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TV [테드 래소(Ted Lasso)]을 보고
처음 축구를 보기 시작한 건 갓 성인이 된 대학교 1학년때였다. 당시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이라는 팀을 좋아했다. 박지성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여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는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등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승장구하는 팀들이 있었지만, 나는 매번 4위만 하던 '아스날'에 끌렸다(그래서 '사스날'이라고 불렸다). 왜냐? 무패우승으로 유명한 아스날 전 감독 '아르센 벵거'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의 꿈은 타이틀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라운드 내에서 5분만이라도 완벽한 축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 아르센 벵거
대규모 자본의 유입으로 점차 낭만이 사라져 가는 프로축구에서 아스날과 벵거 감독이 보여준 철학은 밤을 새우며 경기를 챙겨보게 할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벵거 감독의 낭만은 계속된 성적 부진으로 그가 퇴임하면서 결국 실현되지 못했고, 나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체력적인 한계로 인해 자연스럽게 아스날과 멀어지게 되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한동안 축구와는 동떨어져 살았는데, 최근 K리그의 'FC서울'을 통해 다시 서포터즈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팀은 예전 아스날보다도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번 시즌도 결국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가서 응원가를 부르며, 함께 웃고 울다 보면 단지 승리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죽도록 뛰는 선수들과 목이 쉴 정도로 응원하는 팬들이 함께하는 그 공간 자체가 낭만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축구에서 느껴지는 이런 낭만이 좋아 결국 돌아오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축구는 낭만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감독은 파리목숨으로 조금만 성적이 떨어져도 내쳐지는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일례로 K리그의 '수원 삼성'은 성적 부진으로 이번 시즌에만 두 명의 감독을 경질시켰다(절대 비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안타까울 뿐이다). 선수들은 라이벌팀으로 이적하며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FC서울의 레전드였던 데얀이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다는 소식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거대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복잡한 이해관계도 한몫하고 있다.
가상의 인물일 뿐이지만, '테드 레소'는 차가워지던 그라운드 위에 다시 한번 온기를 느끼게 해 줬다. 축구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던 그는 팀을 망쳐 전 남편에게 복수하려는 구단주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프리미어리그 팀 'AFC 리치먼드'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연히 선수들은 그의 실력과 지도력을 의심하고, 기자들은 '오프사이드는 아세요?'라고 조롱하며, 팬들마저도 '왕재수'라고 비난했다. 부임 초반 성적이라도 좋았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랬을 리가 있나.
하지만 테드는 자신만의 시답잖은 농담으로, 친절함으로, 열정과 포용으로, 그리고 소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점차 팀을 하나로 만든다. 물론 테드 혼자서 한 건 아니다. 팀 리치먼드가 하나가 되는 과정은 테드뿐 만 아니라 무언가 하나씩은 부족하지만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하며 진행된다. 자기애와 자만심으로 가득 이기적인 선수, 전 남편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구단주, 의기소침해 자신의 의견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킷맨 등등.
이렇듯 드라마 [테드 래소]는 단순한 축구 이야기가 아니라, 한 축구팀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다양한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상처와 회복, 그리고 성장을 다룬 '사람 이야기'다.
넬슨 로드 스타디움에서 느꼈던 낭만과 그레이하운즈의 열정, 그리고 테드의 농담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