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보는 일
난방이 안 된다. 밥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밥 생각이 안 난다.
빛나지 않는 자리에 서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야 하니까 비울 수가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리를 지킨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배고플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밥을 못 먹은 사람이, 또 있다.
자리를 지키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도 누구보다 간절하다.
출판 기념회는 오후 2시 시작이지만 우린 11시에 모였다.
우리가 일찌감치 현장에서 움직이는 게 든든했을까.
우리의 모든 초점은 주인공이 빛나게 하는 것에 있다.
동선에서 화환을 치웠다.
우리는 못 먹었어도 일하는 스텝들의 식사를 챙겼다.
노한씨는 다친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불편한 다리로 행사장 주차가 혹시 문제가 생길까 여러 번 상태를 확인했다.
사진작가에게 부탁의 말씀을 전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안내했다.
포토월에서 동선을 정리했고, 사진 찍느라 공연에 늦지 않도록 시간을 맞췄다.
행사를 돕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드렸다.
부모님을 편한 자리로 모셨다.
돌아가는 손님들을 배웅했다.
우리는 우리가 방해되지 않게 구석 자리에 모였다.
쓰레기를 치우고, 공연장 소리가 밖으로 새어 민원이 생길까 봐 수시로 들여다봤다.
정작 공연은 한 장면도 보지 못했다.
몇 분을 배웅하고 돌아서니 황유씨가 쪼그리고 바닥을 닦고 있다.
누군가 커피 밸브를 잠그지 않아 바닥이 커피로 흥건했다.
커피는 테이블보를 타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추운 데서 밥도 못 먹고 쪼그리고 바닥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짠하다.
제가 뒤쪽에 있어서 흐르는 걸 못봤어요.
황유씨는 자기 잘못이 아닌데 변명하듯 말한다.
그 말이 고스란히 들어와 박힌다.
얼른 내가 쪼그렸다. 젖은 채 바닥에 흩어진 휴지를 걷어 버렸다. 비가 새듯 커피가 한 방울씩 계속 떨어진다. 종이컵에 휴지 한 장을 넣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빗방울 받는 양동이처럼.
이호씨 앞에 스텝이 먹고 남긴 식은 김밥 두 줄을 꺼내놨다.
밖으로 보이면 돌아가시는 손님들 눈에 띌까 펼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서 먹었다.
사람으로 꽉 차 붐비는 안내데스크 로비에서 누군가 부른다.
“이호야, 이호”
눈살이 찌그러든다. 거슬린다.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늘 이호씨를 찾는다.
서너 번 더 이호씨를 부르는 소리가 이어진다.
기회를 엿보다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호’라고 안 하시면 좋겠어요.
우리 위원님이에요.
아; 네. 어릴 때부터 봐서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새침한 표정. 당황하고 못마땅 하겠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호님 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이호님한테 한 번도 반말해본 적이 없어요.
이호씨는 아들보다 세 살 위다.
의자도 없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그대로 서서 지켰다.
우리는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었다.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했다.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지막 손님까지 다 가시고 난 뒤, 책을 한 권씩 손에 들었다.
줄을 서서 사인을 받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그 사진 안에만 들어있다.
이제 우리 일은 끝났다.
돌아보니 황유씨는 아침에 뽀송하던 얼굴이 많이 상했다.
차를 가져온 사람이 없었다. 집에서 오기 편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안다. 주차장이 좁아 방해가 될까 봐 버스를 타고 왔겠지. 같은 마음이다.
집에 돌아와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힘들었을 시간을 함께 버텨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켰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서로 격려했다.
사람을 행동으로 읽는다. 마음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해진다.
구석 끝에 서 있던 시간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지, 함께한 사람들은 안다.
말하지 않아도, 티 내지 않아도 느낀다.
우리는 이렇게 한고비를 같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