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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Dec 08. 2019

고집과 우직함의 구별

 

같은 말이지만 고집은 부정적일 때 우직함은 긍정적일 때 쓰인다. 

귀가 얇다는 것과 유연하다는 것도 같은 식이다. 

남의 일인 경우 결과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근데 내 얘기가 되면 인생 결판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난 지금 성실하고 우직한 건가 고집 피우는 답답이 인가. 


그동안 고집을 부렸던 것들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진득하니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 안에 갇혀서 사리판단을 못했던 것이다. 결과 없이 소모되는 노력과 시간이 자괴감을 들게 하고 술을 찾게 했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아직도 유약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2개월 전에 고민 그만하고 있는 걸로 가자 결단 내렸는데 본격 판매를 생각하니 안될 것 같다. 백퍼 안돼. 

그래서 아직도 머릿속에 있는 빛깔을 현실화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속 실망이다. 가마 한번 돌리면 3일 후에나 결과를 볼 수 있고 비용도 들기에 가볍고 자유롭게 실험할 수도 없다. 

기분 좋은 날은 기존 것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날고 기는 선배들이 생계를 걸로 노력해서 대박이라고 내놓은 제품들과 경쟁해야 한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이밀려면 괜찮다 정도로는 안된다.


그래서 아직 최종 제품을 확정 못하고 있는데, 이게 미련이고 고집인지. 부족을 메우기 위한 우직한 노력인지. 모르겠다. 

답을 내려줄 사람 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외롭다.  

가치 없는 것에 매달리면 고집이라고 했는데, 가치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는 노답 초짜는 답답하기만 하다. 


좌절 그만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해 봤다. 자기 성찰까지 가면 너무 멀리 가는 건데 초짜는 적정선을 잘 모르니까. 하여간. 


얼마 전 친구들과 논쟁을 벌였다. 나는 원래 분란을 일으킨다. 

한마음인 그들은 중, 고등학교 사무직과 교사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어 비슷한 수준까지 된다는 기사에 통탄하고 있었다. 어렵게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됐는데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교직원과 같은 수준의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기를 든 나는 왜 임용고시의 대가를 그렇게 해석하느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싶어서 시험을 봤고 교사가 돼서 애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으면 된 거지. 차별적인 금전 보상이 왜 거기에 따라붙냐. 본인 임금 깎이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시험을 패스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다시 주장했다. 같은 말의 반복을 좀 하다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대가로 평생 괜찮은 임금과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걸로 끝났다. 


그들은 정년 때까지 인생 보장된 공무원이거나 공기업 직원이다. 말로는 힘들다고 하지만 은은하게 풍겨오는 우월감에서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들이 기에 자기 방어적 사고가 경직을 불러오고 그 안에 갇힌 것으로 보인다. 

난 아니다. 이상과 같이 유연하게 사고하는 놈이다. 그런 내가 자기 방어로 고집을 피우고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행위도 의미 있는 노력인 것이다...라고 자평하게 됐다. 

근데, 그들은 나를 고집스러운 놈으로 보고 있다. 나는 누구의 얘기가 납득이 돼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한다. 묻고 따지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놈이 못된다. 사회성이 없는 것이다.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선임, 상급자들이 많았다. 사회화가 완벽한 친구들의 시선에서는 고집 센 답답이 일 뿐이다. 


단톡 방에 한 친구가 도자기 공방에 대한 기사를 올린 적이 있다. 나 보라고 그런 거겠지만 열심히 사는 나는 못 보고 업무시간이라 한가한 그들은 그걸로 한참 얘기가 진행돼 있었다.   

기사는 성격 좋고 예쁘게 웃는 젊은이가 발품 팔아가며 열심히 홍보해서 성공했다는 행정자치부의 어쩌라고 기사였다. 나는 그렇게 못할 것이니 대책이 없다는 걸로 친구들의 대화는 끝나 있었다. 그래. 재미 삼아하는 얘긴데, 짜증 내지 말고 내 갈길 가자. 


우직하게 내갈길 가자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고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제목을 고집과 우직함의 구별이라 해놓고 엉뚱한 얘기만 써 놓아서 뒤늦게 내용을 추가합니다. 

지금은 위의 글을 쓰는 시점 보다 남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태도로 바뀌었습니다. 

일단 주변에 전문가가 있으면 그들의 말이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전문가는 단순히 어떤 분야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기보다는 실패와 성공을 모두 경험하고 진지하게 정리하여 case by case로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얘기합니다. 

대부분 주변에 이런 멘토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테스트 혹은 시재품을 만들어놓고 된 건지 만 건지. 

뭐가 부족한 건지...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 일단 한쪽에 치워둡니다. 관심에서 미뤄두고 다른 일을 합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다시 보게 되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반복하면서 내가 어떤 성향이구나. 파악하며 보완해야 할 것을 찾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미해서 한번 더 깊이 들어가봅니다. 


그리고 한쪽에 치워둘 때 공방에 오가는 체험 손님이 볼 수 있게 놓습니다.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는 얘기에 멀리서 귀를 기울여 봅니다. 

정답은 아닙니다.  열 명 중 한 명, 백명 중 한 명이 하는 얘기입니다. 그만큼의 크기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만 영향을 받으려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하는 게 고집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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