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후 6개월
웃는 얼굴로 쓰고 있다.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가다 보니 억지 괴변과 우울함만 공유했던 거 같다. 그래서 한동안 브런치를 하지 않았다. 아직도 어떤 얘길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써야 감을 잡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밝은 분위기로 정리하려 한다.
4월 25일 입점. 기초적인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데 2개월 정도 소요됐다.
기술이 필요한 공사(바닥공사, 승압, 천장 조명 설치, 전기 가마를 위한 배선 작업 등) 외에는 직접 재료를 사다가 조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오래 걸리고 피곤했다.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의뢰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정해진 가격이 있는 작업들이 아니니 지식 좀 쌓고 아는 척해가며 견적 내고 (블로그 엄청 뒤짐, 모두 광고성 글이므로 필요한 정보를 요령 것 추출해야 함)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일정 맞추고 하면서 2개월 이상 소요되었다. 하나같이 바쁘신 분들이었다.
기다림으로 인내하는 시간이 대부분. 그 시간에 놀 수 없으니 다른 것들을 병행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신경을 쓰고 하는 거 없이 피곤해진다.
2개월 정도 지난 시점부터 머그컵을 만들기 시작했다. 머그컵 전문으로 시작하여 노하우와 여유가 생기면 조금씩 다른 짓을 하자고 계획 세웠다. 선택과 집중이란 것에 꽂혀 있었다.
발색이나 질감을 보기 위해 이런저런 흙과 유약을 사용해 봤다. 전공자도 아니고 경력자도 아닌 초짜이므로 기초부터 실험을 통해 지식을 쌓아야 했다. 여기서 실험을 통한다는 말은 실패를 통한다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난감한 일들이 생기고 비슷한 삽질을 하다 보면 자책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남 탓을 해야 하는데 주변에 누가 없어서 묵묵히 진행했다.
몇 개 안 되는 기물을 테스트하기 위해 가마를 돌리는 게 아깝고 완제품을 보기 위해 일주일 이상 소요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한 번의 실험으로 엄청난 교훈을 끌어내야 하는데 요령 없는 노력은 답답하기만 했다. 두리번거리며 누구 하나 걸렸으면 했지만 나 홀로 창업이라서 답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유약은 아직이니 초벌 기물까지는 만들어 놓자. 형태는 이 정도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차게 물레를 돌리고 초벌구이를 해댔다. 눈떠보니 오후가 될 정도로 피곤하게 몸을 혹사시켰다. 손가락, 무릎 등의 각종 관절이 쑤셨다. 육체노동자임을 실감했고 그게 불안감을 덜어 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무식해지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어쨌든 물레 차는 실력이 늘었다. 근데 그에 따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이 정도면 된 거지. 나름 개성이 있으니 팔리겠지, 크기가 크니 무거울 수밖에. 묵직함은 안정감을 주지.... 그렇고 말고.
기물을 크고 가볍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뭐. 무겁고 엉성하다. 그땐 왜 몰랐지?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보호 기제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뒤늦은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많네. 어따 버리지?
끈기 있게 가야 하니까 자학하지 말고 나태하게 살아보자고 낮술 마시고 웃긴 영화 들여다보고 어디 애들 노는덴 반드시 끼고... 노력했지만 맘이 편해지지 않았다. 의욕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걱정이 쌓이면 의욕이 생기는 거 아니었나?
해야 할 작업을 기술하고 일정을 잡아 보지만 초짜가 세운 계획은 무산되기 일쑤였고 어차피 그대로 되지 않을 거라 손이 가는 데로 움직였다. 근육이 잡힌 익숙한 작업에 손이 간다. 가이드하는 사람이 없으니 골 아픈 일은 뒤로 미루고 만만한 노동을 열심히 하게 된다. 열심히 했으니 됐어. 괜찮아 됐어.
내 속도로 가면 지치지 않을 거라 떠들고 다녔는데, 내 속도가 뭔지 모른다. 헛살았다.
그것은 불안감과 주변 시선에 대한 맷집, 체력 같은 걸로 결정되는 것 같다. 맷집이 다해서 버티기 힘드니 뭘 해야겠는데, 체력이 안 따라주니 맘과 다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따로 논다.
