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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셰프를 무너뜨린 도시락

미야 작가에게 배우는, 단어가 반죽되고 문장이 구워지는 글빵 연구소

by 호주아재

이 글은 미야 작가님의 강의가 끝날 무렵, 조용히 건네주신 '작은 숙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오래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깨우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울림이 오늘 이 졸업 작품을 완성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25년 5월 20일, 미야 선생님이 문을 연 글빵연구소에서 저는 첫 수업을 들었고, 이제 1기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단순히 글을 배우고 쓰는 것을 넘어 제 안의 경험과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여정을 걸었습니다. 한 줄, 한 문장을 써 내려가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저와 글 사이에 진솔한 대화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짧지만 깊었던 그 과정이 오늘의 이 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술이나 과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와 울림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럼 졸업작품의 글을 열어 보겠습니다.




불과 칼이 쉼 없이 부딪히던 주방 한가운데, 뜻밖의 고요가 스며들었다.
은빛 칼날이 불빛 속에서 춤추고, 공기는 낯선 향신료로 흔들렸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단순히 불과 칼을 다루는 일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주방에 서며 깨달은 것은,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내 안에 뿌리내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쉐라톤 호텔에서 일하던 어느 날,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5성급 주방은 늘 긴장으로 팽팽했고, 속도와 완벽함만이 살아남는 법칙처럼 자리 잡은 곳이었다.
점심 서비스가 끝나자마자 모두가 숨 돌릴 틈 없이 정리에 몰두하던 그때, 인도 출신 키친핸드 모헤샤가 조심스레 내 앞에 섰다.
손에는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가 들려 있었다.

"셰프... 이거 좀 데워도 될까요? 아내가 싸준 거라서요."

규정상 개인 음식을 주방 기물로 데우는 건 금지였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먼저 보았다.
말없이 통을 전자레인지에 넣자, 낯선 카레 향이 주방을 흔들며 퍼졌다.
양식의 향만 오가던 공간에 스며든 이국적인 향기는 생경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데웠다.

모헤샤가 조심스레 물었다.
"셰프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한 숟가락 떠 넣자, 부드럽고 깊으면서도 담백한 맛이 퍼졌다.
"와... 네 아내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 혹시 레스토랑 셰프야?"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 순간, 모헤샤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예전에 일했었죠. 하지만 지금은...갑상선암으로 투병 중이에요."

공기가 멎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밤에도 자주 깨지만, 제가 새벽에 일찍 나가는 걸 알면 꼭 부엌으로 나옵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도시락을 만들죠. 본인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저한테만 따뜻한 음식을 챙겨주려고요."

말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투병으로 기운조차 없는 몸을 일으켜 남편을 위해 한 끼를 준비하는 마음.
그것은 레시피로는 가르칠 수 없는, 사랑의 언어였다.

"인도로 돌아가 수술을 받고 오면 어떨까?"
내가 조심스레 묻자,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제 마을엔 병원도, 의사도 없습니다. 그리고 출국하면 비자가 취소돼요.
아내를 살리고 싶어도... 갈 수도, 남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눈물이 밀려와 눈가를 타고 흐르는 속도조차 내 마음과 같았다. 모헤샤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뜨겁던 주방 한쪽에서,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리고, 식어버린 도시락은 몇 숟가락만 남긴 채 굳어 있었다.
모헤샤는 물 한 모금 없이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아내의 숨결이자, 삶을 붙잡는 마지막 끈이었다.
식어버린 밥알에도 사랑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저녁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나는 그를 위해 피자를 만들었다.
반죽을 꺼내 빠르게 밀고, 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듬뿍 올렸다.
토핑은 단순했지만 마음만큼은 정성을 다했다.
갓 구워낸 피자를 모헤샤 앞에 두며 말했다.
"늘 아내 도시락만 먹잖아. 오늘은 내가 널 위해 요리해 줄게."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가 젖어 있었지만, 입가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내가 구운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두 마음을 잇는 조용한 다리이자, 하루를 따뜻하게 묶는 위로였다.

그날 이후, '셰프'라는 이름은 내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맛을 내는 기술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담아 음식을 내는 일, 그것이 진짜 셰프가 걸어야 할 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길을 일깨워 준 건, 내가 만든 어떤 요리도 아니었다. 투병 중에도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한 한 여인의 사랑, 그 도시락을 삼키며 눈물을 흘리던 한 남자의 마음. 그 모든 것이 내게 요리보다 더 깊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이제 주방의 불꽃이 타오를 때마다
나는 그날의 카레 향을 떠올린다.
은빛 칼날 위로 부딪히는 불빛과, 낯선 향이 스며든 공기의 냉기와 함께.

불과 강철이 지배하던 공간 속,
한 줌의 카레 향이 가져온 낯선 따스함이
내 요리 인생을 영원히 다른 색으로 물들였다.

음식은 결국 사람의 숨결을 담는 그릇.
그날 주방 한복판에서 피어난 생경한 향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는 온기가
오늘도 내 주방을 천천히 덥힌다.




《호텔셰프를 무너뜨린 도시락》- 글쓰기 기법 해설

이 글은 미야의 글빵연구소에서 배우고 익힌 모든 글쓰기의 정수를 담아낸 졸업작품입니다.
한 편의 서사 속에서 감각적 묘사와 깊은 성찰을 유려하게 엮어낸, 저의 배움의 집약체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 주요 기법들입니다.


