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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May 02. 2019

내 맘을 아랑곳하지 않는 봄은 화사하기만 하다.

섭섭하게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으면 된건가? 

위로 차원에서 된 거다. 누가 위로해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위로하고 누가 칭찬해주지 않으면 내가 자랑하는 게 주도적인 삶이다. 


어쨌든 승압공사가 이뤄졌다. 가마용으로 별도 차단기 설치하고 공방 내에 가마 위치까지 3상 연결선을 땄다.


더불어 조명 레일 공사도 했다. 분위기 있는 전구색을 사용한다. 실용성보다는 낭만이다. 


며칠 후 기다리던 가마와 물레가 들어왔다. 기사 아저씨 혼자 와서 설치를 진행했다. 전기 공사가 요청한 대로 잘 되어 있었고 바닥도 보기에는 별로인데 수평이 잘 맞아서 별도 조정이 필요 없다고 신기하다고 하신다. 건설사 일하는 게 엉망이라 생각했는데, 전기 공사도 바닥 공사도 기본은 지켜져 있었다. 

서울의 대부분 공방은 지하이고 좁은 통로를 갖고 있다. 그럴 경우 분해해서 가져가 현장 조립해야 하는데, 1층에 입구도 양문형인 나 같은 경우는 그냥 내려서 옮기고 전원 연결만 하면 되는 수월한 케이스라고 하신다. 

초벌, 재벌 온도는 세팅돼 있으니 온도 변경할 거 아니면 그대로 쓰면 된다고 간단한 조작방법을 알려 주셨다. 설명도 쉽게 끝. 배선이 삼상 일 경우 안정적이어서 15kw까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고 하신다. 10kw 증설하려 했는데, 5kw만 증설하면 한전에 내는 비용이 50 정도 절약된다. 큰돈이다. 

5kw만 증설하자고 결심한다. 부족하면 그때 다시 승압 신청 하자. 번거롭지만 돈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몸이 고생해야 한다. 

서둘러 승압 진행한 전기기사 아저씨한테 전화한다. 며칠이 지났지만, 스타일로 봐서 아직 신청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불안해서 서둘렀다. 

역시나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답답한 일처리가 고마웠다.


이제 도재상에 가서 흙과 유약, 그밖에 필요한 부자재를 사야 한다. 

도자기의 메카 여주로 간다. 

유약 샘플이 홈페이지에 있지만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직접 보고 산다. 궁극적으로는 만들어 써야 하는데, 지금은 능력이 안되니 사서 쓴다. 

흙과 유약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던 남의 작품을 휴대폰에 저장한다. 물어봐야지. 초짜가 물어보는 것 밖에 수가 있나. 

젊어서는 잘 묻지를 못했다.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도 있지만 모르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요.”라고 운을 띄고 얘기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었다. 인정하고 들어가면 상대도 예의 있게 답변해 준다. 친절은 뿌듯한 마음을 들게 해 주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 똥 밝은 것인데, 초짜를 비웃거나 무시하는 건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런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내가 창피해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물어보면 될 걸 쓸데없이 힘쓰다가 중요한 걸 놓치는 게 또 초짜 티를 내는 거다. 다만 시시콜콜 물어볼 수는 없으니, 적정선을 잡아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적당히라는 게 뭔지는 전문가가 되고 나서나 알게 되는 것 같다.


도재상에 도착했다. 도매를 주로 하는 전문가 혹은 전공자를 상대하는 곳인데, 긴장된다. 텃세가 있지는 않겠지? 맘과 다르게 주저 없이 들어선다.  

카운터 직원은 전화받느라 바쁘다. 쳐다를 안 본다. 텃센가? 

그 와중에 다른 전화는 계속 울리고 있다. 그에 비해 매장에는 사람이 없다. 바쁜 직원 앞에서 쭈뼛거리다 돌아선다. 뭐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둘러보자. 창고가 아닌 매장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슈퍼 같았다. 큰 것들은 나중에 계산하면서 요청하고 눈에 띄는 소도구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제 유약을 보자. 유약.. 샘플이 많았다. 

같은 유약이라도 흙과 굽는 방법(산화, 환원)에 따라 결과로 나타나는 색이 다르다. 기억으로는 400개 이상이었던 것 같다. 많은 수도 그렇고 무심히 쌓인 먼지도 뜻밖이다. 전문가들에게는 이런 샘플은 더이사 중요하지 않겠지. 

일단 이뻐 보이는 색을 쫓는다. 흙이 예쁘군, 환원이네? 난 산화 소성을 해야 하는데... 이거 색이 좋은데 흙이 또 다르네?  

자유롭게 흘러가는 의식만큼 시간도 자유롭게 흘러갔다. 딱 이거다 싶은 것이 없고 생각해 뒀던 유약도 없다. 심란해진다. 

꾸부정한 자세로 피곤함을 느낄 정도로 오랜 고민을 했다. 공복에서 오는 현기증까지. 점심시간이구나. 

30분 정도면 끝내고 밥 먹으러 갈 줄 알았다. 돌아보니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다. 다행이다. 식사하시는구나 나를 기다리면 조급해졌을 텐데. 그럼 난 1시간 더 고민을 하자. 마음 단단히 먹고 확실한 것 아니면 모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5가지 유약과 3가지 흙을 결정하고 나머지는 휴대폰에 남겼다. 구매 목록을 정리하자 관광버스 정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외국 관광객들이 들이닥쳤다. 

