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안한 호출, 셰프 알피의 특별 제안!"

by 호주아재

'이안, 잠깐 나랑 얘기 좀 할래?'

2010년 1월 초쯤, 여느 때처럼 일찍 출근해서 오늘 있을 이벤트를 체크하고, 주방용품을 정리하고 있던 나를 알피가 불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빨간 경고등이 번쩍였다.

'갑자기? 내가 어제 뭐 잘못했나...?'

뇌는 이미 풀가동 중. 어제 했던 일들이 빠르게 자동 재생됐다. 혹시 준비했던 스테이크가 모자랐나? 아니면 버터 대신 마요네즈를 썼나? 에이 설마. 아, 혹시 소스에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건...? 그런 기억은 없는데. 하지만 인간이란 게 원래 없던 죄도 지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생물 아니었던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조용히 그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알피는 묵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심지어 이마엔 미세한 주름까지 생긴 것 같았다.
내 심장은 그 순간, 마치 뜨거운 오븐 앞에 놓인 생크림처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2주 후에 헤드셰프 포지션으로 다른 레스토랑으로 옮기게 되었어.”

“... 헉.”


그 순간 내 심장은 이미 바닥까지 내려앉았고, 머릿속은 영화처럼 새하얗게 번졌다.
알아들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너 가는 건 축하해야 하는데… 그럼 난 이제 누구한테 배우지? 알피 없는 주방이라니, 그건 비빔밥과 불고기가 빠진 한국식당 같다고…’
다른 셰프들은 다들 ‘이건 그냥 감이야’라면서 훌쩍훌쩍 해치우던데,
‘나 감각 없다고요…!

혼란의 폭풍 한가운데 서 있던 나에게, 알피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너도 나랑 같이 일할래?”

… 뭐라고요?


그 말은 마치... 누가 내 귀에다가 주문이라도 속삭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내 속에서 작은 축제위원회가 긴급 소집되었다.
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퍼레이드를 시작했고, 종이꽃가루를 펑펑 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시크하게, 눈썹 한쪽만 살짝 들어 올린 채 물었다.

“나도 너랑 일할 수 있다면 좋지. 근데... 어디?”

""Pig N Whistle" Eagle Street pier(브리즈번 중심가 강변)에 있는 메인 지점. 너한테 파트타임 포지션 줄게.”

평일 저녁이면, 하루를 마친 직장인들이 맥주 한잔과 식사를 즐기려 몰려들어 언제나 활기로 가득찬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뇌는 재부팅됐다.

Pig N Whistle?
브리즈번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레스토랑?
주말과 축구나 럭비 경기가 있는 날이면 레스토랑 전체가 전투 모드로 돌입하고, 서버들은 물 흐르듯 움직이기보다 파도에 휩쓸리듯 휘말려 다니는 곳?
게다가 '메인 지점???!!!'


'나도 그곳에 가면 매 주말이 생존 서바이벌이겠지…'
하지만!
요리를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등 떠밀었다.
'그래, 어차피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로 마음먹었잖아.
죽을 각오로 뛰어들지, 뭐!!!.'

그 순간—
내 안의 축제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년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5, 4, 3, 2, 1… 뻥!!”
순식간에 가슴 한가득 불꽃놀이가 터졌고,
형형색색의 감정들이 폭죽처럼 터지며
심장 깊숙한 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땡큐, 셰프!!! 나도 꼭 거기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날 이후 2주 동안 나는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주방에서도 쓸데없이 히죽거리다가 '야! 이안, 오늘 뭐 잘못 먹었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동료 셰프들은 나를 이상한 놈 취급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나만의 무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뮤지컬의 주인공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무대의 커튼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던 거다.


물론, 그 무대가 나를 얼마나 깊이 삼켜버릴지는 그땐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처음 제 에세이를 접하시는 분들께 *

2권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웰던인생, 미디엄레어 꿈"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주시면 더욱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정주행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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