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쯤 전의 일이다.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 지하철역 근처에는 꼭 이런 분들이 계셨다.
"저기요! 잠시만요! 잠깐 시간 있으세요?"
"도를 아십니까?"
그 말 한마디면,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사람도 자동으로 걸음이 빨라지던 시절이었다.
그날의 나는 무려 7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는 버프를 잔뜩 두른 상태였다.
친지들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특히 부천 북부역 '만남의 광장'에서
몇 십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가엔 미소가 번지며, 발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졌다. 그렇게 마음이 들뜨고 있던 그때였다.
남녀 한 쌍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말끔한 차림.
하얀 와이셔츠와 블라우스,
검은 정장 바지와 검은 긴치마.
왼손엔 낡은 서류가방 하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 초상집에 가신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복장이었다.
그들이 나를 훑어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세요.
혹시 시간 있으세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며,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근심?'
그럴 만도 했다.
그때의 나는 인생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영주권이라는 세 글자에 쏟아붓고 있었으니까.
6년을 버티고, 매달려 마침내 호주 영주권 하나 손에 쥔 채 스스로는 꽤나 금의환향했다고 생각하며 한국 땅을 밟았던 참이었다. 그러니 근심이 아니라 얼굴에 이미 서사 한 편이 쓰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순간,
"... 혹시 도를 아십니까?”
하지만 문제는,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외국에 오래 살았어도 나는 이미 그분들의 존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2006년 호주로 출국하기 전부터 방송, 뉴스, 각종 미담(?)과 괴담(?)을 통해 충분히 학습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하며 중국어로 말했다.
"니 요우 션머 쉬마? 니 하오!"
물론 진짜 잘하는 중국어는 아니다.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올 법한, 중국어 '느낌'만 간신히 나는 소리였다.
호주에 살며 중국인 친구들에게 인사말 정도만 어깨너머로 배운 수준이었지만, 묘하게 억양만큼은 그럴듯했고 그날만큼은 그 몇 마디가 나의 외모와 절묘하게 맞물렸다.
그리고 결과는 뻔했다.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없는,
100% 중국인 관광객 몽타주 완성.
그들은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아주 겸연쩍은 얼굴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1차 방어, '성공.'
그리고 정확히 4일 후.
이번엔 대학 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찾은 부천 북부역.
약속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해 괜히 설레며 서 있었다.
그때였다.
"앗!!."
한눈에 알아봤다.
4일 전, 그 남녀 한 쌍.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마치 데자뷔처럼 그들이 다시...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 그렇지.
이 사람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영업을 할 테니 내 얼굴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그들이 또다시
내게 물었다.
"인상이 좋으세요... 그런데 영혼에 근심이 가득하시네요.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어라? 이것들 봐라? 오늘은 접근법이 신선하네?
거기다 내 몸 중에 그나마 아직 건강검진 안 받아도 되는, 유일하게 안 아픈 구석인 영혼을 건드려? 아, 오늘 영업 잘못 걸었네. 풉!!!."
그러나 이미 나는 그들이 다가오기 전부터 오늘은 어떻게 놀려줄지 시나리오를 짜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질문이 끝나자마자 한숨을 아주 깊게,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쉬었다.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요즘들어 매일을 근심 속에 살고 있죠!"
그 한마디에
그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고,
나와의 거리도 눈에 띄게 좁혀졌다.
나는 이어서
진지하면서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씨!!!...우리 엄마가 무당이라 그렇잖아도 짜증나 죽겠는데, 진짜 당신들까지 이럴 거야?"
순간,
공기가 멈췄다.
"네...? 무... 무당이요?"
두 사람이 합창하듯 동시에 되물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난기 섞인 짜증으로 덧붙였다.
"왜요? 두 분, 나랑 우리집에 가서 굿 한 번 하실래?"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남자의 팔을 살짝 잡아끌 듯 움직였다. 그들은 순간 멈칫, 내 팔을 뿌리치며 놀라더니 결국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후, 부천 북부역 만남의 광장 한복판에서 나는 혼자 한참을 웃었고, 그 생생한 이야기는 나의 호주 정착기 모험담(?)과 함께 그날 저녁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가장 좋은 안주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새해를 맞아 엄마와 신년운세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떠오른 기억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늘, 비슷한 말,
비슷한 걱정,
비슷한 당부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그날 부천 북부역의 풍경이 불쑥 떠올랐다.
덧붙여,
이 글을 빌려,
무당도 아니신 지극히 평범한 우리 엄마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