맷집이 있으면 누가 뭐라 하든 맘 편히 놀텐데, 지금은 불편한 맘으로 놀고 있다.
동업이라도 했으면 눈치 보여서 혹은 내가 하는 잔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 열심히 했을 텐데, 구속될 게 없으니 게으름이 자유를 얻었다.
고민도 오락가락했다.
품질 확보를 고민하다가 개성 없인 안된다고 이것저것 꾸밀 생각을 하고 다음날 되면 단가 낮춰야 한다고 손가는 일을 빼려 한다. 고민조차 제대로 꾸준히 하질 못했다.
동태를 살피고자 인터넷 돌아다니고 괜찮아 보이는데 너무나 저렴한 가격을 보면 심장이 덜컥 절망적인 생각을 한다. 기계가 정신없이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수작업으로 하겠다는 게 무식하게 무모한 짓인가?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짓을 한 건가?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또 웃음이 난다. 엄청난 짓을 했구나.
놀러 온 한가한 이들이 계속 심기를 건드린다.
뭔가 생산해서 팔아본 경험이 없는 그들은, 도자기나 디자인 제품에 관심 줘본 적이 없는 그들은 이것저것 해보라고 쉽게 던지고 이래저래 해서 어렵다는 친절한 설명에도 고집 센 염세주의자라고 평한다. 보통의 무난한 삶을 살며 평안이 최고인 것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니 번갈아 가며 똑같은 얘기를 한다.
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남다른 길을 가지 말고 남들 다하는 걸 해야 한다.
참고할 만한 얘기가 없고 힘이 될만한 얘기도 없다. 미니멀한 대인관계가 답답함을 안겨준다.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 그들의 훈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머그컵은 저절로 생기는 거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식기, 그릇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훈계이고 그것은 판매 대상을 30대 직장인에서 4,50대 주부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는 머그컵 같은데 쓸 돈이 없다. 스벅 로고 박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4,50대는 돈이 있지만 머그컵엔 관심이 없다.
식기 쪽으로 전환하고 8월부터 사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머그컵만으로 부자 되려 했는데 좌절이었다. 근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다. 손잡이 만들어 붙이는 번거로움이 빠지자 불량률도 줄고 생산성이 늘었다. 근데 사이즈 큰 걸 만들다 보니 휘거나 금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두께를 너무 얇게 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의 무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보는 눈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조금 보이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판매 시점은 미뤄졌다.
뜨거운 여름이 지내고 찬바람에 잠이 깨자 또다시 덜꺽 겁이 났다. 가마 떼기 좋은 계절이 왔구나. 이제는 진짜 미룰 수가 없다.
6개월이 지났다. 월세 내고 있으므로 압박이 점점 느껴진다.
다들 미약한 초창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단체로 움직일 땐 신입의 부족함을 경력자들이 보완해주지만, 1인 창업의 경우 어설프게 만든 제품이 날고 기는 능력자들의 그것과 경쟁해야 한다. 불공평하다고 억울해 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한동안 매출 없이 새로운 깨달음만 계속될 것 같다. 그때까지 견딜 수 있는 밑천이 필요하다. 돈도 문제지만 의욕이 바닥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느긋하게 가자고 계속 꾸준히 다짐을 하려 한다. 성격은 변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조급함에서 오는 것 같다.
어차피 안될 거지만 계획 없이 갈 수도 없으므로 칠판 하나 만들어서 기술해야겠다. 머릿속에만 넣어 두니 정리되지 않고 의미 없는 고민을 반복하는 것 같다. 완료되면 지워가는 재미와 어떤 일을 해결했는지 한눈에 확인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빨리하려는 생각이 의욕을 떨어뜨려 시작도 못하게 할 수 있으니 시간은 정하지 말자. 아니다 난 구속이 필요하므로 시간을 정하자. 대신 넉넉히 하자. 힘들면 놀면 되는 거다. 걱정과 비관을 더하지 말자.
답답한 대인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좋은 소리만 하는 어색한 관계. 이런 생각을 몇 개월 전부터 했던 거 같은데 답이 없다.
웃는 얼굴로 시작했지만 내용은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