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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Apr 13. 2019

도시와 시골의 속도

난 시골에 살아야 하는 사람

사람은 누구나 빠른 면이 있고 느린 면도 있다. 밥을 느리게 먹는다거나 느리게 걷는다거나 대꾸가 느리거나. 이해가 느리거나.


도시와 시골도 각각의 속도를 갖고 있다. 큰 도시이고 중심으로 갈수록 빠르고 빈틈없이 움직인다. (느리고 빈틈이 있으면 강성 고객이 달려든다) 그리고 느린 곳에서 빠른 사람이 살 수도 있고 빠른 곳에서 느린 사람이 살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고 있다 보면 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반면 화 낼 준비가 된 사람이 보인다. 

젊어서는 노래가 좋아서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옆 사람이 떠들 때 이어폰을 낀다. 민감해진 거다. 이 도시의 속도랑 맞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사회성은 내성적인 나에게 적응되지 않는 짐이었다. 포장을 좀 하고 연기도 해가면서 소속 집단이 갖고 있는 캐릭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그냥 적당히 맞춰주고 사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아 삐딱하게 행동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날카로움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즐겁지는 않다. 적성에 맞지 않을 경우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안되니 나는 사회 탓을 했다. 그냥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피해의식과 함께 원망까지 갔다. 퇴행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

나 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제 살길 찾지 못해 이 도시를 못 벗어나고 있구나. 

시골로 갈 거라는 나에게 한 달만 지나면 심심해서 못 견딜 거라고 예견한다.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도 아닌데 진리로 삼고 있다. 


주말에 별다른 일 없이 심심할 때마다 수영장을 간다. 수준에 맞는 라인을 선택해서 들어가야 한다. 내 속도로 가게 되면 호흡에 여유가 있어 쉬지 않고 헤엄 칠 수 있지만 누군가 뒤에서 내 발을 건드리면, 늦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힘을 줘 속도를 내게 되고 결국 라인 끝에서 쉬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쉬지 못한다. 쉬는 건 퇴직. 

[난 사실 빠르다]

내 페이스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벅찬 속도에 쫓기다 보면 남을 속이거나 이용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습성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런가 고민하게 된다. 저렇게 되기 전에 내려가야지. 


내 고향은 시골까지는 아니고 지방 소도시이다. 조금만 벗어나면 산이 있어 좋다. 이런 소도시에서는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 아파트 같이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스스로 모든 걸 해야 하는 단독주택 같은 곳이다. 불편을 감수하면 마당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번거로움을 원했다. 세상 돌아가는 걸 좀 알아야 하니까. 


그렇다면 뭘 해야 하나? 나는 낯가림이 있다. 생활공간에 낯선 타인이 들어와 머무는 것이 부담된다. 그래서 먹는 장사는 안된다. 내 장소와 시간을 제공해 줘야 하는 업종은 선택하지 않기로 한다. 


머그컵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다년간 취미로 공방에 다녔다. 그것을 곁가지가 아닌 내 삶을 지속시켜줄 줄기로 삼으려 한다. 생산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모두 해야 한다. 온라인 판매이므로 공방이 도심 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산속이지. 


즐거운 산속 생활을 꿈꾼다. 

새소리 들으며 산기슭 공방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화목난로에 불을 지피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내려 먹는다. 눈 오는 날이면 창을 모두 열어 놓고 따듯한 한기를 느끼며 물레를 찬다. 

물레 소리와 눈이 쌓이는 소리에 집중하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난로에서 감자 익는 냄새가 난다. 


부동산 하는 애에게 연락을 했다. 


“숲 속의 작은집 봤어? 소지섭처럼 살 거야”

“자연인이 되겠다고?”

“아니 소지섭”

[소지섭]


그는 나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강원도 살던 애가 서울에 가서 느꼈을 불안과 긴장감. 시선에 나무나 산이 들어오면 느꼈던 편안함. 투자 혹은 장사 개념으로 접근하는 그 애는 나무를 찾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려움 없이 살아온 그 애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근교에. 시내에서는 벗어나야 해. 주변에 녹지가 있어야 해”

“니가 원하는데 땅을 사서 지어”


시작이 반이고 완벽주의가 인생을 망치므로 일단 시작해 본다. 

월세 50 이하로 구하고 있는데, 산을 끼고 있는 동네에 공방으로 쓸만한 아담한 공간은 없었다. 대부분 음식점이나 카페를 했던 공간으로 40평 이상이다. 넓어서 좋은데 임대료가 3,4배. 난 돈을 많이 못 벌 텐데...

아니면 가건물 비슷하게 엉성하거나 방치돼서 정돈 비용이 엄청 들어갈 것 같은 곳, 철거하고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은 창고뿐이었다.


“이거 난방비 감당되겠어?”


딱 맞는 게 없다. 현실은 한적한 동네 20평 안쪽의 상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권리금 없이 진행하려면 신축으로 가야 한다. 유지비나 추가 비용 면에서 신축 상가로 들어가는 것이 맞았다.

공사판 한가운데의 신축건물에 들어가는 건, 너무나 예상치 못한 일이다. 정면으로 아파트 단지가 떡하니 들어서 있다. 머리 식히려 밖을 내다보면 콘크리트 벽인 것이다. 그리고 20평. 부족한데. 

2주를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숲 속 생활을 버렸다. 


“그래 꿈은 꿈이지. 현실에서는 현실적으로 선택해야지.”

“화분 많이 키우면 되지.” 


너무나 현실적인 현실에 기운 빠진다. 용기 내서 고향에 내려왔건만, 여기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너무 쉽게 좌절하는 건가?


“세월이 지나면 저게 자라 그늘을 만들어 줄 거야”

“얼마나 지나야 되는데.”

“시간을 줄이려면 돈이 필요해. 돈 없으면 기다려”

“얼마나...”


이사만으로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10분 빠르게 해 놨던 시계를 원래 대로 돌릴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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