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격 May 25. 2019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건 없다.

월세 낸 지 한 달이 지나 다시 또 그날이 왔다. 

언제 오픈하냐 묻는데, 어떤 상황을 오픈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장 판매가 없으니 손님 받는 날도 아니고 뭘 만들어 팔 수준이 못되는데, 준비단계를 오픈이라 할 수도 없고. 

그냥 하는 얘길 테니 흘려듣는다. 


물레 연습은 날 잡아하는 것이 아니니까. 끼고 살기로 하고 다음 단계인 상품 개발로 넘어간다. 

테스트용으로 열심히 만들어 봤던 산청토, 조형토. 물이 세서 그릇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 

이럴수가. 제품 설명에 조형토로 제작했다는 것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데.

가마 시운전도 해야 해서 몇 개를 구워봤다. 가마 식히는 데 한참이다. 초벌, 제벌 다 하니 4일 걸린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돌리겠네. 안되는데.

구매한 유약을 그대로 시유했는데, 너무 걸쭉한 느낌이었다. 


망했다. 우울한 마음에 집에 가고 싶어졌다. 심란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할 때쯤 유약의 농도를 조절해 보기로 한다. 다시 희망이 생겨 밥을 많이 먹었다. 

다음날 삼청토와 조형토로 만든 컵에 물을 따라본다. 몇 시간 후 만져 본다. 

음. 그래. 축축해. 

한숨이 나온다. 시중에 파는 것은 다른 흙을 섞어서 만드나 보다. 

다 필요 없어. 백토 하나로 가자. 차라리 잘됐어. 첫술에 배부르면 거만해졌을 텐데 잘 된 거다. 젠장. 비전공자의 삽질이 시작됐다. 유약 테스트와 병행해서 어떻게 만들어 팔지를 고민한다. 근본부터 전방위로 깊이 있게 생각해본다.

구매 행위는 왜 일어나는 가. 

1. 그것을 구매해야 죽지 않기 때문에.

2. 그것을 구매하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에.

3. 그것을 구매하면 편해지므로.

4. 그것을 구매하면 멋있어서. 


이정도밖에 생각이 안난다. 2,3,4에 집중한다. 


2. 그것을 구매하면 즐거움을 얻는다.

즐거움이라고 표현했지만 재미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으로 예를 들면 슬픈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건 우울하고 싶어서가 아닐 것이다. 내면의 슬픔을 밖으로 덜어내기 위해서 혹은 누가 슬퍼하는 모습이 위안이 돼서 그러는 걸로 생각된다. 퇴사 직전에 목포 조선소에 근무하는 김씨와 했던 문자가 생각난다. 


나 : 어떻게 지내냐?

김씨 : 죽지 못해 산다.

나 : 음. 위안이 된다. 


누군가를 위해서 머그컵에 나의 우울함을 담아야겠다. 


3. 그것이 있으면 편해진다.

큰 컵. 큰 손잡이. 편하다.


4. 그것을 구매하면 멋있어진다. 

이게 문제다. 난 얇은 것보다 두꺼운 것을 선호한다. 세련미 떨어지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직선보다는 둥글둥글 곡선을 좋아한다. 멋있게 하는 건 예술하는 전공자의 몫인 거 같다. 

나는 그냥 소박한게 좋다. 그렇게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세련돼 보인다. 그래서 투박하고 사람 냄새나는 로고를 생각한다.  대인기피하는 사람도 결국은 사람을 찾는 법. 로고는 사람의 형태로 만든다. 예전에 그렸던 스케치를 찾아본다.  

[이게 로고]


구매 행위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상품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친구들이 가끔 온다. 처음 차렸으니 구경삼아 와서 나를 비난한다. 

내가 만든 것은 너무 크고 너무 무겁단다. 너무 같은 얘기를 돌아가면서 한다.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홈쇼핑을 참고하라고 하는데. 차고 넘치는 풍요 속에 그런 건 없다. 모두가 좋아하는 건 뭐가 없어서 이만하면 됐지 하던 시절 얘기다. 


“타겟팅이라는 게 있어. 뭔 말인지 알아?”

“표적 수사”

"이런 씨"


내가 취미로 만들었던 것들을 놀러 온 그들에게 하나씩 들려 보낸다. 어디 둘 데가 없다.  


“그때 그거. 맥주 마시려고 하다가 몸이 쏠렸어. 들지를 못해.”

“그걸로 물 마시다가 이빨을 때렸어. 멈추지를 못해. 너를 욕했지.”


제품을 통해 추억이 남아야 한다. 이야깃거리도 상품성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이야기했다. 성공이다. 


이번에는 브랜드를 생각해 본다. 

잘 나가는 메이커에는 철학이 있다. 환경 보호가 제일 많은 듯하다. 미니멀, 레트로, 건강 이런 걸 다 끌어 모아 반영할 궁리를 한다. 

친구들과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셨다. 스트레스받으며 만들어낸 제품이 소비자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초자연적인 얘기를 하는데 그들이 쳐다를 안 본다.


“내 말 안 들려?”

“어? 뭐?”


