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산책하다가 문 닫힌 술집 창가에 놓인 도자기를 보았다. 인형처럼 얼굴과 몸이 있고 머리 위로 구멍이 난 형태인데 판다의 얼굴을 하고 몸에는 반복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가지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이미지로 검색하니 바로 구매처를 찾을 수 있었다. 배송료 포함해서 19000원 정도 했다.
한 몇 주 후에 현관문 앞에는 납작한 회색 비닐봉지가 놓여있었는데 주워 들자 봉지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자기는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오느라 산산조각이 났다. 같은 물건으로 교환해도 부서진 것이 또다시 올 것이 분명해서 반품을 요청했다. 비슷한 요청이 많았던지 확인하거나 되가져 가겠다는 말조차 없이 바로 환불받았다. 혹시나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한 몇 달 방구석 보이지 않는 자리에 치워 두었지만 깨진 판다모양 도자기를 되가져가봤자 어디에 쓰겠는가.
여름 무렵 정호승의 시를 읽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마침 할 일이라곤 없었다. 몇 년간 아프던 몸은 나아졌지만 크게 앓는 동안 용기를 잃어버려서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아침에 수영하는 것 말고는 집에서 가만히 머무르며 지냈다. 사회적인 신분이나 의무도 없이 처음으로 오로지 내가 되자 지난날 지키려고 애쓰다 산산조각 나 버린 것들에 대해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산산조각 나버린 도자기는 나처럼 여겨졌다. 내다 버리지도, 모르는 채 내버려 두지도 못했다. 조각난 도자기 인형들을 다시 붙인 사진들을 본 기억이 나 다이소에서 접착제를 여러 종류 사고 베란다 공구함에 담겨 있는 메꿀 거리를 가지고 와서 책상에 앉아 며칠 동안 파편을 짜 맞췄다. 얼굴 부분은 크게 두 조각으로 깨끗하게 부서져 있었기 때문에 흉이 조금 진 것처럼 딱 맞게 잘 붙었다. 이음새를 메꿔 줄 필요조차 없었다.
얼굴과 눈이 마주치자 기운이 나서 나머지 조각들도 큰 부분들부터 시작해서 짝이 맞는 것들을 찾아 붙여 나갔다.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계획 없이 보이는 대로 붙여나간 탓에 조각마다 사소한 균열이 쌓여갔다. 그래서 도자기는 원래의 생김새는 얼추 찾았지만 겉면이 울퉁불퉁하게 일그러진 만신창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조각은 엉덩이 부분이었는데 사포로 적당히 갈아내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든 붙이려면 붙였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 채로 남겨 두는 것이 좋았다. 남은 한 조각은 도자기 안에 넣어두었다.
도자기는 이제 무얼 담을 수도 없고 귀엽지도 않다. 부서졌던 것을 다시 붙였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의미가 없어서 보고 있자면 서글픈 기분이 드는 물건이 되었다. 어떻게든 제 모습을 찾아 주려고 할 수 있는 한 애썼다는 것이 지금은 중요하게 여겨져서 한동안 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불의로 부서졌다가 적당히 되붙은 못생긴 도자기처럼 여겨진다.
겨울에 만난 H가 킨츠키라는 것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해서 그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킨츠키란 부서진 도자기를 금으로 정교하게 메꾸어 아름답게 수리하는 공법이다. 그 공법을 알게 되어 내 도자기는 더 서글펐다. 만일 킨츠키라는 것을 알고 배운 사람이 부서진 도자기를 가졌다면 아름답게, 오히려 원래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되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나간 과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끝까지 붙들어 그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승화시킬만한 인내력이 없다.
애초에 부서지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부서졌다면 부서진 대로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도 그런대로 괜찮은 내가 되고 싶다. 이왕이면 부서진 것들로부터 나를 발견하는 것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얼기설기 도자기를 붙이는 동안 하염없이 몰두했지만 손이 끈적하고 눈이 매웠다. 나는 무언가를 되돌리기에는 새롭게 시작하거나 이룬 것들이 충분히 모자랐다.
연초에 가장 아끼던 소중한 찻잔이 깨졌다. 그때는 고민 없이 찻잔 조각들을 쓸어 담아 곧바로 내다 버렸다. 나는 바보 같은 행동도 해보았고 이제 킨츠키라는 기법도 알고 있다. 깨진 찻잔을 주워 담으며 괜찮아.라고 말하며 웃는데 눈물이 흘렀다.
같은 찻잔을 다시 구매하여 그것이 집으로 오던 날에는 더 이상 많은 의미들이 나에게 쌓여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