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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Nov 11. 2019

노멀 한 놈의 개성 찾기

힙해지고 싶습니다

그동안 상당히 열심히 연습해서 머그컵 만드는데 적응이 좀 됐다 싶을 때 돈 안됨을 깨닫고 사발, 밥그릇, 접시 같이 생전 안 해 본 주방 식기를 해보고 있다. 모양새도 고민이지만 균일하게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아 기분이 바닥칠 때 A가 공방에 들렀다. 충주 강변 시장(리버 마켓)에 놀러 갔다 왔단다. 평생 도자기에 관심 없던 애들이 내가 이런 걸 하고 있으니 가끔 눈에 들어오나 보다.  


A : 많더라 도자기. 다 특이하고 개성 있어. 그 뭐야 커피 내리는 것도 있어

나 : (개성... 그래 특이하고 개성 있어야지) 샀어? 

A : 유기농 대추청 팔더라. 유정란도 있고 치아바타도 만들어 팔어. 나 그거 좋아하잖아. 

나 : 음. 그래.


대한민국에서 도자기는 아직 돈 되는 산업은 아닌 거 같다. 안될 일에 힘쓰고 있는 거다. 어떻게 하면 설탕 절인 대추를 이길 수 있을까? 자연방사 유정란은 어찌 하나. 열심히로 될 일인가? A가 가고 나서 일은 안 하고 창밖만 본다. 높은 하늘. 선선한 날씨. 직업 바꾸고 고향 내려오면 계절을 만끽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일뿐이다. 

고향 내려와 느림, 비움, 능동적 가난, 소박, 마음 챙김. 유행하는 말들을 떠들고 다녔다. 근데, 사소한 것에 만족하고 느긋하게 구는 것이 좀처럼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서두르기로 했다. 예전처럼 바쁘게 살기로 했다. 행복 같은 걸 뒷전이다. 난 그냥 노멀 한 놈이다. 


근데 그게 또 문제. 


이제 좀 기성품 흉내를 내는 것 같은데, 노멀 한 걸로는 시선을 끌 수가 없다. 

요즘 세상은 뭘 몰라서 혹은 너무 멀어서 못 사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승자독식의 경향이 있다. 맛집 하면 전국에서 모여 줄을 서도 그 옆집 혹은 동네 비슷한 집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쪽 시장은 쟁쟁한 기업가들에게 양보하고 소량 생산인 나는 유니크하게 힙한 걸 만들어야 한다. 취향저격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힙하다는 표현이다. 요즘 유행인 것 같은데, 쿨하거나 멋진 것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그것과 조금 달리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드러내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자신감이 아니고 자존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거기에 유닉하다가 추가돼서 유행과도 구별되는 것 같다. 

그래서 힙한 물건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것은 분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힙한 놈이 돼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난 (어쩔 수 없이) 노멀 한 놈이다. 그래서 창밖을 보게 된다. 멍 때리다 내린 결론은 일단 나다운 짓을 먼저 찾자는 것이다. 

나다운 짓. 예전에 회사애가 밥 먹다 TV 광고의 나답게 살겠다는 말이 멋있다고 한 적이 있고 나는 즉각적으로 면박을 줬다. 

나답게 사는 게 뭔데? 멋내기용 관용구잖아. 그런 걸 멋있어하니 니 인생이 그런 거야. 

왜 그리 따져대며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사회화에 힘써왔던 나는 나답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이제는 그걸 찾아야겠다.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하고 싶은 건 참지 않으면 되는 거 같은데 그건 결국 회사 그만두고 고향 내려온 이유 이기도 하다. 초심을 자연스럽게 잊고 기존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렇듯 상황과 현실에 자유로운 놈은 못되니 제대로 노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은 하고 있는 일, 도자기 제조 공정에서 피곤하거나 내키지 않는 것을 빼기로 했다. 


머그컵은 손이 많이 가지만 그에 맞게 가격을 받을 수 없으니 주력 품목에서 제외. 

심플하고 모던한 것을 좋아하고 게으른 편이니 형태와 때깔로만 승부.

그림 그려 넣는 작업 제외. 피곤.

딱지 만들어 붙이던 공방 로고는 도장 찍는 것으로 간편화.

로고가 로고답지 않아서 고민했지만 놀듯 하자고 했던 결심을 다시 상기하고 힙하게 밀어붙인다.

[세련된 로고]

유약은 그동안 테스트하며 개발했던 것들 중 빈티지한 무광으로 간다. 난 그런 놈이다. 광택은 촌스럽다. 근데, 그중에서도 맘에 드는 것이 있으니 그건 또 포함시킨다. 내 맘대로 하는 게 개성이다. 이렇게 유약에 대한 욕심도 마무리 친다.  


마감(품질)에 대해서는 부족함을 굳이 숨기지 말고 거칠게 연출되는 부분을 솔직히 얘기하며 팔아보려 한다. 차갑도록 말끔하고 완벽한 제품은 기업인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투박하고, 무심한 느낌은 괜찮지만 성의 없음은 안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충분히 고민해보고 명심해야 한다. 명심하기 위해서는 글과 그림으로 정리해야 한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실천이 안 된다.


싫은 과정을 빼버리고 재밌는 걸로만 진행하면 나다운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 신호 대기하고 있자니 새삼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참 많구나. 이런저런 가게들도 많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나도 뭐 어떻게든 살겠지. 편히 일하고 그 정도 벌고 그에 맞춰하고 싶은 거 하고 없어 보여도 그게 나라고 인정하고 궁핍해도 단정하면 없어 보이지는 않겠지.


지금의 시행착오는 내게 맞는 생활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다.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대세로 확인된 삶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나를 살펴가며 내가 기획해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에 했어야 할 숙제를 이제서 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노멀함에서 벗어나 개성을 갖게 되겠지. 힙한 놈이 되면 힙한 상품을 만들고 부자 되겠지.

방향을 잘 잡은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은 편안함이 찾아오는 날이구나.  



내일은 불안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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