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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Jul 31. 2019

느릿한 변화

별거 없는 길거리. 매일 지는 해. 가로등. 운동장. 오래 살려고 질서 있게 걷는 사람들. 이런 일상이 예쁘게 느껴진다. 젊어서 알던 걸 잊는 경우도 많지만 나이 들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하루 종일 틀어 놓는 라디오에서는 좋은 얘기들의 연속이다. 단골 메뉴 중 하나가 오늘, 현재에 대한 얘기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시간을 되돌려 온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어제, 오늘, 내일 중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오늘 밖에 없다. 


현재가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하라는 얘기는 없다. 떠먹여 주지 않아서 혼자 고민을 한다. 

일이라는 게 시간과의 싸움이라 늘 효율을 따지게 되고 결국 습관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벌어 논 돈도 날리고 나이도 많으니 조급함이 더해졌다. 쉴 시간을 벌기 위해 일을 서둘렀는데 쉴 때도 효율을 따진다.  친구를 대할 때도 서론, 본론, 결론의 구색을 맞추는 애들을 보면 답답하다.


“왜 전화야?”

“밥 먹었어?”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왜 물어. 본론을 얘기해. 아니 결론을 얘기해.”


사적인 생활과 일은 구분해야 한다고 해서 편안함이나 즐거움, 여유 같은 것을 일에서 찾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 열심히 일하던 습관이 직장 밖에서도 적용돼서 효율성, 신속, 정확함을 따지는 것이다. 노는데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즐기는 태도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 보니 과거가 즐겁게 떠오르지 않는다. 결과 위주로 기억나는데, 잘된 건 당연한 거고 잘못된 건 곱씹게 되니 실패의 기억밖에 없다. 아니면 진짜 실패만 한 것이고...

과정이 삶이고 결과는 부록인데, 너무 오래 효율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오래전 회사에 항상 웃은 얼굴로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술이 덜 깨서 저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약속에 늦었다. 


“진짜 일찍 출발했어요. 진짜.” (웃는 얼굴)


추궁하면 매번 같은 핑계를 댔다. 그러던 어느 날도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다. 늦었는데 앞을 보고 걷질 않는다. 주변을 기웃거리고 멈춰서 지켜보고 궁금해하고 그에게 세상은 재밌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의 핑계는 거짓이 아니었다. 


중년들이 만나 술을 먹으니 과거 얘기를 많이 한다. 그때 나도 있었을 텐데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무심히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들에게 과거는 그냥 지나간 일, 의미 없는 일이 아니고 현재에도 즐거움을 주는 든든한 버팀목 같기도 하다. 

오늘을 사는 것은 조급함을 버리고 두리번거리는 일인 것 같다. 약속 같은 건 늦을 수도 있다. 술이 덜 깬 것처럼 웃으면 되는데... 


조급함을 버리기 위해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결심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좋게 보지 않던 모습을 다르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해서 열광하는 사람들에게서 불금 보낸 토요일 아침 먹자골목 풍경이 떠올랐었다. 퀸은 신인도 아니고 그동안 수없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는데, 새삼 이렇게 열광하는 게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질 열광. 먹자골목 아침 풍경처럼 쓰레기만 날리고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런 모습을 다르게 해석해본다. 그런 이들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목표다. 목표를 위해 어느 정도 거짓이나 과장은 문제 되지 않는다. 퀸은 목적이 아니고 어울리기 위한 소재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여서 노는 것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장되게 호들갑 좀 떠는 것을 문제 될 게 없는 것이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잘 놀고 있는 그들을 시기했던 것인가? 

좋은 의도로 충고를 해주는데, 방어적으로 고집 피우는 이들을 보면 내 모습이라고 중얼댄다. 내향적인 나는 사교를 위해 신경 쓰고 애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덕에 모든 일을 스스로 혼자 해결해야 했고 심심함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사교행위는 피곤한 일,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아니고 노는 행위, 즐거운 일 인 것 같다. 


가끔 길가던 사람들이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선다. 사람 맞을 생각이 없던 너저분 곳에 낯선 이 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고 긴장하게 된다.  


“수강은 안 하는데요..”


기어들어 가는 소리를 내면 대부분 어색하게 돌아서지만 한참을 구경하다 가시는 분들도 있고 뭐라도 사고 싶은데 하면서 돌아서질 않는 분도 계신다. 

그럴 경우 한참을 얘기하고 개인적인 상황도 공유를 하게 된다.  

어쩌다 공방을 차리고 온라인 판매만 생각하고 있고 지금은 준비 중이고 서울 살다 왔고..


꼭 뭐라도 사가야겠다고 해서 취미 시절 만들었던 것에 몇 천 원의 형식적인 가격을 붙여 판매한 적이 있다. 그냥 드리겠다고 하니 그건 경우가 아니라고 장사를 시작했으면 상품에 가격을 매길 줄 알아야 하지 않냐고..   

그렇게 몇천 원에 수습하고 혼자가 되자 이마에 맺힌 땀이 뒤늦게 느껴졌다. 

대화가 길어지면 피곤함이 밀려온다. 그런 대화가 일이 아니고 노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빨리 끝내고 잘 보여야 한다는 효율을 따지는 계산이 바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만남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질문과 답변을 곱씹게 된다. 


찜찜하구먼. 이쁘다고 구경하는 것이니 고마운 거지. 가져가서 잘 쓰시고 두고두고 좋은 감정을 느끼시겠지. 


뒤늦게 편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서툴고 힘들어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법을 모르고 흘려보냈던 젊은 시절까지 떠올리며 씁쓸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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