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의 하루 끝, 누구와 함께인가"

by 호주아재

며칠 전, 유튜브에서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제목은 ‘한국 초등학생의 하루 일과’.

오전 8시 등교.
오후 2시 하교.
그리고 이어지는 영어, 수학, 피아노, 스피치 학원까지.
학원차를 타고 또 타고, 저녁은 편의점 삼각김밥.
밤 10시에야 집에 도착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스케줄이 좀 적어서 다행이에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직 여덟 살, 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스케줄이 적어서 다행’이라니.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피로와 체념이 담겨 있었을까.




호주에서는 아이들이 하교하면,
학교 앞에는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

운동장 한쪽엔 개를 데리고 서 있는 엄마,
비 오는 날엔 우산을 들고 웃으며 달려오는 아빠.

아이들은 누군가의 ‘손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곳 사람들은 안다.
아이의 하루 끝을,
누군가 지켜봐 줘야 한다는 걸.




얼마 전, 한 호주 교사의 말을 들었다.
“아이들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집중력도, 친구도 아니에요.
‘자기 이야기’ 예요.”

자기 얘기를 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아이는 조금씩 닫히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 말이 마음을 때렸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아들에게 ‘20분’을 선물하기로 했다.

학교가 끝나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함께 앉아 있는 시간.

“오늘 어땠어?”
“누가 웃겼어?”
“여자 친구는 아직 없지?”

별것 아닌 이 대화들이
아이의 하루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로 바꿔준다.

20분이면 충분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마음을 열고, 나는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른에겐 잠깐이지만
아이에겐 하루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담요 같은 시간.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구나”
하고 느끼는 그 순간.

그래서 20분이다.
길어서 지치지도 않고,
짧아서 소홀하지 않은,
서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




교육은 결국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관계다.

그 하루의 끝에
누군가가 따뜻하게 기다려주는 것.
그 20분이 쌓여 한 아이의 미래가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한국에 있든, 호주에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이의 하루 끝에 누가 함께 있느냐다.

그 20분. 그 짧은 온기가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이름이 된다.

keyword
이전 07화"효도에 대한 나의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