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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Apr 20. 2019

출발을 위한 기다림

온 유어 마크, 몸은 앞으로 쏠려 있는데 뛰지를 못한다.

다큐를 봤다. 요즘 할 일이 없으니까. 

식습관에 대한 얘긴데, 어떤 사람은 지방을 먹어야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이 발동해서 지나친 섭식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으로 계산된 칼로리가 그대로 살이 되는 것이 아니라서 지방으로 칼로리 높은 식단이 오히려 살을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고지방식 메뉴가 맞다는 것인데, 결국 실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식생활은 둘째치고 목숨이 달린 생존에 대해서 나에게 맞는 걸 찾아야 한다. 뒤늦게 실험 좀 하려는데 출발을 못하고 있다. 남들의 삶(귀촌, 예술, 열정, 가난)은 충분히 보고 들었다. 


현실 타협을 통해 상가 계약은 마쳤다. 변두리. 

옆에 논이 있다. 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장소를 구했으니 다음은 장비 주문이다. 인테리어는 없다. 필수이면서 값비싼 가마와 물레 견적을 받는다. 전공자가 아니어서 보고들은 상식이 없다.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곳 중에 고른다. 이쪽 동네는 시장이 좁아서 도예 관련 기기를 제작하는 곳이 많지 않다. 오히려 그래서 선택이 쉽다. 전화했더니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씀해 주신다. 

전기 가마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 승압이 필요한데 10KW 추가 증설, 380 볼트, 산업용, 삼상, 별도 차단기 등등을 말씀하신다. 이런. 순발력 있게 도움을 요청한다.


“죄송한데요. 나중에 승압 공사 담당자랑 통화 한번 해주실 수 있나요?”


그 밖의 돈 나가는 장비는 보류. 내가 보류한 것도 있고 사장님이 상황 봐가며 구입하라고 만류한 것도 있다. 몇 마디 대화를 통해 나의 미래를 캐치한 건가?  

근데, 가마 제작이 앞으로 3주가 걸린단다. 아.. 그런 거군요.

구매하면 택배처럼 받는 줄 알았다. 주문 제작이군요. 

가마와 물레가 없으면 할 게 없는데. 서울이었으면 물레라도 먼저 달라고 했을 텐데. 물레 하나를 여기까지 배송해 달라고 하기가 그렇다. 그래서 3주를 기다려 본다. 

뻔뻔해야 잘 사는데.. 진작 발주를 했어야 하는데, 일이 꼬이지 않게 순차적으로 진행하려다 망했다.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눈 감고 도예가의 삶을 시뮬레이션해본다. 물레를 차고.. 코팅 안된 원목 작업대가 있어야 하고, 건조 선반, 초벌기 선반, 유약.. 시유 공간. 

눈 감고 일하는 백수 아저씨를 지켜보는 노모께서는 짜증이 나신다. 피 말라죽더라도 월급쟁이를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능력이 안돼요.


나중에 마케팅 및 판매를 해야 해서 생전 안 하던 SNS도 기웃거린다. 어떻게 하는 건가. 나의 절실함을 어떻게 광고해야 하나. 인스타그램을 깔아 본다. 페이스북도 가입한다. 연락 안 하는 사람들이 알람으로 추천된다. 추억이 새록새록. 잘들 사시나.

하루 종일 소파에서 채널 돌려가며 연예인들 일하는 거 본다. 열심히 사는 구만. 나만 놀고 있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수도 없이 했던 걱정이 다시 스멀스멀 꾸역꾸역 올라온다. 누구나 아침이 제일 우울한가? 걱정 말고는 할 게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헬스를 열심히 해본다. 잡념을 버리고 성취감을 느껴보자. 열심히 밀고 당기고 거울 앞에 선다. 배는 안 보이게 가까이 선다. 며칠 후 코피가 났다. 사치스럽군. 뭔 일 했다고 코피인가.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려고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이것도 안되네. 도망갈 데가 없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미뤄뒀던 승압 공사를 신청한다. 이제 시점이 됐다. 다음 주에 들어올 가마를 맞이해야지. 전기가마는 전력이 많이 소비돼서 일반 상가의 전력으로는 안된다. 보통 상가는 3~5Kw 정도 제공되는데 넉넉히 15kw를 하라고 가마 사장님이 의견을 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어명으로 받든다. 지당하십니다.


