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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Apr 13. 2019

도자기를 취미로 해봅니다

도자기 공방의 모습

도자기를 취미로 해볼까 하는 사람들이 감 잡을 수 있도록 도자기 공방의 진행 프로세스를 간단히 기술한다.


도자기는 빵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러니 그만큼 쉽다고 볼 수 있다. 물을 가미해 반죽하고 숙성된 반죽으로 모양을 만들어 오븐에 구우면 된다. 도자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도예 쪽 용어를 사용하면 성형 -> 초벌 -> 시유 -> 재벌 -> 끝.


성형. 모양을 만드는 행위.

취미로 도자기를 할 경우 대부분의 작업이 성형에 해당된다. 나머지는 공방에서 처리해 준다. 시유는 직접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대신해주는 데도 있는데 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신봉하는 편이라 직접 진행했다. 

유약 선택과 시유는 도자기의 빛깔, 겉모습을 좌우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옷 입히고 화장하는 행위이며 색깔 유약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데 냉철한 잣대를 드리우며 책임을 물을 경우 공방에서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냥 내가 진행한다. 

잘되면 100% 내 탓. 고민 고민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어떤 유약으로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시도해도 결과가 다르다. 재현이 안 되는 그 도자기는 점 점 소중해진다. 


다시 성형 얘기를 하자. 

공방에서의 성형은 보통 코일링, 판작업, 물레로 구성된다. 

처음부터 물레를 시켜 주지는 않는다. 미술 시간에 했던 행위를 시키며 2,3개월 정도 지나 흙을 이해하게 되면 그제서 시켜 준다. 그때쯤이면 딴 걸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술 시간에 했던 행위는 코일링, 판작업이라는 좀 더 정리된 형태로 설명을 듣게 되는데, 접시 혹은 머그컵 정도를 만들게 된다. 사전에 어떤 모양을 만들지 원하는 모양을 생각하거나 그려 가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 생각하려면 조급해진다.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는데..

원하는 모양을 생각하고 그렇게 만들었을 때 만족감이 생긴다. 비루한 삶에 뭐 하나 했군.


코일링은 흙으로 가래떡을 만들어 돌돌 말아 쌓아 올리며 형태를 잡는 방식이다. 형태를 잡은 후에 쓰다듬고 문질러 떡의 흔적을 지우면 컵이 된다. 

[코일링]

급하게 설렁설렁하면 말리는 과정에서 금이 가거나 흙 사이에 낀 공기가 가마에서 터져 나오는 수가 있다.

판작업은 이름 그대로다. 가래떡이 아닌 피자 도우처럼 납작하게 밀어서 판을 만들고 그걸 새워서 말거나 붙여가며 만드는 방식이다. 

[판작업]

코일링은 작업이 더뎌서 답답하고 판작업은 조금 더 빠르기는 한데, 형태를 구성하는 면에서 코일링이 조금 유리하다고 본다. 그래서 난 주로 판작업을 했다. 


이렇게 2개월 정도 수강하면 물레를 찰 수 있게 된다. 

물레를 찬다는 것은 동그란 판 위에 흙을 고정시켜 놓고 지속적으로 회전시키며 모양을 잡아가는 행위를 말한다. 

[다정한 모습은 여기서 연출된다]

물레 작업은 전원을 켜고 원판 위에 흙을 고정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감당할 수 있는 양의 흙을 잡아 물레 원판 위에 내려친다. 주변 눈치를 보는 성격인 경우 조용히 내려놓고 두드려 고정시키고 상남자를 보여 줘야 하는 경우 힘 있게 내려치면 된다. 무심한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 


흙을 판에 고정시키면 이제부터 예술 행위가 시작된다. 집중해서 흙의 결을 느끼며 끌어올리고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긴장하며 최면에 걸린 듯 흙과 내가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 하다 보면 작품이 된다.

흙을 산 모양으로 했다가 납작하게 했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중심이 잡히는데, 최정상 봉우리의 정 중앙에 구멍을 뚫어 넓히면 그릇이 되는 것이다. 끝. 

도자기는 쉬운 것이다. 


여기서 중심을 잘못 잡거나 구멍을 중심 아닌 곳에 뚫어 넓히면 한쪽은 얇게 반대쪽은 두껍게 된다. 그릇의 두께가 일정치 않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초보시절은 그게 또 멋이라고 초벌, 재벌까지 해서 소장한다. 도자기는 산업 폐기물이므로 일반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면 안 된다. 


형태를 갖춘 흙은 그로부터 며칠 동안 건조를 하게 된다. 반건조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주 1회를 수강할 경우 다음 주가 되겠다. 다음 주가 돼서 꾸득 꾸득해진 성형물을 뒤집어 다시 물레에 올려놓고 중심을 잡아 고정시킨다. 굽깎이라는 것을 하기 위함인데, 잘 못 만들어서 동그랗지 않으면 중심을 확인하기가 어렵고 술 먹은 다음날도 어렵다. 어쨌든 중심에다가 고정시키고 물레를 돌려가며 굽깎이를 시작한다.  

[굽깎이]

굽깎이는 흙을 깎아내서 컵이나 그릇 아래에 굽을 만드는 행위인데 어느 정도 말려서 흙이 힘을 갖게 돼야 진행이 가능하다. 근데 지나치게 마르면 단단해서 깎기 힘들어진다. 일주일을 그냥 방치하면 지나친 건조가 이뤄지므로 보통 비닐을 씌어서 말리는데, 사정 있어 수업을 건너뛴 경우 단단한 흙을 깎아야 한다. 지난 일을 반성하며 조금씩 오랫동안 깎으면 된다. 명상과 같이 머리를 비우는 효과가 있다. 

