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大대머리 혐오의 시대에 살면서...

조르나르호르제르의 별별사람, 별별생각

by 조르나르호르제르

‘건조기’라는 최첨단 제품이 우리 집에 자리를 잡은 뒤부터, 웬만한 옷들은 건조기에 보관되어 있다. 세탁물이 다 마르면 꺼내서 곱게 개어 옷장에 넣어주는 제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다.


늘 그렇듯, 오늘 아침에도 난 건조기에 아무렇게나 섞여 있는 옷들 사이에서 양말과 팬티 등을 꺼내며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양말 하나를 떨어뜨렸다. 내가 찾던 양말이 아니었기에 허리를 숙여 집었고, 다시 건조기에 넣으려고 허리를 펴는 순간—열려 있던 건조기 문짝에 정수리 우측을 아주 세게 박아버렸다.

순간 별이 번쩍하고, 입에서는 살짝 피 맛이 났다. 나는 충돌 부위를 움켜쥐었고, 동시에 건조기 문짝을 바라봤다. "건조기가 부서진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망할 자본주의 시대에는 비싼 물건이 내 안위만큼이나 걱정되는 법인가.


비몽사몽 출근 준비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두피에서 피가 났겠군."
"머리카락이 있어서 충격을 완화해 준 거구만."


출근과 동시에 머리카락에 대해 좀 찾아봤다. 인간의 두피에는 평균 10만 가닥의 머리카락이 있다고 한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두피와 두뇌를 보호하고,

더위와 추위 같은 기후 자극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하며,

체온을 조절하고,

체내에 흡수된 중금속을 배출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탈모인들은 풍성한 사람들보다 두피 보호에 불리할 텐데, 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진화에서 도태되지 않았을까?’ 자연선택에 의해 대머리는 이미 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대머리인 수컷은 암컷들의 선택을 받는 데도 불리할 것이고, 종족 번식에도 유리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대머리 유전자는 꾸준히 자손을 퍼뜨리며 생존해 왔다. ’도대체 왜?‘


과거에는 대머리가 오히려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해서 번식에 유리했다고도 하고, 머리카락이 없는 만큼 필요한 에너지를 다른 생리적 기능에 사용해서 생존에 유리했다고도 하고 생식연령 이후에 발현되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영향을 덜 받았다고도 하더라.


아무튼 전 세계 매스미디어는 대(大) 대머리 혐오를 부추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대머리를 조롱하는 것이 유머 코드로 사용된다.
"옆머리만 남겨서 반대편으로 넘긴다."
"머리를 감을 때 여자처럼 옆으로 감는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영화 속 악당들은 유독 대머리 비율이 높다. 현실에서는 결혼 상대 기피 요인 1위가 대머리라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었고, 직장에서 대머리라는 이유로 고용 차별을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잘 나가는 남성 캐릭터를 묘사할 때 대머리 남성을 모델로 삼는 경우는 0%, 단 한 번도 없다. 많은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멸시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살고 있지만, ‘대혐(대머리 혐오)’이라는 단어는 아직 만들어지지조차 않았다. 모두가 혐오하면서도 정작 이를 혐오라고 부르지 않는 현실.


나도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주변의 권유로 탈모약을 먹는다.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서다. 탈모인은 정기적으로 약을 구입해야 하므로 풍성한 사람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불리한 것이다. 망할.


이 대(大)대머리혐오 시대를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대머리 혐오는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월요일 아침 일기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광훈의 쓸모 : 보수는 왜 종교에 집착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