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내게 남은 것

by 우리동네지영씨

허벅지가 얼얼하다.

내복을 입고, 두꺼운 기모바지를 입어본다. 무릎까지 덮는 롱패딩을 입는다.

바람이 불어 살짝 옷이 젖혀지면 어김없이 허벅지가 시리다.


전기장판을 틀고 양모 이불을 덮고 엎어져 본다.

등대고 누우면 따듯하던데

허벅지는 열감이 없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춥지 않아도 두 손으로 허벅지를 자꾸 문지른다.

손으로 쓸고 나면 온기가 남았다가 멈추면 또 시리다.


서울 갔다 내려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아이 추워

하는 말에 옆 사람이 놀란다.

놀란 옆 사람 때문에 나도 놀란다.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쓰고도 춥다고 하니 외투도 입지 않은 그가 놀란 것이고,

생각 없이 뱉은 말이라 놀란 그를 보며 내가 춥다는 말을 자연스레 달고 지낸다는 걸 그제야 인식하여 놀랐다.

전화가 왔다. 한국GM 노동자 측이다.


요즘 왜 안 오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2주째 못 가고 있다. 몸에서 찬 기운이 빠지지 않는다.

왜 하필 허벅지냐고.


안 그래도 운동 안 하면 가장 먼저 근육 빠지는 부위인데.

다시 뛰려고 동호회 게시판을 들여다본다.

역시 추위가 무색하게 여전히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

그런데.

지금은 안 되겠다. 바로 포기한다.



한 시간 넘게 뛴 후기에 사진이 올라왔다.

모자며 고글이며 옷이며 다 하얗게 얼어붙었다. 뛰고 나니 그런 모습이란다. 북극 같다.

친구들 등산 사진이 올라온다.

겨울 설산.

풍경에 나도 상쾌하다.

아직 무리다.


가민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게 얼마짜린데 어디다 둔거냐.

질책하며 집안을 뒤진다.

원 자리는 식탁이다. 지난 12월 김장 준비하느라 치워둔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고

집안을 더듬고

화장품 사이에 고대로 있는 시계를 찾았다.

가민은 어딜 가지 못하지. 충전 준비를 하고 전원을 켠다.

파란 화면에 익숙한 숫자들이 나타난다. 모든 게 그대로 멈춰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정지했던 일상에

나만 다시 돌아왔다.


유난히 여유롭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고구마를 씻어서 직화 냄비에 올린다.

멸치 육수에 다시마도 큼지막한 거로 넣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던 시사 유튜브 채널을 켜둔다. 얼마 만인가.


이제 한국GM 사태는 협의가 되어 노동자들의 집회는 끝났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내가 한 일은 고스란히 허벅지에 남았다.


이제 일상이다.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간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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