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류성 식도염'을 '한국인의 반려질병'이라고 부른다.
반려동물처럼 늘 곁에 있기 때문이다.
키운 적은 없는데 어느 날부터 같이 살게 되고,
밤에는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며,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사라진다.
야식 때문도, 커피 때문도 아니다.
그런 건 다 변명이다.
진짜 이유는 하루를 너무 꽉 채웠다는 것이다.
쉴 틈 없이 밀어 넣고, 소화는 내일 하자고 미뤄둔 하루.
위는 항의하지만 꽉 찬 일정 앞에서는 늘 밀린다.
그래서 이 병은 낫지 않는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지금도 '동거 중'이다.
한국인의 하루는 대체로 이렇다.
밥은 빨리 먹고, 잠은 늦게 잔다.
몸은 먼저 지치고, 정신은 끝까지 남아 있다.
속이 쓰릴 때도 이유는 대충 알고는 있다.
그렇게 매일 약을 먹고, 디저트로 커피를 마신다.
우유가 들어간 부드러운 라테는 건너뛴다.
그건 오늘의 나에게 너무 친절하다.
결국 얼어 죽어도 더 익숙한 쓰디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주부습진'도 비슷하다.
식기세척기가 있어도, 손이 먼저 간다.
기계보다 내가 더 꼼꼼하다는 근거 없는 확신.
맡기면 왠지 찜찜한 그 기분.
고무장갑?
머리로는 분명 생각한다.
'아, 껴야지!' 그런데 어느새 손은 물에 들어가 있고, 세제 풀린 물속에서 접시를 문지르고 있다.
생각은 항상 한 박자 늦는다.
한국인의 손은 언제나 '행동파'에 가깝다.
'빨리빨리'라는 성질머리는 뇌를 거치지 않고
곧장 손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며칠 뒤, 이제 좀 쉬자고 습진으로 표현한다.
출근 기록은 없지만 근무 시간은 길며, 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물에 들어갔다 나온다.
집은 점점 깨끗해지는데 손은 점점 인생을 산다.
손바닥과 손가락 끝이 갈라지면 보습제를 바르고 다시 설거지를 하며, 손이 먼저 퇴근하는 날은 거의 없다.
'고지혈증'을 만드는 대표 음식도 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인의 최애 음식, 바로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끊으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숨 쉬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회식이든, 스트레스든, 기쁜 날이든 그냥 평일이든 결국 불판은 달아오른다.
다행히 삼겹살에는 상추와 쌈채소들이 있다.
마늘도 있고 김치도 늘 함께한다.
이쯤 되면 거의 건강식이다. 적어도 마음속에서는...
게다가 혼자 먹지 않는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때 그 맛은 배가 된다. 그렇게 나눠 먹으면서 단백질과 지방도 나뉘고, 죄책감도 같이 나뉜다.
'고지혈증'은 그렇게 '팀 단위'로 생성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삼겹살을 배불리 먹고 나면
배를 두드리며 의자에 반쯤 걸쳐 앉는다.
완전히 눕지는 않는다.
아직 사회적 체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눕게 된다.
그 순간 위는 중력을 포기하고
'역류성 식도염'이 출근 도장을 찍는 그 순간이 된다.
'병이 병을 부르고 병이 병을 키우는 격.'
돌려 막기는 신용카드만의 기술이 아니다.
고지혈증은 혈관 속에 쌓이고, 그렇게 쌓인 지방들은 조용히 간에 기록된다.
그렇게 해서 '지방 간'이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거기에 있다.
술 때문이라고 오해받지만 사실은 과로,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탓이다.
간은 말이 없지만, 조용히 기록을 남긴다.
오늘 뭐 먹었는지, 언제 과로했는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우린 모른 척하지만, 간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말하자면, 지방간은 참을성 많은 '반려 동거인'인 것이다
아프지 않은 척 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고,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어, 너 거기 있었네?" 하고 인사하게 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또다시 등장하는 '역류성 식도염'.
위에서 슬쩍 올라와 "오늘도 고생 많았지?"하고 묻는다.
이쯤 되면, 병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 구조인 셈이다.
고지혈증은 혈관 속에서, 지방간은 조용히 간에,
역류는 밤마다 위에서 올라오고, 주부습진 걸린 손은 그 답답한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이 병들은 급하지 않기에 늘 다음으로 미뤄진다.
다음 검진, 다음 달, 다음 다짐.
그 사이 몸은 묵묵히 버틴다.
한국인의 몸은 버티는데 특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늘 어딘가가 불편해도 하루는 잘 굴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 병들과 함께 산다.
마치 오래된 반려처럼.
귀찮지만 익숙하고,
없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은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