신축건물이고 아직 마무리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건축 소장에게 연락해 보라고 건물주께서 말씀하셨다. 건축 소장에게 연락하니 전기 담당자 연락처를 준다.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다른 현장에 있다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 

현장에서 봐야 견적이 나올 수 있다고 내일 그곳에서 보자고 한다. 그렇게 하루

아 깜빡했다고 딴일 해야 하니 다음날 보면 안 되겠냐고 하루 

겨우 가게에서 만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하는데 견적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 가셔 계산해 봐야 한단다. 그럴 만한 일인가? 수작인가? 

그날도 견적은 오지 않았다. 며칠을 더 매달려 얼마인지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10kw 승압을 위해서는 한전에 90만 원(9만 원 정도 * 10kw) 정도 내고, 자신들 인건비 60 정도, 150 정도 될 거라고 한다. 그냥 딴 일하면서 귀찮은 듯 얘기한다. 이렇게 대충 얘기할 걸 일주일을 끌었구먼. 

용기 내서 비싼 거 같다고 해본다. 예상된 답변이 돌아온다. 


“싼데 있으면 그쪽에서 하셔도 돼요.”


음.. 딴 데 연락해 본다. 부동산에서 연락처 준 곳이 있는데, 한전 지불 비용은 같고, 인건비를 50 얘기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하던 데서 하는 게 쌀 거라고 한다. 아닌데요. 근데 바빠서 2주 후에나 가능하단다. 이런. 불경기 아닌가요..

어쩔 수 없이 저자세로 150에 공사를 의뢰한다. 그랬더니 추가로 새로운 정보를 알려 주신다.  

한전이 노동법 때문에 야근 안 하고 주말근무 안 하고 해서 이쪽 동네 무슨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내부 공사는 하겠지만 실제로 승압된 전기는 나중에나 사용 가능할 거라고 한다.  


“나중이 언제가 될까요?” 

“제가 모르죠. 한전에서 알죠.” 


신규 택지의 신규 건물에 입점하는 게 참. 수월치 않다. 

즈음해서 현장 가보니 바닥공사가 안됐다. 건물주께 예를 다해서 전화한다. 그리고 잠시 후 연락을 받는다. 그 날부터 시작할 거라고. 입주하기로 한 일정에는 차질 없을 거라고 한다. 안심하고 입주일이 되어 가본다. 이게 된 거야? 다시 연락한다. 방수처리만 된 거라고 한다. 날씨가 안 좋아 마르지 않았다고. 그래서 다음 단계를 진행하지 못한 거라고. 음.. 난 어떡하죠?

건물주도 건설업자에게 짜증이 많이 나있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는데, 업자는 추가 도포 후 2,3일 더 말려야 하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거기서 또 지연될 거라고 한다. 뻔뻔해야 잘 산다더니 좋은 차를 몰고 다닌다. 

바닥을 밟을 수 없으니 전기 공사도 연기. 

바쁜 사람들 상대하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나는 어떠했나? 비슷했겠지. 바쁘다고 고자세로 임했던 것이 생각난다. 고자세였지만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가공된 기억인가.


그동안 두려움과 평화로움이 왔다 갔다 했다. 같은 고민을 반복하다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답을 찾아 평화로워지고. 좀 지나면 다시 또 걱정하고 근데 지금은 답답함으로 일관한다. 옛날에 일할 때도 이런저런 지연이 있었지. 그때는 예상이 됐고 이렇게 답답하진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불안해서 더욱 그런 거겠지. 

한 달 지연, 별거 아닌 시간인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정도는 귀여운 것인가? 내가 게을러서 이렇게 됐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집에만 있으니 조급증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죠. 그냥 해주세요. 요즘 계속하는 말이다. 주변에서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아직이라고 답한다.


“아직? 그럼 집에서 뭐해?” 

“왜. 니가 알아 뭐하게. 할 거 되게 많아.”


그놈의 호기심이 보채는 걸로 들린다. 

말 많은 영화는 자막 쫓아가기 힘들어 대사 없는 영화를 본다.  


“왠지 불안하다 싶은 시점에서 80M 더 가서 오른쪽.” 


심심한 영화에서 주인공이 길 찾아갈 때 안내하는 멘트다. 버티기에 대한 얘긴가? 시작도 전에 버티기에 돌입하는 건가? 상품 내놓고 시장 반응 기다릴 때나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했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군.

그래. 살아가는데 지속적 노력과 기다림은 필수지.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누가 나한테 이런 소리하면 


“심심하냐? 난 말이야..”


면박을 줬겠지. 그래도 출발 정도는 해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은데.

요가학원도 찾지 못했다. 다들 너무 거창하다. 소박한 분위기였으면 하는데. 

류준열처럼 노을을 보며 마음을 달래 본다. 쿠바는 갈 수 없지만 노을은 볼 수 있다. 감정이입이 된다. 저게 내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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