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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Apr 13. 2019

소극적 여행

재미없는 여행

회사를 그만둔다 하니,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한다.


“대만?”

“타이완. 싫어?”

“... 가자.”


대만은 워낙 자주 거론되는 여행지이다 보니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가지 않을 나라다.

준비는 한가한 사람이 했고 퇴사 앞둔 나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이어갔다.


“내가 그런 걸 신경 써야 해? 그냥 가는 거야. 고생이 재미야.”


가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따듯한 나라 좋아하니까. 그냥 피곤했다.


친구들은 한가한 만큼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각종 블로그에 나오는 장소를 착오 없이 인증해 갔다. 3일로 봐야 하는 4일 동안 편하고 신속하게 돌았다. 그들은 알차게 돌았다고 만족해했다. 


“애들 데려왔으면 이렇게 계획적으로 돌지 못했어.”


나는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를 온 느낌이었다. 외국 사람이 섞여 있을 뿐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친절한 메뉴판에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 칭찬받을 빡빡함. 사색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오랜만의 여행이었는데, 기억이 없다. 갔다 온 게 맞나?

실패 없는 여행은 추억이 없다. 

사실 난 남부지방을 원했고 친구들은 유명 관광지를 원했다. 


“야. 엄청나. 여길 싫다고 했지?”


대형 구조물에 감탄하는 친구들은 골목 구경 하자는 나를 관음증이라 했다. 남들 사는 거 기웃거리지 말고, 보라고 만들어 논 관광지를 다녀야 한다는 거다. 


[대형 구조물]
[남들 사는데]

그들과 나는 정서가 달랐다. 그들은 블로그고 나는 인스타그램 정도 되는 것 같다. 기성세대. 꼰대들.


이사 날짜 때문에 고향으로 가기 전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생겼다. 퇴직하면 해외여행 가는 게 공식인 만큼, 그냥 집에 있는 게 남들 알까 무서웠다.  

만족스러운 여행을 위해 혼자 가기로 했다. 

누구와 함께일 때는 그들이 의식되어 나를 살피기 힘들게 된다. 배려 차원이든 눈치를 보는 거든. 어쨌든.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들에게 취향 설명해 봐야 부질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당시 우울과 분노로 쉽게 달아오르던 머리를 식혀야 했다. 

몸을 고생시키고 싶었다. 그래야 머리와 몸이 균형을 이루게 되니까.  

피곤해야 딴생각 없이 잠들 수 있으니까. 

상업적이지 않아야 했다. 자본주의는 뻔하니까.

심심치도 않아야 한다. 딴생각하니까.

따듯한 나라로 가야 한다. 돈 없으니까. 

멀리도 가지 못한다. 비행기는 지루하다. 

사람 적은 곳으로 갔다.  


혼자 가는 외국은 처음이다. (영어 불가)  

도착부터 흔들렸다. 

현지 시간 아침 5시 도착. 아무도 없었고 아무것도 문을 열지 않았다. 환전할 수가 없었다.  

현지에서 환전해야 대우가 좋다 하여 달러만 준비해 갔다. 

같은 비행기를 탔던 일행들은 모두 패키지에서 준비해준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 (배신)

거스름돈 같은 거 모른다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나를 바라본다. 시선 피해 구석진 곳으로 갔다. 

적막함. 즐기자. 이유 없이 사진 몇 장 찍는다. 어색해하면 안 된다. 

배고픔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것이 느껴졌다. 따듯한 나라답게 그곳 시간은 여유롭게 가고 있었다. 


9시에는 문을 열까? 여기는 여유로운 동네니까. 10시? 그러면 5시간을 여기서 이렇게 낭비해야 하나?


조급해졌다. 지루함이 아닌 불안감이 커져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쨌든 시간이 해결해 주는데. 정 안되면 바가지 쓰면 되는 건데.


그렇게 나를 성장시켜주는 실패(예측 실패, 계산 실패, 이해불가, 아직도 이해불가)를 겪으며 억울함과 미안함, 감사함이 오락가락하는 4박 5일을 보냈다. 낮에는 스쿠터 타고 한적한 해변을 섭렵해 갔다. 사람 많은 곳은 혼자인 것이 눈에 띌 까 봐 한적한 곳을 찾게 된다. 음식점도 한창때를 피하게 되었다.


예상대로 할 것 없는 밤이 문제였다. 심심했다. 

밤도 낮처럼 돌아다니면 되는 거였는데, 스쿠터가 있으니 땀날 일도 없었는데.

새벽형 인간이 돼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사람 없는 시간에 사람 없는 해변을 찾아다녔다. 

야생 그대로, 밥 안먹고 수영만 하면 된다


아무도 없고 아무 시설도 없는 야생의 해변을 혼자 썼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자유를 누렸지만 그게 그 여행의 유일한 경험이 되었다.


혼자 가는 자유로운 여행이지만 자유롭지 못했다. (예측 실패) 

돌아오고 나서 느끼는 허전함은 뭔가. 


여행이 끝나고 나니 후회되는 것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중 하나가 낮에 그냥 골목이었다가 밤 되면 음식을 파는 누추한 골목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오래된 양은 냄비에 끓인 찌개가 맛있는 것처럼, 골목 자체에 맛이 배어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곳은 외국인이 많았지만 그곳은 현지인들이 북적거렸다. 4박 5일을 지나다니며 계속 눈에 들어왔지만 그냥 지나쳤다. 

[이런 거리]


여행이 재미없는 게 취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영혼이 자유롭지 않으니, 혼자이건 아니건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르는 게 아니고 용기가 없었다. 

진짜 재밌을까? 막상 하고 나면 별거 아니지 않을 까?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용기 없어 못한 것이 창피해 핑계를 만드느라 머리 아팠던 것 같다. 

스스로 갇혀 사는 삶이 언제까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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