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꼭 배워야 할까?

by 하얀거북

한동안 대한민국에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특히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개발 과정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후로 인문학의 위상은 꽤나 격상한듯 보인다. 당시의 열풍은 마치 인문학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의 열쇠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 바람은 사라지지 않고 서점가와 강연장에 녹아들어 가끔씩 그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낼 목적의 인문학 공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시장에서의 성공이 아닌 인간과 인간 문화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소수 특권층 위주로 발전해 온 이 학문은 애초에 먹고사는 데는 솔직히 말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학과 철학, 역사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꼭 배워야 할까?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적 소양은 좋은 삶의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정말 진부하게도, 나는 인문학 공부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방법은 텍스트의 탐독과 지식의 축적에만 있지 않다. 철학사를 달달 외운다고 해서 삶이 충만해질리는 만무하다. 연구자도 이론가도 아닌 보통의 우리에게 인문학은 일상에서의 지혜가 될 때 가장 아름답다.


현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태도를 가졌다면 지루한 책은 덮은 채로 둬도 된다. 그러나 인류사의 위대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면 인문학은 정답은 아니더라도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지식의 조각은 사고의 흐름을 만들고 삶에서 조금씩 다른 선택과 감정을 이끌어낸다. 통찰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복리처럼 쌓여, 같은 경험을 해도 더 많은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실존주의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삶에 의미를 만들어갈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좋은 소설은 타자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역사 공부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훈련시킨다. 밀의 말처럼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반드시 나은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렴 돼지보다는 인간이 낫고 배고픔보다는 배부름이 낫다. 삶을 위한 인문학 공부는 우리를 조금은 배고프게, 그러나 인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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