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조용한 혁명이다.
교육이 잘못되었고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떠올린 방법은 책을 내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된 소설책을 많이 접했지만, 독서가 취미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책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마당에 글쓰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이라는 방법을 떠올린 일은 이상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 집에 책이 정말 많았다. 부모님이 읽으시는 책도 있었지만, 누나와 나를 위한 책이 많았다. <Why> 시리즈와 같은 학습만화, 짧은 명작 그림책, 역사책 등. 독서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이 중에는 분명 대여섯 번은 읽었던 좋아하는 몇 권의 책이 있었다. 주말이면 가족과 도서관에 자주 갔던 기억이 나는데, 만화책 코너의 위치만 정확히 기억나는 걸로 보아 역시 책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도서관이나 책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소설이나 만화책이 아닌 책을 읽어본 기억은 없었고, 다른 장르의 책은 딱딱하고 어려울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나는 책을 써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너무 어려운 책을 고르지 않았고, 독서에 흥미를 붙일 수 있었다. 나와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모든 분야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회, 심리, 역사, 철학, 과학, 문학 등 어떤 주제도 새롭고 놀라웠다. 교육 분야의 책을 읽다 보니 사회 관련 책을 읽게 되고, 사회 분야는 역사와 연결되는 식으로 관심 분야를 넓혀갔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내용은 비슷한 분야의 책을 읽을 때 여러 번 등장하며 조금씩 머릿속에 심어졌다.
예를 들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 설명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여러 상황 속에서 단어를 접하며 자연스럽게 뜻을 익히게 되었다. 철학은 유독 다른 분야보다도 놀라움을 제공했다. 내가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나 생각의 흐름은 대부분 훨씬 더 정교한 학문으로 정리된 경우가 많았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체적인 인간의 선택이라는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에 맞닿아 있는 나의 이상도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을 공부하며 더욱 구체화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 지식 조각뿐만 아니라 사고의 방식도 배울 수 있었다. 상황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생기고, 사고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도구가 늘어났다. 과학을 배우며 우리 주변의 물질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철학을 배우며 상황을 분석하고 논리를 찾는 습관을 만들 수 있었다. 앎을 통해 세계를 더 높은 해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은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며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다. 다양한 종류의 배움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행위는 지적인 즐거움과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책의 종류는 독서의 효과를 한 가지로 일반화하기에 너무나 다양하지만, 꾸준한 독서는 반드시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독서하는 내용과 더불어 그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는 언어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고는 언어를 강화하고, 어휘의 확대 역시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더 넓은 어휘의 사용은 더 넓은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독서는 우리의 언어와 사고를 동시에 강화하며 세계의 지평을 넓힌다.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사고하는 과정은 두뇌의 복합적이고 주체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영상 매체에서 시청각적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글자를 읽을 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 연상하기 위해 뇌의 여러 부분이 활성화된다. 영상과 책의 단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지만, 둘의 특징은 분명히 다르다. 더 흥미를 끌 수 있고 단번에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영상이지만, 장기 기억을 활성화하고 사고의 성숙에 도움을 주는 매체는 책이다. 둘 중 더 발전한 매체는 영상이지만, 우리를 더 발전하게 만드는 매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이라는 매체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당장 책의 장점을 설명하고 직접 책을 내려는 나조차도 한창 책을 읽던 때에 비해 독서를 멀리함을 느낀다. 한창 책을 많이 읽던 고등학생 시절에 비해 독서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가 줄었다. 처음 뭔가를 배울 때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없는 지금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자극적인 매체에 익숙해진 뇌가 책에서 얻는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큰 것 같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독서는 개인의 삶에서 여가 활동 이상의 지위를 지니기 힘들다. 그리고 같은 여가의 위치에 있는 더 재밌는 디지털 매체들로 인해 자연스레 간편한 재미를 찾게 되고 책을 멀리하게 된다. 맛없는 음식과 맛있는 음식 중에 선택권이 있다면 맛있는 음식을 고르는 것처럼, 빠르고 편하게 큰 자극을 얻을 수 있는 휴대폰을 책보다 먼저 찾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만족감을 찾는 동물이다. 그렇게 우리는 도파민을 인스턴트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노력 없는 보상 회로를 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디지털 기기는 우리의 뇌를 망가뜨리고 있다. 본능적인 선호에 따르는 삶의 방식은 마냥 좋을 수 없다. 지루한 일을 버티게 해주는 도파민 보상 회로가 노력 없이 활성화되면서 노력을 요구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저하된 집중력은 다시 더욱 책과 멀어진 개인을 만든다. 책과 멀어진 개인은 문해력이 약한 사회를 만든다. 의견을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훈련과 학습이 부족한 사회의 갈등 해결 능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독서는 이 악순환을 끊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주변에서 책을 읽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그런 사람에게 독서를 강요해봤자 의미가 없다. 독서가 아니어도, 그 목적에 공감하지 못하는 채로 하는 행위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책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라면 작은 조언을 건네고 싶다. 먼저 몇 번의 시도를 통해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교육과 사회 분야의 책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독서의 영역을 넓히며 내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관심 없는 영역에 비해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있기 마련인데, 그 책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가지게 되거나 지식을 얻으면 사람은 반드시 그 경험을 반복하고 싶어지게 된다. 그렇게 독서에 흥미를 붙일 수 있다.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은 개인의 효능감을 올려주기에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은 특히 그 경험을 제공하는 면에서 강점이 있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더욱 깊은 이해를 쌓을 수 있고, 흥미가 가는 영역이 넓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책과 친하지 않다면 쉬운 책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다. 긴 글을 읽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다면 두껍고 빽빽한 책은 그 인상만큼이나 힘들게 읽힐 것이다. 재미없게 느껴지는 책을 억지로 완독할 필요는 없다. 비교적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소설에 재미를 붙여도 좋고 이해를 위해 쉽게 쓰인 서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입문하는 것도 좋다. 간단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도 있고 읽고 이해하는 습관이 생기면 조금 더 어려운 책에 도전하면 된다. 나는 아직도 많은 고전이 어렵게만 다가온다. 분야별로 꼭 읽고 싶은 권위 있는 고전들이 존재하는데, 첫 몇십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장을 덮은 책이 많다.
소설을 읽으면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구체성 속에서 보편을 찾을 수 있고, 학문적 책은 보편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개인의 구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에세이를 통해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가진 생각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고, 시를 통해 글자의 아름다움에 빠져볼 수 있다. 나아가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한다면 성장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다시 그 생산자가 되어 더 좋은 책을 쓰고, 좋은 책은 누군가에게 성장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을 꿈꾼다. 내가 그리는 세상이 마냥 유토피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다양한 종류의 책을 쓰면서 살고 싶고 그 경험을 구체화하여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상에 전하고 싶다. 이 책도 누군가에게는 가볍고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되어 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고등학생 시절, 책에 관련된 명언을 찾아보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인해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니체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문장이었으나, 그 근거를 찾지는 못했다. 아무렴 어떤가, 멋진 문장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이 문장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울린다. 자신의 좁은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의 인간이기에 그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오로지 개인에게 달려 있다.
책으로 인해 가능해지는 내부로부터의 혁명, 독서는 나에게 조용한 혁명이다. 당신에게도 혁명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