종이컵 쓰는 걸로 한참을 싸웠다. 


“종이는 재활용 되잖아!”

“공장 돌려야 하잖아. 나무 잘라서 만들고!”

“그럼 머그컵 싸 갖고 다녀!”

“그냥 먹으면 되지! 뭘 따라먹어!”

“싫다고!”


브랜드 철학은 포기. 


마지막으로 가격을 생각해 본다. 


“얼마에 팔 거야?”


세상이 열광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 다음에 따라 붙는 질문이다. 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넌 얼마에 살 거야?”

“오천 원”


원가도 안 나오는 얘기. 시중에서 그렇게 구할 수 있으니 할 말은 없다. 그래서 더욱 가격이 고민된다. 

값어치.. 떡 사 먹을 때 천원은 큰돈이고 빵 사 먹을 때 천원은 푼돈이다. 칼국수가 만원이면 안 먹고 파스타, 쌀국수가 만원이면 먹는다. 값어치라는 것이 상대적인 얘기라서 노력과 상관없이 사회 통념을 기준 삼을 수밖에 없다.  

공장에서 쭉쭉 뽑아낸 건지. 한 땀 한 땀 생산한 건지 알게 뭔가. 예쁘고 좋으면 그만이지. 

내 미흡함을 단가에 반영하면 안 되므로 생산 능력을 좀 더 확인 후 결정하는 걸로 하고 미룬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진도는 계속 나간다.


원래 나는 대중적인 인간이 못된다.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 먹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노래로 보면 언니네 이발관, 검정치마 같은 얘들이 좋다. 왜 좋을 까. 핏대 세우며 열심히 부르지도 않는데, 시큰둥한데, 그런 노래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언니네 이발관은 참 오래 들었는데 아직도 괜찮다. 자전거 타며 많이 들었는데 지금도 그때 기분이 느껴져서 좋다. 삐딱함을 깔고 있는데 철없어 보이지 않고 상투적이지도 않게 느껴지고. 정서가 맞아 들어간다고 하면 되나?

그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낸 건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운이 좋았던 건지. 

우선 내가 만족스럽게 좋아할 만한 것을 하고 정서가 맞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운에 맡겨 봐야겠다.  


친구들의 비난과 개인사정(친척과 돈거래 후 소송준비)이 겹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분전환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요즘 들어 좋았던 시절을 좋은 줄 모르고 보냈던 것이 후회가 많이 되는데, 앞으로 그러지 않기 위해서 축하하고 기록을 남기며 살기로 했다. 버티기 기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사소한 성취도 축하하기로 했다.

책에서 구멍이 숭숭 난 의자 얘기를 봤다. 기념일마다 포도주를 마시고 코르크 마개로 구멍을 메워서 완성하는 의자다. 성취의 순간을 기록하고 남겨서 완성하는 것인데. 많은 사연이 깃들고 영원히 버릴 수 없는 의자가 될 것 같다. 어떻게 남길까. 포도주는 잘 모르는데.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살까? 소주병을 모으는 것은..

우선, 오픈식을 먼저 해야겠다. 


기분 좋은 야근. 

근처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저녁 먹자고 해서 나갔다. 자전거 타고 느릿느릿 동네 구경을 했다. 킁킁거리다 보면 냄새가 났는데, 온통 아카시아 나무로 덮인 동네였다. 한참이구나.


멀리 치악산도 보이고 적당히 한적하고 쫌 나가면 사 먹을 데도 있고. 괜찮은 동네구나. 숲 속에 대한 미련은 아직 있지만 괜찮은 데 구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주변 공사가 좀 빨리 끝났으면 하는데, 몇년을 이어갈거 같다. 


저녁 먹자고 한 그는 이미 낮술로 한병 반을 먹은 상태였다. 폼생폼사로 사는 앤 데, 최근에 망했다. 근본이 밝은 애라 여전히 씩씩했다. 나도 저래야 하는데.


“그래도 나. 진실되게 했다.”


허세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짜증이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폼 잡나?


“일 얘기하는데 진실이 왜 나와? 열심히 했냐. 놀았냐. 그런 얘기를 해야지. 진실이 여기서 왜 나와!”


취한 애 질타하다가 헤어졌다. 슬슬 아카시아 냄새 맡으며 공방으로 돌아왔다. 늦은 저녁의 공방은 처음이다. 

차 지날 때마다 먼지 풀풀 나는 동네. 공사 소리에 창문을 닫게 되는 발전하는 동네. 

저녁이 되니 딴 세상이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동네였어? 

창을 모두 열자 비 온 뒤 습한 공기가 상쾌하게 들어왔다. 논에서 정신없이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가 북적거리는 야시장에 온 듯 들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라디오에서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연이어 나왔다. 신기하네. 난 특이 취향인데.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밤에 일해도 힘들지가 않네.


근데, 생각해보니 일 얘기에서 진실이라는 게 나올 수도 있겠다. 내 자신을 숨기고 꽃이나 고양이를 그려 넣는 행위는 거짓이다. 없는 얘기 만들어 팔지 말아야지. 우울함을 담아내야지.

작가의 이전글 달인보다 장사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