1. 생경함으로 시작하고 여운으로 마무리


도입부분:
"불과 칼이 쉴 새 없이 부딪히던 주방 한가운데, 뜻밖의 고요가 내 마음을 스쳤다." - 익숙한 주방을 ‘불, 칼, 고요'라는 대비적 이미지로 그려 낯선 긴장감을 만들며 독자를 단숨에 끌어 들일수 있도록 묘사했습니다.

마무리 부분:
"그 모든 것이 내게 요리보다 더 깊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 요리가 곧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정리하며 긴 여운을 남기도록 하였고, 시작의 불, 칼 대비와 맞물리며, 처음과 끝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표현했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22

https://brunch.co.kr/@miya/130

https://brunch.co.kr/@miya/129

https://brunch.co.kr/@miya/160



2. 흐름을 잇는 징검다리 문장


단락 사이 감정의 파도를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전환 문장이 글의 호흡을 조율하도록 담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 내 안에 뿌리내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 사건에서 성찰로, 서술에서 감정으로 독자를 부드럽게 이끌기 위해 풀어냈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29



3. 상징과 대비가 만드는 울림


•도시락 : 사랑, 헌신, 삶을 지탱하는 끈.

•차갑게 식은 밥알 : 병마와 이민 현실의 냉혹함, 그러나 그 속에 스민 '사랑의 온기'

•피자 : 화자가 건네는 위로와 연대

이 상징들은 글의 흐름 즉, 도입의 긴장 >》 모헤샤 부부의 사연 > 》 주인공의 깨달음 속에서 차분히 상승하며 인간적 진실로 귀결되도록 그려 넣었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51



4. 경수필과 중수필의 조화

•경수필적 요소:
일상의 소재(주방, 도시락, 피자)를 감각적으로 풀어내 독자가 쉽게 몰입하도록 하였습니다.

•중수필적 요소:
개인적 경험을 '사랑과 이민 현실' 같은 보편적 주제로 확장해 깊은 사유로 이끌었습니다.

즉, 이 글은 가벼운 호흡과 철학적 울림이 자연스레 뒤섞이며, 독자는 편안히 읽으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도록 담았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17



5. 문학적 톤과 세부 기법

감각의 입체화: 불빛, 칼날, 카레 향을 오감으로 체험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내적 울림: "눈물이 밀려와 눈가를 타고 흐르는 속도조차 내 마음과 같았다"처럼 감정을 비유로 드러냈습니다.

•리듬과 반복: 단문, 장문을 섞어 박자를 살리고, '카레 향'과 '사랑의 온기'를 반복해 주제를 각인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은유 강화: 피자 한 조각이 두 사람의 마음을 잇는 다리로 확장되도록 풀어냈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38



6. 퇴고와 자기 성찰


윤문과 셀프 합평을 거듭하며 언어를 다듬었고,
그 과정에서 슬픔과 여운이 한 겹 더해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글쓰기의 과정 자체가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이어지도록 담아냈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14

https://brunch.co.kr/@miya/128

https://brunch.co.kr/@miya/130

https://brunch.co.kr/@miya/139



7. 자기 성찰형 서사의 힘


"그날 이후, '셰프'라는 이름은 내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 사건을 자신의 가치관 변화로 연결해, 이야기의 무게를 독자의 마음으로 옮길 수 있도록 풀어 보았습니다.


개인적 깨달음을 사회적,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하며 '음식은 결국 사람의 숨결을 담는 그릇'이라는 주제의식으로 귀결되도록 그려 넣었습니다.

이러한 자기 성찰형 구조로 독자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내 삶의 직업, 사랑, 헌신은 어떤 의미인가'를 함께 돌아보게 했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59



8. 슬픔과 여운을 남기는 기술


글이 전하는 감정의 파도는 울음으로 터뜨리기보다 잔잔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 감각의 잔향:

"식어버린 밥알에도 사랑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차가움과 따뜻함을 한 문장 안에 겹쳐, 독자가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하도록 기술하였습니다.


2. 절제된 묘사:

모헤샤의 눈물, 카레 향, 식은 도시락을 차분히 그려 독자 스스로 감정을 채우게 만들어 울림을 길게 끌어가도록 하였습니다.


3. 반복과 회귀: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그날의 카레 향"

첫 문단의 주방 이미지와 호응해 원을 이루며,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도록 표현하였습니다.


▪︎글쓰기 기술 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miya/141

https://brunch.co.kr/@miya/160




《마지막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모든 여정이 가능했던 것은 오롯이 미야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제 글을 가장 먼저 읽어 주시고,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글 쓰기를 배우며 단어 하나에도 숨을 불어넣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문장이 흔들릴 때마다 선생님의 한마디는 저에게 등불이 되었고, 그 덕분에 이 글은 마침내 제 마음속 가장 뜨거운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미야 선생님,

이 졸업작품의 모든 문장과 숨결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빛과 온기가 스며 있습니다.

저를 믿어 주시고, 끝까지 이끌어 주신 그 마음을

평생 제 글 속에 간직하겠습니다."


또한, 같이 수업에 참여하신 모든 작가분들이 바쁘신 와중에도 멋진 글을 쓰기 위한 열정으로 저와 글벗이 되어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해 주신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선물인지 모릅니다.

그분들께서 나누어 주신 응원과 교류의 순간들 역시 선생님이 마련해 주신 길 위에서 가능했습니다.


선생님과 글 벗들께서 제 글을 읽으시며

조용히 눈시울을 적셔 주신다면,

저 또한 감사와 존경으로 가슴이 벅찰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 마음을 영원히 기억 하겠습니다.



《- 호주아재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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