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_02

땅끝에 찌 뽕

by 호키포키

“땅끝에 발도장을 찍었다”라는 관용적인 표현을 들을 때면 땅끝에 혼자 서 있는 어떻게 생긴지도 모를 탑 앞에서, 나만큼 커다란 배낭을 멘 채 혼자 선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막연하게 흐릿한 탑의 모양은 비석처럼 네모 납작하고 아주 크고 높고 울퉁불퉁했다. 상상 속의 나는 거기 손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오래 걷자 비석과 다른 모습의 어떤 탑이 외따로 있었다. 매끈하게 마감이 된 삼각형 탑 앞에 선 나의 한 손에는 더워서 든 물병이 있었고 주머니에 차키가 있었다. 내 주변에는 중년의 남녀 여럿이 각기 서성였다.

정말 그렇게 손을 짚었다. 아주 가만히는 아니고 주변에 있는 두서너 명의 사람들을 의식하며 슬쩍 잠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싱거웠다. 하지만 이제 상상 속의 그 모습이 현실에서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