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킨다는 것

몸으로, 기록으로

by 우리동네지영씨

어깨가 춥다.


평소와 다르다. 팔이 시리다. 뭔가 잘못됐다.

오늘 일어나 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알람이 울리면 ‘5분만 더’ 늑장은 사치다.

벌떡 일어나 대충 씻는다.

얇은 양말, 두툼한 양말을 꺼내 신는다.

내복 위에 기모가 든 바지를 입는다.

기모가 든 바람막이를 입는다.

얇은 핑크색 패딩을.....어? 이걸 안 입었다.

추위는 내 몸에 무엇이 있는지 잊고 있던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하루하루가 쌓이자 준비시간이 단축됐다.

가방을 따로 챙기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롱패딩 양쪽 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겨 넣고 몸만 빠져나온다.

아침 6시 반. 깜깜하다.


한국GM세종물류센터.

공단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불빛을 살핀다.

어둠에서 달라진 낌새를 알아채는데 불빛이 최고다.

평소보다 더 밝은지, 평소에 보지 못한 색들이 있는지.


오늘은 입구에 경찰차가 있다.

얼른 물류센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거기는 똑같다. 그렇다면 집회장소다.

언덕을 올라 집회장소가 보인다.

평소 차량 안내를 하는 빨간 불빛 막대기들이 보인다.

그 옆에 보지 못한 책 불빛이 반짝인다. 경찰차다.


어제와 다르다.

가까이 갈수록 긴장한다.

지난주에 경찰은 체증한다며 카메라를 세워뒀다.

오늘은 교통 불편 안내 글씨가 돌아간다.

집회가 방해되지 않도록 현장을 지키는 거다.


불빛으로 현장을 확인한다면 이번에는 질문을 한다.

특이사항 없어요?


집회가 시작되고 조금 안정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묻는다.

내가 현장에서 돌아간 이후, 다시 돌아온 아침까지 별일이 없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다.


특이사항은 없었으면 하는 일과 있었으면 하는 일이 있다.

모두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아침마다 출근하듯 출근저지 집회에 가고 있다.

고단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려 들어갔다.

2주가 넘어가니 이게 내 일이거니 생각한다.


물을 끓이고 유자차를 탄다.

김장철에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물론 김장철이니 김장을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유자청을 만드는 일이다.

유자 생과가 이쯤에만 나오기 때문에 김장과 겹쳐도 미룰 수가 없다.

올해는 작년보다 두 배 더 많은 양을 담았다.

유자청을 담으면 맛이 어떤지 볼 때 한번을 마시고 그 뒤로 먹는 일이 없다.

주변에 나눠주고 혹시 몰라서 한 병정도 남겨둔다.


유자 생과를 씻고 속과 껍질을 분리한다.

속은 씨를 발라내고 갈아둔다. 껍질은 채를 썬다. 속과 겉을 설탕과 버무리면 끝.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제법 시간이 든다.


유자차 향이 상큼하다.

날마다 새벽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춥고 기침이 나온다.

당장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메가 비타민C를 두 봉 털어 넣는다.


비타민C 중독은 없겠지?


비상조치로 입에 대지 않던 유자차를 한잔 다 마신다.

껍질도 다 씹어 먹는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는 게, 마치 특효약인 것처럼.

유자차와 메가 비타민C가 방패가 될 수 있길 바라면서 또 집을 나선다.


살면서 양말을 두 겹으로 신어본 적이 없다.

한겨울에도 얇은 스타킹에 구두를 싣고 다녔다.

패딩이 있어도 코트를 입었고, 옷을 껴입으면 몸이 둔하니 속에는 얇은 블라우스를 입었다.

얇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내복은 입어본 적이 없다.

겨울에도 샤스커트가 좋았다.

장갑도 끼지 않고, 핫팩도 쓰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롱패딩은 기본이고, 옷에 붙은 털 달린 모자를 꼭 쓴다. 그것도 모자라 목도리는 두 바퀴 감는다. 현장은 유난히 바람이 분다.

양손에 장갑을 껴도 손가락에서 반응이 온다. 노동자가 건네준 핫팩을 가지런히 접어 장갑에 끼운다.

이은이 준 털부츠는 필수품이다. 늘 겨울이 오기 전에 굽을 손봤던 그 구두는 생각도 안 난다.


차에는 검은 코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현장에 들렀다가 다른 자리에 갈 때면 코트를 입어야 한다.

패딩을 벗고 코트를 입을 때면 새삼 패딩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느낀다.

아침집회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이 있는 날에는 두 번도 다녔다.

보름 동안 기사를 열 편 썼다.

휴대전화의 내비게이션은 베터리를 축낼 뿐이다. 이제 현장까지 가는 길은 눈에 훤하다.


유자차는 나 혼자 두통을 비웠다.

아침집회 말고 일정이 없는 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며칠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술자리에서도 아침집회를 가야 한다고 일찍 일어났다.

자다가 알람을 안 맞춘 것 같은 날엔 새벽에 어김없이 깼다.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집회를 기록하러 나갔다.


자신의 삶과 가족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길 위에 선 사람들.


나는 기록으로 그 사람들을 지킨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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