공방 선생님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미소 지으며 괜찮다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굽이 없으면 식탁 위의 물기에 미끄러지기 쉽다. 깜짝 놀란다. 


그리고 손잡이가 필요한 경우 별도 제작해 놓았다가 이 시점에 본체에 붙이게 된다. 

유의할 점은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 흙을 건조할 경우 수축하게 되는데 본체와 손잡이의 수분 함량이 다를 경우 수축률이 달라 건조 과정에서 금이 가거나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좌절.  

초보 시절,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는데, 금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경우가 없어졌다. 내가 잘한 것인지. 공방을 옮겨 다니다 보니 사용하는 흙이 달라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잘해서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모든 것이 정도 이상으로 손을 대면 썩는다. 무심히 필요한 만큼만 손길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알면서도 못하고 하다 보면 또 하게 되는 거다.


이 단계에서 예쁘게 만드는 작업을 추가할 수 있다. 손잡이 붙이는 것보다 먼저 해도 된다. 우선순위는 편한 데로. 예쁘게 하는 작업은 색깔 있는 흙(화장토)을 활용하는 것인데, 그림을 그리거나 상감기법으로 무늬를 넣거나 한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므로 비를 표현한다. 

[검은 화장토로 비를 표현]

상감기법은 홈을 파고 화장토를 채워 넣는 것이다. 채워 넣고 다듬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손이 가는 작업으로 시간 때우는데 좋다. 이것 또한 적당히 말랐을 때 작업하기가 수월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토치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말리기도 한다. 

토치는 손잡이를 급속히 말릴 때도 사용하는데 어느 정도 말리고 기다려야 한다. 지나치게 말리려 하면 갈라진다. 도예에서 어느 정도의 기다림은 필수이며 하다 보면 작업 순서를 조정하여 다른 작업을 진행하는 등의 요령이 생겨난다.  

다 귀찮으면 생략한다. 모던하고 욕심 없는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여기까지 하면 수강생이 하는 건 거의 끝난 것이다. 

이후 공방에서 성형물을 마저 말린 후 초벌구이를 해준다. 일주일 후에 초벌 된 기물을 볼 수 있다.

[초벌 상태]


가마는 사극에 나오는 무덤 같은 것이 아니고 전기 혹은 가스 가마를 사용한다. 

도시의 공방은 대부분 전기 가마를 사용한다. 


800도 내외로 초벌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흙이 아닌 상태가 된다. 아직 그릇으로 사용할 정도로 단단한 것도 아닌데 돈 들여 초벌 하는 것은 흙에 있는 불순물을 태워 날리고 유약을 바를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얻기 위함이다.

유약 바르기 전의 초벌기(초벌 상태의 기물)에 도자기용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도자기 체험으로 와서 하트 그리고 가는 커플들은 초벌 상태의 머그컵을 받아 보게 된다. 


다음 단계로 유약을 바른다. 시유라고 하는데 붓으로 칠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담가 버린다. 잠깐의 시간으로 진행되는데 흘러 내인 자국이 없어야 하므로 고르게 담갔다 주저 없이 빼야 한다. 자세 잘 잡고 간결하게 처리해준다. 담그거나 빼는데 주저함이 있으면 색이 고르게 나지 않으며 유약이 묻지 않은 곳이 있다고 다시 담그면 기포가 생기거나 두껍게 발라져 유약이 흘러내리거나 뭉쳐진 모습으로 굳을 수 있다. 망하는 것이다. 폭망.

동일한 유약이라도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매번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 유약의 농도, 담그고 있는 시간, 기물의 두께, 흙의 색깔, 날씨 등. 

유약의 종류는 다양한데 공방마다 조금씩 다르며 보통 타일 모양의 샘플로 제작하여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시유된 기물, 현재의 색은 재벌 후 나타나는 색과 전혀 다르다]

시중에서 파는 공장제 도자기는 변수가 적은 투명유를 많이 사용하는데 공방에서는 보다 다양한 색깔의 유약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림을 그렸을 경우는 투명유를 사용한다. 

단일 유약으로 시유를 하기도 하지만 여러 유약에 담갔다 빼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고 그는 만큼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실망 또는 감탄. 어쨌든 감탄이 발생하다 보니 계속하게 된다. 


시유를 했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재벌구이를 한다. 이것도 공방에서 해주므로 신경 쓸 일은 없다. 일주일 후 기다리던 최종 결과물을 받으면 된다. 

보통 수강료 외에 기물의 무게로 추가 금액, 소성비를 받는다. 금액은 공방마다 다를 텐데 1kg에 만원이 조금 넘었던 기억이다. 오래된 기억.


재벌은 도자기 제작의 마지막 작업으로 1250도 이상에서 굽는 것이다. 흙을 유약과 함께 녹였다가 다시 굳히는 작업으로 생각하면 된다. 하루정도 가열하고 하루정도 식힌다. 

초벌 단계와 마찬가지로 재벌 단계에서도 수축하고 단단해진다. 녹았다 다시 굳히는 것이므로 손잡이가 아래로 처지는 경우도 있고 오목한 접시가 평평해지기도 한다. 중력을 감안해서 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걸로 끝.

[재벌 후]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흙을 만지고 집중해야 한다. 기다림을 통한 수양.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분노. 자학. 용서. 도시인의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한다. 

창조물에는 본인의 성격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도예는 그 결과물을 진열해 놓는 것이 아니고 실생활로 끌어들여 사용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물건을 쌓아 놓는 것보다 경험을 쌓는 게 좋지 않은가? 적극적인 삶이 좋지 않은가?


빗소리를 틀어 놓고 비 내리는 머그컵으로 커피를 마신다.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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