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하루

떠난 이들의 자리, 남은 자의 시간

by 호주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곳, 호주에 있는 대형 호텔 기업 더 스타(The Star)를 둘러싼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카지노와 호텔, 리조트를 함께 운영하는 이 회사는 현지에서는 꽤 알려진 이름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최근 운영 전반에 대한 규제 문제와 반복된 점검, 흔들린 신뢰로 여러 차례 언론에 오르내렸고, 그 내용들은 대부분 몇 줄의 뉴스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여파는 그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운영 리스크와 관리 실패가 하나씩 드러났고, 회사는 결국 구조를 다시 짜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비용을 줄이고, 조직을 정리하고, 사람 수를 조정하는 선택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현실이 됐다.

사람이 줄어들면 조직이 가벼워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다르다.
자리는 비어 있지만, 일은 그대로 남는다.
그동안 나눠하던 업무는 다시 합쳐지고,
여러 명이 맡던 역할은 한 사람에게로 이동한다.




하루의 밀도가 달라졌다.
하나를 끝내면 바로 다음 일이 이어지고,
잠깐 숨을 고를 틈이 생기나 싶으면 또 다른 이슈가 올라온다.
업무량이 늘었다기보다 하루가 지나치게 압축된 느낌에 가깝다.

팀장이라는 위치는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팀장 직급은 늘 우선 검토 대상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줄어든 인원만큼의 책임과 일을 가장 먼저 떠안게 된다.
관리와 현장을 동시에 붙들고 있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요즘의 일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다.
운영을 챙기고, 인력을 조정하고, 일정과 분위기까지 함께 살핀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하고,
문제가 없어 보여도 대비를 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아침 일찍 시작한 하루는 금세 밤이 되어버린다.

쉬는 날도 예전과는 다르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 있을 뿐,
완전히 내려놓는 날은 드물다.
머릿속에서는 내일 일정이 먼저 떠오르고, 다음 주 일정까지 미리 빼곡히 정리해 놓아야 하며,
메시지가 울릴까 괜히 휴대폰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건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금 더 버텨야 할 것 같은 자리에 서 있게 된다.
힘들다는 말을 삼키는 일이 익숙해진다.

떠난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미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고,
오늘의 몫은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

요즘은 잘 해내고 있는지보다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넘기고 있는지를 더 자주 살핀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도 그냥 지나가게 두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꺼낼 시간조차 넉넉하지 않다.
글을 쓰는 일도 어느새 일정 사이에 끼워 넣는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사소한 하루에도 문장이 따라붙었는데,
지금은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생각이 따라오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몇 줄 적어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머릿속에 쌓인 것들을 잠시 밖으로 꺼내놓는 정도의 글이다.
이런 넋두리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가 그대로 몸 안에 남아버릴 것 같아서다.

문득 예전이 떠오른다.
웃음이 많았고, 글 소재가 여기저기 널려 있던 시절.
바쁜 날에도 여유가 있었고,
피곤한 날에도 이야기는 남아 있던 시간.

지금은 그 시절과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아주 멀리 가버린 것 같지는 않다.
잠시 옆으로 밀려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나가는 구간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속도가 아니라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글을 쓰고 싶다.
웃음이 먼저 나오고,
문장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가끔이라도 적어두면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겠지 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적고,
다시 내일의 하루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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