, 회의하러 오는 사람들, 음식 배달온 라이더.

지나가던 직원이 자기가 마시려고 들고 온 허브티를 건네준다. 하나밖에 없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경희씨가 말을 걸면 사람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멈춰서 경희씨 말을 들어야 하지만 내가 인사를 하면 사람들은 다르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불편한 1분을 깨고 나니, 멈춰서서 듣는 사람이 생긴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이제

서 있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다.


경희씨는 내 대답을 기다린다.

나는 피할 수 없음을 느낀다.

묻는 사람은 많았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보다 나에게 답하는 게 먼저였다.

그때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넘겼다.


이번엔 나도 대답 하고 싶었다.

“네, 결심 섰어요.”

경희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힘껏 도울게요.”


나의 첫 번째 지지자.


무엇이 경희씨를 길 위에 서게 했는가.

경희씨는 자신의 아침 시간과 점심시간을 거리에서 보내고 있다.

그 시간을 다시 경희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길 위에 서서 함께 보낸 시간은 나의 쓰임을 바꾸었다.

단지 이동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장애인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약자를 돕는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행정과 사람의 단절.

그 틈이 결국 사람을 거리로 나오게 한다.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내가 할 일이 생겼다.


행정과 사람 사이의 틈을 잇는 것.

이게 나의 쓸모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