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 깜짝이야!!, 의문의 서류봉투!"

by 호주아재

나의 비자는 학교 졸업 후 18개월 동안 관련 업종에서 경력을 더 쌓을 수 있는 졸업생 임시 비자였다. 비자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였다.


호텔에서 배운 요리들, 아직 어설프지만 더 배우고 몸에 배도록 익히며 실전에 적용할 시간이 왔다는 설렘과, 동시에 ‘이제부터는 실수해도 봐주는 사람 없겠지...’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호주에서 파트타임 Commis chef로 첫 출근하는 날. 아침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듯 낯선 냄새와 긴장감이 나를 감쌌다.

Pig'N'Whistle 에서 착용했던 Name Badge


‘이제 나도 진짜 프로 셰프다!’ 싶은 들뜬 기분과 함께 ‘여기가 내가 버틸 곳이 될까?’ 하는 불안감이 머리를 스쳤다.




호텔 주방에서 봐오던 알피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주방에서 보니... 뭐랄까? 약간의 이질감?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낯선 주방에서 7명의 셰프들과 첫 업무를 시작했다.

하루 800명분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바쁜 주방. 정신없이 돌아가는 그릴과 프라이팬, 고기 굽는 냄새와 소스 끓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서비스 들어간다! 미디엄 레어 두 개, 웰던 하나 추가!” “예스, 셰프!!”

말은 쉬워도 현실은 전쟁터였다.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주방. 프라이팬에서 튀어나온 기름이 얼굴을 스치고, 닭고기를 잡으려다 미끄러질 뻔하고, 주문이 밀려들면 셰프들의 눈빛이 변하며 ‘전투 모드’가 발동된다.

한쪽에서는 소스를 쏟고, 다른 쪽에서는 그릴이 불타오르고... 한순간 방심했다가는 내 손가락을 같이 구워버릴 것 같은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점점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문서가 들어오면 눈빛만으로도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아챘고,
누군가의 숨이 가빠 보이면 말없이 손을 내미는 게 당연해졌다.
때로는 거친 말투 속에 숨겨진 걱정을, 짧은 농담 한마디로 묵은 피로를 덜어냈다.

“야, 너 치킨 포션 아직이야?”
“손이 말을 안 들어… 오늘따라 왜 이러지.”
“괜찮아. 말 안 해도 알아. 천천히....... 서두르지 마!

일단 다른 세팅은 내가 하고 있을게.”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엔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주방 안에서 우린 누구 하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손이 모자라면 팔이 되어주고, 마음이 무너지려 할 땐 말없이 옆을 지켰다.


어떤 날은 지치고, 어떤 날은 눌린 감정이 터져 나왔고,
어떤 날은 그릇 하나 깨진 것만으로도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말없이 곁에 있어줬다.
그건 단순히 동료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였다.

기름 튀는 프라이팬, 불꽃을 삼키는 그릴, 쉼 없이 울리는 벨소리.
그 혼돈 속에서 우리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다들 다른 섹션에서 자신만의 요리를 하고는 있었지만, 일 손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이 나갔고,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고단함을 알아챘다.

수없이 쏟아지던 하루하루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점점 서로를 기대고, 안고, 견뎌냈다.
그렇게 우리는 ‘팀’을 넘어,
삶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함께 견디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8개월쯤 지난 어느 날, 알피가 나를 불렀다.
“너, 계속 나랑 일할 거지?”
'뭐지? 갑자기? 아직 1년도 안 되었는데 다른 곳으로 또 옮긴다는 건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 네! 물론이죠!”

그러자, 그는 내게 ‘Confidential’이라고 적힌 의문의 서류봉투를 건넸다. '뭐지? 그동안 미친 듯이 일했더니 보너스라도 주는 건가?' 궁금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이게 뭐...?” 하고 말을 흐리자, 알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네가 좋아할 거야! 조심히 뜯어봐.”
손끝이 떨렸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놀랍게도

Junior Demi Chef로 승진하는 내용과 함께 임금인상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가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기쁨과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처음 이 주방에 발을 디딜 때의 두려움, 하루하루 겨우 따라가며 버티던 날들, 온몸이 아파도 그냥 나왔던 아침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제 정말 이 팀에서, 제일 큰형인 내가 막내 셰프를 벗어나는 건가?’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순간, 눈앞의 음식들은 더 이상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다.
그건 우리가 함께 쌓아온 호흡, 하나의 리듬이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바로 여기, 이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버텨낼 이유라는 것을..."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hoju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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