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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May 12. 2019

달인보다 장사꾼.

나는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

3주 전. 

기다리던 가마와 물레가 들어왔다. 물레 연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예의 기본이 되는 물레. 

먹고살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1개월 물레 연습. 1개월 판매 준비. 비장하게 계획을 세운다.


물레질에 인생을 담는다

모든 행위에는 인생을 담아서 얘기할 수 있다. 등산의 힘겨움으로 인생을 얘기하거나 요리 레시피의 애매 모함으로 얘기하거나. 나는 물레질로 얘기해보려 한다.


서늘한 공방 구석에서 물레질에 필요한 도구를 챙기고 따듯한 물을 받는다. 온수기가 잘 된다. 내가 설치한 거다. 라디오에서는 벌써 초여름 날씨라고 호들갑스럽게 톤 높이는데, 지하도 아닌 1층 상가는 아직 16도에 머물러 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발이 시리다. 예술은 그런 거니까. 견뎌내자. 


흙은 3가지를 구매했다. 백자토, 조형토, 산청토. 

이중에 두 가지 정도를 선택해서 사용할 예정이다. 여러 종류의 흙을 다룰 경우 서로 섞여 관리가 안된다.  

백자토는 최종 결과가 하얀 빛깔을 내는 흙이고 조형토는 어두운 색깔인데 모래가 섞여 거친 느낌을 준다. 산청토도 어두운 흙인데 모래가 있지는 않고 유약 없이 맨얼굴일 때 예쁜 거 같아서 사봤다. 


처음 보는 산청토를 가져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자르고 물레 위에 고정시킨다. 

앞으로 나와 함께할 물레구나. 의미를 부여한다.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틈만 나면 그런 생각을 하고 물레를 돌리기 시작한다.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힘들다.  

복부에 힘을 주고 팔을 몸통에 바싹 붙이고 흙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며 중심 잡기를 시도한다. 인생사 그렇듯이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바른길을 빠르게 갈 수 있다. 

뻣뻣한 흙에 물을 공급해가며 길들인다. 너무 물러지면 안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자체적으로 지탱할 힘은 있어야 한다. 무른 것과 부드러운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분명히 다른데 구분 없이 사용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된다. 

흙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집중한다. 심심하지 않게 틀어 놓은 라디오가 집중을 방해한다. DJ가 바뀔 때마다 봄 날씨 얘기다. 정신 챙기자. 흙을 느끼자. 대화를 시도한다. 준비됐니? 대답이 없다. 


길들이기와 중심잡기가 끝나면 가운데 구멍을 내서 넓힌다. 천천히. 

무언가를 담는 그릇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든다. 누가 소중한 것을 채우게 하기 위해 내가 지금 비워내는 숭고한 행위. 이때 가운데를 제대로 공략해야 한다. 구멍이 한쪽으로 쏠리면 두께가 일정치 않은 그릇이 탄생된다. 결국 두꺼운 쪽의 흙을 잘라내야 하는 희생이 뒤따른다. 흙만 버리는 것이 아니고 시간도 버리게 된다. 현대인은 시간과의 싸움 아닌가.   

기물의 두께를 생각해 가며 모양을 잡는다. 호흡으로 인한 떨림이 중심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숨을 멈춘다. 그까짓 맨날 쉬는 숨은 멈춰도 상관없다. 

물레의 속도에 맞춰 흙을 끌어올린다. 괜찮지? 가자, 조금 더 위로. 조금 더. 

그까짓 숨이 차오른다. 

갑자기 벽 뚫는 드릴 소리가 머리를 울려댄다. 더워 마땅한 여름을 환경 파괴하며 만들어낸 에너지로 시원하게 보내려는 가 보다. 

흔들리면 안 돼. 정신 챙겨. 그렇게 며칠에 걸쳐 산청토를 모두 소진했다. 


이번엔 조형토. 

손에 물을 묻히고 균형 잡기를 시도하자 모래 알갱이가 손바닥을 긁기 시작한다. 거칠고 억셌다. 저항이 상당했다. 억센 만큼 힘을 더 줘야 하지만 형태를 잡으면 흔들림 없이 힘 있게 서 있어서 섬세하게 다루지 않아도 되었다. 맘 편히 다룰 수 있었다. 

저항은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어느 정도 형태를 잡아주면 이후에는 알아서 버텨준다. 거친 만큼 뒤끝이 없다. 부드러운 흙은 힘이 덜 들지만 섬세하게 끝까지 챙겨야 한다. 대충하고 손을 떼면 뭘 잘못했는지 알아? 알 수 없는 추궁이 뒤따른다. 대인관계가 거친 나는 조형토가 어울리는 듯하다. 


