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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Jun 25. 2019

이게 이제 나의 삶.

평일이지만 새벽에 축구를 본다. 

눈이 떠질 때까지 자면 되고 집에서부터 20분이면 일터에 도착한다. 이제는 차로 다니므로 눈 앞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보고 짜증 나는 일도 없다. 도시 외곽으로 가는 한적한 길이라 교통체증도 없어서 하루의 시작은 늘 순조롭다.

공방에 들어서면 라디오를 켜고 오전 내내 먹을 커피를 준비한다. 대형 머그컵에 묽게 타므로 커피맛 물이 맞는 표현이다. 무거워 두 손으로 받쳐 드는데, 인간들이 이런 상황을 싫어한다. 

운동되고 좋구먼.

어제 만들어 놨던 기물이 얼마나 말랐는지 살핀다. 

한적한 동네. 조용한 관계로 간간이 지나치는 차 소리가 꽤나 크게 들린다. 신경 쓰여 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다. 고향 내려오면 자연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그 밖의 인기척이라고는 라디오 소리밖에 없다. 옆에 짓고 있는 빌라도 이제 막바지 인가보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든 창을 열어 놓고 닫는 일이 없다. 자연의 소리는 별로 없고 가끔 들리는 새소리도 청량감이 없다. 주변에 나무가 없고 논이다 보니 야생 오리, 꿩 같은 대형 조류가 날아든다. 그들은 지저귄다기보다 짖는다.


마주치는 사람 없고 격식 차릴 일도 없으니 편하게 다니면 된다. 때 안 타고 스판으로 간지 나는 반바지를 사야겠다. 

바쁘게 처리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언성 높여 잘잘못 가릴 일도 없고 꼴 보기 싫은 인간, 신경 써야 하는 애도 없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없다.  


반갑게 비가 온다. 열어 놓은 창으로 습한 바람이 들어오면 낮술 생각이 난다. 논바닥 보이는 쪽의 창문이 바닥까지 내려오도록 했으면 그 앞에 의자 놓고 고기 구워 먹을 텐데. 빌라를 재미없게 지어 놨다. 공방 문 앞에서는 그 짓을 할 수가 없다. 가끔이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눈 둘 곳이 없으니 공방 안을 살핀다. 나는 자연스럽게 돌아선다. 뭔가 가림막을 해야겠다.

빗소리와 함께 라디오 소리가 조용히 깔린다. 사람들이 거기서 거기인 것에 즐거워하고 사소한 것에 감사해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논에 야생 오리가 머리를 박고 누빈다. 

평화롭고 편안하다. 그리고 심심하다.


고요한만큼 잡생각이 드는데 주로 걱정이다. 지금 시점에서 당연한 것이기는 한데, 걱정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가 버리니 괜스레 피곤하고 한숨과 함께 앉고만 싶어 진다. 성공 스토리를 상상하고 웃어 봐도 금방 입꼬리가 쳐진다. 우울함이 천성이다.   


공방 차린 지는 2개월이 됐다. 어떤 모양으로 할지 유약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생산성 확보를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3주를 보냈다. 물레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더디게 늘고 균일하게 똑같이 만들어 지지도 않는다.  

유약 실험도 5차까지 진행했다. 괜찮은 색을 찾기는 했는데, 때마다 편차 없이 잘 나올지 의문이다. 의미 있는 진전이 없어서 우울하다. 사소한 것으로도 기념하고 축배를 들려했는데, 기분이 따라주지 않는다. 축배를 들면 기분이 좋아지려나? 

안 팔릴 까 봐 불안하니 뭘 자꾸 꾸미게 되고 그러면 공정이 늘어나 생산성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단가가 올라가고. 개성과 대중성, 생산성을 놓고 챗바퀴도는 고민을 계속한다. 

단가는 물레를 충분히 연습해서 확인된 능력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고 미뤘지만 물레 실력이 생각만큼 쭉쭉 늘지 않으니 마음은 점점 무겁고 조바심이 생긴다. 

요즘 내 행동의 동력은 걱정이다. 걱정이 이른 아침에 눈을 뜨게 한다. 당연히 원했던 삶은 아니다. 

공방을 차렸으니 친구들이 놀러 온다. 주기적으로 오는 친구들도 있고 온 가족이 모두 오기도 한다. 그리고 한 마디씩 한다. 


컵이 이렇게 커?

무거워. 

밥그릇, 국그릇 세트. 접시를 만들어. 주부들이 그런 걸 좋아해. 

다완 세트가 돈이 돼. 

특이하게 만들어야지.  

