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격 Apr 13. 2019

미니멀하게 살 수밖에

푸념. 변화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게 맛있냐? 튀김은 기름 맛인데?”

“맛있어요”

“웃기시네”


에어프라이어를 살까 관심 갖던 시절이 있었다. 5,6년 전. 주변에 사용자가 있어서 관심을 가졌었다. 미소 띤 친절함에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근데 얼마 전부터 인기를 끌더니 맛있다는 후기가 넘쳐났다. 


“후회해요. 너무 살 졌어요.”

“그거 때문에 냉동고를 구매함.”


야근하고 집에 가면 11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TV 틀면 나오는 게 먹방이다. 자기 전 TV와 함께 하는 술이 습관이 되었다. 


“오븐도 사놓고 안 쓰는데.”, “맨날 맥주 마실 텐데...”


예전엔 맛이 의심스러워 안 샀다면 이젠 너무 좋을까 봐 망설여졌다. 인생 망칠 거 같아. 


“샀어요?”

“아니.”

“난 샀어요.”


이것도 한 방법이다. 사지도 않고 좋다고 떠들고 다니다 보면 열정의 시간이 지나갔다. 절제가 아닌 주저함에서 나온 결과지만 어쨌든 참아냈다. 보람이 느껴졌다. 

백수가 됐으니 이제 없어도 죽지 않는 것은 모두 아웃이다.  

소비뿐만 아니라 생활도 단순화시켜야 한다. 했던 일도 기억나지 않는 복잡한 생활을 몇 년 동안 했다. 시켰던 일도 기억나지 않았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주시했다. 


지금 이 억울함은 뭔가?

지금 이 분노는 정당한 건가? 내 잘못을 남에게 미루려는 건 아닌가?


과부하 걸린 뇌가 오동작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멈출 줄 알아야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도록 의식을 붙잡을 수 있어야 했다. 집중력을 키우는 자세를 취해 본다.


능력치를 넘어섰구나. 두통약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럼 그만둬야지.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단순하게 살아야지.




요즘 또 변화(4차 산업? 혁명?)를 얘기한다. 큰일이라고 설레발치지만 변화는 늘 있어왔다. 

기성세대 조언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계속 변화하므로 모두가 1회 차이고 복잡한 생활이므로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나에게 딱 떨어지는 정답을 줄 수 있는 선배는 없다. 사는 게 불안할 수밖에.


현명한 유명 강사들의 말은 멋있다. 20년 전 졸업을 앞두고 프로그래머는 유망직종이었다. 그렇게 18년을 야근하다가 그만뒀다. 너도 나도 뛰어들었던 유망 직종, 그 덕에 IT강국 소리 듣지만,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상품을 만든다는 것은 해당 직종 종사자의 희생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프로그래머는 경쟁력 있는 소모품이다. (소모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내가 잘 안 풀려서 하는 소리다)

아니다 싶을 때 방향을 틀었어야 했다. 

변화에 따라 늘 이사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짐을 줄이고 여기저기 시세도 좀 알아봐야 한다.  

미니멀은 가지치기에 해당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여기저기 가지를 뻗게 된다. 생활 속에 생겨난 잔가지를 구별해서 잘라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뭐하러 브라우저를 열었지?”


뭔가 검색하려고 했다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엄한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


이렇게 인생이 흘러간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선 안 된다. 그 흐름은 내가 결정한 게 아니고 세상이 결정해 준거다. 모든 정보는 장사꾼이 먹고살기 위해 제공해 주는 거니까.  

직접적인 경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장사꾼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정신 차리고 필요한 정보만 받아들여야 한다. 진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이 아니고 비판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뤘던 것이, 변화 앞에서 의미 없어졌다면 버려야 한다.  

앙상한 나무에서 그나마 걸려 있던 걸 잘라내려니 아깝다. 뭐가 잔가지고 뭐가 뻗어 나갈 줄기 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냉정해질 때마다 춥다고 느껴진다. 이럴 땐 전사자세. 


가지치기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으니 부지런히 또 가지를 뻗어 본다. 이때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닌 기획력이다. 

기술만 있으면 먹고 산다는 옛말도 옛말이 됐다. 현실은 요령 없이 성실한 사람을 동정할 뿐 좋아하지 않는다. 동정심에 기대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 기술 가진 기획자가 돼야 한다. 독립을 꿈꾸며 끊임없이 사회를 탐구해야 한다. 

직장 생활하다가 공인중개사로 전업한 애가 있다. 


“지역사회에 관심이 생겨. 뉴스도 보고 정치도 관심 가고”


이제야 사회에 관심을 갖는다. 한심하지만 손가락질하지 못하겠다. 가만있을 애가 아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반복되는 건데, 이 나이 되도록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순전히 사회 탓이다. 제정신인 회사라면 애사심을 강요할게 아니라 구성원이 개인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되는 경험을 쌓게 해 줘야 한다. 일도 커리큘럼에 따라 성장할 수 있도록 시켜야 한다. 


단순히 한 가지 업무에 통달한 달인들이 분업으로 생산한 제품보다 순환 업무를 통해 생산 공정을 이해시키는 것이 개인의 만족도뿐만 아니라 품질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모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람을 대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나를 포함한 퇴직자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미니멀에서 사회 문제까지 이끌어 냈다. 대단한 오지랖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극적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