마지막 백자토. 취미로 다녔던 공방에서 쓰던 것이다. 익숙해야 하는데 조형토를 연습하다 보니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다. 힘이 없네, 섬세하게 작업하는 게 더 힘들었다. 


이렇게 세 가지 흙으로 2주간 물레 연습을 했다. 

안 쓰던 근육을 쓴 탓인지. 영상 16도 탓인지. 피곤하다. 손에 부분적으로 알이 배기는 경험은 처음이다. 

조금씩 손끝에 힘이 생겼다. 18년간 키보드로 단련된 손이 거칠어지고 있다. 태생적으로 손끝이 물러 기타를 배울 수 없었는데, 이제 배울 수 있게 됐고 조만간 휴대폰의 지문인식 기능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체형도 변하려나? 아직은 프로그래머 체형.


취미가 아니고 상품을 생산해야 하니까. 1시간에 열 개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형태도 동일해야 한다. 1주일간 하루 4시간 정도를 연습했으나 결과물은 제각기 자유로운 모습이고 시간당 5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 

기물의 크기와 모양을 재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일정한 모양을 내는데 신경 써가며 1주일을 보낸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남자가 되어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연습을 한다. 오래 운전한 것처럼 다리가 아프고 손목에도 무리가 왔다. 모양과 크기는 예전보다 정돈이 됐지만. 

[비슷해 보이지만 제각각]
[발전된 모습으로 봐줄 수 있는가.]


시간당 10개는 포기. 

좌절과 함께 생각이 많아진다. 어떡하지? 작게 만들까?  

달인이 되고 싶어 구글 검색을 한다. 

물레 전문가 되는 법. 물레 빨리 차는 법. 한순간에 도예 전문가.

각종 동영상이 뜨고 논문까지 있다. 논문을 살펴본다. 흙, 가래, 타림 법? 쳇바퀴 타림 법? 

... 

시간이 없다. 조급한 마음에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자기로 먹고사는 것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이렇게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원한 것은 아니다. 단순작업에 달인이 되려는 무의미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방향이 맞나? 지름길 없나? 석고틀? 지거링?  

TV에서 달인을 볼 때 음식 파는 경우 제조 과정을 보여준다. 아... 난 저렇게 못해. 손이 너무 많이 가. 미묘한 차이밖에 안 날 것 같은 수많은 과정이 진행된다. 장사꾼이 아닌 작가정신에 입각한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난 장사꾼이 되는 게 맞겠구나..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 소모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게으른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난 합리적인 지구인이다.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다. 성공은 물 건너간 건가? 


친구와 닭갈비를 먹기 위해 만났다.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불쾌하게.


“뭘 봐. 예술가 같아?”

“얼굴 좋아졌는데?”


그렇지. 백수는 얼굴이 좋지. 난 그냥 백수.

친구는 세래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 불교에 뜻을 두고 있다. 한참 마음공부에 대해서 얘기한다. 목적 없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친구의 수다에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데 알바생은 밥을 볶기 위해 철판에 눌어붙은 갈비 양념을 긁어내려 했다. 초짜였다. 힘겨워 보였다. 남일 같지 않았다. 


“그냥 대충 볶아 주세요.”

“아니. 다 긁어 주세요. 나 탄 거 싫어해요.”


마음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친구는 암에 걸릴까 봐 걱정할 뿐, 초짜의 힘겨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버섯의 항암효과에 대해서 듣고 있는데 아직 열심인 알바생은 밥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하트 만들려고요?”

“네? 네..”


내 질문에 얼굴이 붉어진 그는 아저씨 둘이 먹는 철판 위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그만둘 만도 한데 묵묵히 열심히 예술하고 떠났다. 사장이 깐깐한가? 

아니다. 초짜가 뭘 생각하고 말고 가 있나. 만들어야 하는 거면 그냥 만드는 거지. 누가 앉아 있던, 무슨 얘기를 하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가자.

그런 결심을 하고 다시 물레 앞에 앉는다. 


사람의 성장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고 계단식으로 진행된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레벨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잠깐의 기쁨 끝에 또 지루한 과정이 기다리고 다시 업그레이드. 이런 식 이기 때문에 지리멸렬한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재수없는 천재들 제외.


초반부터 많이 팔지는 못할 테니. 하루 열 개정도 만들 수 있으면 된다. 하다 보면 늘겠지. 벌써부터 절망할 필요없어. 필요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달인만 살아남는 세상은 아니다.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타협인지. 깨달음인지 모를 결론을 내리고 물레를 돌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습관이 되면 힘들지 않겠지. 

이제는 여기도 그렇게 춥지 않네. 

그래도 냉난방기를 사야지. 

여름은 시원해야 제 맛이지. 

예술하지 말고 장사해야지. 

꼼수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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