사진 인쇄해 붙여. 요즘 난 애들 사진 있는 컵만 써. 

포트메리온처럼, 오덴세처럼 만들어. 

내가 한 세트 주문 하마. 원가로.


다들 맞는 얘기겠지만 난 지금 집중해서 한 치 앞만 바라보고 달려야 할 때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닌데 너무 먼 얘기를 한다. 


“얘는 내 말 안 들어.”


의견을 주는 것이 아니고 가르치려 한다. 그들은 갑자기 전문가가 되었다. 장난으로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런 가르침이 한 귀로 흘러들어와 쌓여만 간다. 서울 벗어나면 이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까칠함이 되살아난다. 


“알았어. 시끄러.”


너무 크다. 무겁다는 의견에 지쳐 크기를 줄여서 만들어 본다. 

어라. 만들기가 수월하다. 실력이 늘기는 했나 보다. 물레 차는 시간도 준다. 목표치만큼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보이자 마음이 변한다. 이렇게 해야겠다. 차별성을 포기하니 가능성이 보였다. 다들 대형 컵을 안 만드는 게 이런 탓인가? 작으면 이뻐 보이기도 한다. 이건 타협이 아니라 깨닭음이다.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에 비해 답이 간단했다. 얘들이 꾸준히 얘기했던 건데 그걸 이제서 받아들이는 게 내가 혼자 동굴 파고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팔랑귀를 피하려다가 고집쟁이가 된 거 같다. 

이건 내가 사람을 좋아할 줄 몰라서 방어적으로 구는 습관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애정이 있었으면 그런 얘기들이 귀엽게 느껴지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였겠지. 경계하며 들었던 것 같다. 

정상 크기로 얼마나 생산 가능한지 물레 차고 굽 깎고 손잡이 만들어 붙이고. 며칠간 해본다. 

젠장. 상품의 품질은 마감에서 결정되는데 생산성에 문제가 될 정도로 시간을 잡아먹는다. 

굽 깎이와 손잡이 만들어 붙이는 게 물레 차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말리는 과정에서도 손잡이 접합 부위를 확인해야 한다. 실금이 자주 가는데 기능상 문제는 없지만 상품으로 팔기가 어렵다. 취미일 때는 상관없었는데, 팔려고 하니 상식 수준까지 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 밖에도 초벌 기물 확인해서 거친 부분 다듬고 먼지 털어내고 하는데, 기물 수가 늘어나니 이것도 무시할 수 없이 시간이 소모된다. 큰일이다. 

돈 벌려고 하니 이것 또한 시간 싸움이다. 

하루에 열 개 만드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잠깐의 안도가 우울함으로 변한다. 우울함이 운명이다.


해결되는 문제보다 새삼 알게 되는 문제가 더 많으니 판매 시점은 점점 멀어져 간다. 지치지 않게 내 페이스로 가야 하는데, 그래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안될 일을 시작한 건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일에 눈치 없이 뛰어든 건가?  

만들어 파는 것보다 수강료로 먹고사는 게 맞는 건가? 기계가 할 일과 사람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모든 제조는 기계가 할 일인 것 같다.

피 끓는 열정으로 피곤함을 언제까지 이겨낼 수 있을 까. 물론 열정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있었다 해도 피곤함을 이길 순 없다. 과정이 고생스러우니 더욱 회의감이 든다. 


편하게 사는 것이 새로운 생활의 목표였나? 

그런 것 같다. 힘들면 쉬고, 한가하게 책 읽고 영화 보고 비올 때면 낮술 먹고. 농담처럼 얘기했었는데 내면에서는 상당히 기대했던 것 같다. 어디 여행 가는 것처럼 계획 잡고 기대했었구나. 바쁘게 쉴 새 없이 움직여야 겨우 먹고살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따라붙는다. 


“이제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어이없어한다. 어이없지.

환상을 다듬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그 간극을 좁혀봐야 한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접어야지. 실패의 타격은 너무 큰데. 

하여간 지금 단계는 어쨌든 한 치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시기이니까. 불안을 그냥 안고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직장생활 적응 못해도 견뎌내기는 했으니까. 견뎌내게 되면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실패는 않겠지. 서울에서도 살았는데, 여기서는 당연히 살아가겠지. 성공과 실패 어디쯤으로 살아가겠지. 그러면 됐다. 평화로우니까.

SNS로 도예 선배들의 생활을 열심히 기웃거리고 우울해지면 안 되므로 예능 프로를 챙겨본다. 스페인 하숙, 강식당, 현지 식당. 실패가 없는 장사 얘기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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