아무도 없던 매장이 외국어로 시끄러워진다. 정신이 없다. 나한테 말을 걸면 대답할 문장을 생각한다. 


“아이 돈 노.. 아임 민간인..” 


카운터로 가니 빨리 계산하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들이 계산하기 시작하면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맞다. 계산하자. 

물어보고 살려고 했던 내화판, 지수 등의 수량이나 사이즈를 머릿속으로 순발력 있게 계산해서 대충 주문한다. 중요한 흙과 유약도 주문한다. 대량으로만 판매하는 유약은 주저 없이 제외. 빨리 계산하는 게 목표다. 정신없이 주문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뭐지? 허전하다. 배고픔은 아니다. 벼르고 긴장하고 준비했던 거에 비해. 얻은 게 없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좀 더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대답할 수 있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초짜는 질문조차 서툴다. 


다음날 어닝(천막천으로 만드는 지붕)이라는 것을 의뢰했다. 

간판은 필요 없다. 매장 판매는 없으므로. 다만 빗물이 공방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고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 16만 원짜리 번호키를 보호해야 한다. 번호키는 내 편의 때문에 사비로 설치했는데 이사 간다 해도 떼어 가기는 뭐한 물건이다. (권리금을 받아야겠다)

어닝 색깔은 고민 끝에 노랑으로 결정했다. 무채색 건물인데 검은색으로 깔맞춤 하려다가 인생이 어두워질 것 같아서 노랑으로 결정한다. 

노랑은 빨강, 파랑과 함께 일차 색 중에 하나로 다른 색을 섞어서 만들 수 없는 색이다. 그리고 낙관적이고 유쾌한 색이며 삶의 환희와 에너지를 표현한다. 나에게 필요한 색.

전화로 여기저기 가격을 문의한다. 

“폭 5m에 돌출 1m 정도요” 

“55요.” 비싸군. 

몇 군데 더 전화를 한다. 때마다 5만 원씩 오른다. 뭐지? 약속했어? 한 군데 더 전화를 한다. 역시나. 70만 원까지 오른다.  


“뭐야! 도청이야? 짠 거야?”


첫 번째 집에서 하기로 하고 오후 늦게 현장 확인하러 오셨다. 상가 구조상 1m 돌출할 경우 아래로 내려와 창을 많이 가리니 80 정도가 좋지 않겠냐고 하신다. 이럴 경우 나는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요즘 자주 쓰는 말이다. 크기가 작아지는데 가격 할인은 없었다.


“노랑은 때가 많이 타요. 금방 지저분해져요.”

“그래요?” 왜요라고 물을 뻔했다.

“.... 빨강은요?”  

“그래도 낫죠.” 

“빨강으로 해주세요.” 빨강은 일차 색이다. 열정을 상징하므로 나에게 필요하다. 

“글자 없어도 돼요. 간판 역할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도 구석에 조그마하게 넣으면 이쁘니까.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그래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밖에 기물 건조대 조립, 작업 테이블 제작, 싱크대 설치, 순간온수기 설치 등의 일을 수행했다. 인건비가 들어가는 경우 값을 치러야 하므로 내가 조립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내가 진행했다. 고생만큼 애착이 가겠지. 


친구가 놀러 와 창고 같다고 한다. 

“....”

“벽 색칠 안 할 거야?”

“노출 시멘트 인테리어야.”

“색칠해. 창고 같잖아.”

“그럴 시간 없어.”
 “금방 해.”

“뭐가 금방이야. 저거 테이핑 다 하고 바닥도 신문지 다 깔고 하루는 걸리겠다.”

“에이. 니가 요즘 칠을 안 해 봤구나? 안 튀어. 그냥 해도 돼.”


며칠 후 페인트가 배송됐다. 아. 롤러가... 작았다. 싸길래 주저 없이 구입하고 흐뭇했는데, 천하장사 소시지만 했다. 인터넷 구매의 폐해. 귀여운 롤러로 20평 상가 벽을 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카톡 한다. 


 “니가 요즘 칠을 안 해 봤구나.”

“왜?”

“다 튀어.”


바닥에 신문 깔고 버튼, 콘센트, 소화전 등 테이핑하고 천하장사로 칠하기 시작한다. 음. 롤러 폭이 반만 하니 두배로 노력하면 되겠지. 그런데 세상은 2차원이 아니고 3차원이다. 3배는 더 많이 찍어서 3배 이상으로 더 밀어댔다. 롤러 큰 거 살까? 가까운데 있나? 그날 깊은 잠을 잤다. 어떤 이는 결과물에 대해서 노고를 치하했고 어떤 이는 마감을 지적했다. 


이렇게 기술해 놓고 보니 일주일 동안 많은 것을 했는데, 성취감이 없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집중해서 내 위주로 바싹 당겨하면 이틀이면 할 수 있는 일들인데(페인트칠 빼고), 건마다 여기저기 견적 내고 일정도 아쉬운 사람이 양보해야 하고 (모두 내가 양보. 돈 내는 내가 아쉬운 사람) 내 맘 같지 않게 일주일이 걸렸다. 

[왼쪽부터 시작, 창고, 현재]


내 인생. 내가 주인공인데, 이놈의 영화는 주인공 위주로 돌아가지 않는다. 청춘일 때는 분노했을 일이다. 부조리에 불공평, 차별까지 얘기할 수 있다.  

어쨌든 사전 준비 기간 일주일을 이렇게 섭섭하게 보냈다. 

그리고 건물주에게 시작을 알리는 문자를 보낸다.

“월세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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