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천재 조르나르호르제르
기소(起訴)란 검사가 형사 사건에 대해 죄를 인정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검사만이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기소 독점주의’다. 우리나라 검찰이 가지고 있는 많은 권한들 중에서 기소권이 있다 하면 보통 사람들의 인식에 조금은 생소하고 심지어는 무미건조하게도 들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라는 말이 있다. 기소를 당하기만 해도 그때부터 그 사람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뀐다. 기소를 당한 그 순간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을 몇 년이고 지속해야 한다. 평범했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재판을 준비하며 모아둔 재산은 눈 녹듯 사라진다. 가정이 해체되기도 하고 건강도 망가진다. 정치인이라면 정치생명이 끝장나고, 기업인이라면 회사가 무너진다.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검찰의 ‘기소권’은 곧 ‘생사여탈권’이다.
검찰 기소는 할 때보다 하지 않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으면 재판도 없다. 마땅히 기소해야 할 일을 기소하지 않아도 될 일로 판단하면 그 일은 세상에 없는 일이 된다. 이 모든 판단은 검사가 한다. 이게 ‘기소 편의주의’다. 누군가의 목숨 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무시무시한 권한, 돈 주고는 결코 살 수 없는 절대반지다. 저명인사, 유명인, 정치인, 재벌 할 것 없이 검사 앞에서 작아지는 이유다.
기소의 무서움은 일찍이 윤석열도 경고한 바 있다.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기소하지 않고,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2021년 11월 25일 ‘국민의힘 서울캠퍼스 개강 총회’ 행사에서 대학생들과 대화 中)
기소는 단순히 누군가를 법정에 세우는 게 아니다. 기소는 법정에서 다뤄질 사건의 범위를 정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검사가 공소장의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사건을 부각할 수도, 숨길 수도 있다. 검사가 “요만큼”이라고 설정하면 법원은 “요만큼”만 심판할 수밖에 없다. 범죄 사실이 더 있어도, 반대로 없어도 재판은 검찰이 설정한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공소장(公訴狀)은 검사가 기소할 때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이다. 검사가 법원에 공소장을 제출함으로써 형사재판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공소장 안에는 작성한 검사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소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했는지, 피고인의 범죄 혐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공범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 등등. 특수부 검사들은 범죄 혐의와 크게 관련 없는 피고인의 성장 배경,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맺게 된 과정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장난질을 치기도 한다. 범죄 혐의와 관계없는 서술을 통해 공소장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건을 예단하고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됐다. 당연히, 해당 공소장은 검찰이 작성했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검찰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의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내란을 일으킨 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이다. 윤석열이 기소당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검찰이 피의자 윤석열을 어떻게 얼마만큼의 범위로 어떻게 기소했는지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거기엔 이 내란 사태에 대한 검찰의 태도와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음편에 계속, 윤석열 공소장 전문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