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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Oct 03. 2023

삼촌의 의뢰

의뢰가 들어왔다. 


대만여행을 가는데 그곳의 아는 현지인에게 코리아 프로페셔널 마스터가 만든 거라고 하며 도자기를 선물해야겠다고 했다. 

35CM 정도 높이의 용추항아리(고려청자 같은 모양)를 원했다.  


OK. 만들면 되지


근데 되지 않았다. 

흙 중에는 다루기 쉬운 흙이 있고 그렇지 못한 흙이 있다. 

밝은 백색의 빛깔 좋은 흙은 다루기가 어렵다. 

수분함량을 높여 연하게 만들면 다루기 쉽지만 크게 만들면 

무게를 못 이겨 무너져 내렸다. 

수분함량을 낮춰 단단한 상태에서 만들어 봤다. 

팔 힘도 손가락 힘도 

따라주질 못했다. 

흙을 이겨내지 못하니 흔들리게 되고 높고 고르게 만들지를 못했다. 


내가 이걸 못 하는구나.


한 달 밖에 시간이 없는데 

당장 만들어야 건조하고 초벌, 재벌하고 시간을 맞출 수 있는데.

긴장이 빡 됐다. 

연습하고 실력 키울 시간이 없었다. 

생활 식기 정도만 만들고 있어서 알지 못했다. 만만히 봤다. 


그렇다면 

꼼수를 써야지. 위,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였다. 

겉으로는 티 나지 않도록 잘 다듬었으나 안쪽까지 감쪽같지는 않았다. 

전장이었다. 

예비로 3개를 만들었는데 건조 중 2개는 금이 가버렸다. 

아웃 됐다. 

하나만 무사하면 된다

그러나 안쪽을 살피면 엉성함이 적나라하다.  

마음이 무겁다. 

유약을 무광, 광택이 없는 것으로 했다. 

무광은 소수 취향인데,

대부분은 유광을 좋아하는데,


왜 그랬을까.


삼촌에게 보여준 예시의 용추항아리가 무광이었고 

내 개인 취향이 무광이었고 

유광은 흔하고 

무광은 품위 있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괜찮다는 결론을 끌어왔다. 

정신 승리를 위해서 취면을 걸었다. 

삼촌은 벌써 그 사이즈에 맞는 고급 케이스를 주문했다고 한다. 


택배 보냈다. 


한 달 후 사촌동생의 결혼이 있었다. 삼촌을 만났다. 

대만은 잘 갔다 왔는지. 

선물을 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고 

삼촌도 별 말이 없었다. 


잘 됐으니까 말이 없는 거겠지

전문가가 아니니 모자람이 잘 보이지 않겠지. 

안쪽은 살피지 않았겠지.

무광은 질리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좋아하겠지.

최면을 걸어봤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코리아 프로페셔널 마스터가 만든 거라고는 안 했겠지.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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