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모양

혹시 모르니까

by 호쿠시

"너는 생각이 왜 그 모양이냐?"

“혹시 모르니까.”

어이없다는 표정의 친구의 물음에 문득 궁금해졌다. 내 생각은 무슨 모양일까. 삼각형일까, 사각형일까, 모가 나있지는 않을까. 물론 생각의 물리적인 모양을 물어본 것은 아니었겠지만,

엄청나게 바리바리 싸 온 짐들을 실으면서, 1박 2일 여행 중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극단적인 혹시 모를 상황들의 예시를 듣고 있던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봐도 봐도 놀랍다.”

물론 그 짐들의 대부분은 여행을 마치고 실린 그대로 다시 내려졌다.


어린 시절부터 집이 아닌 어디론가 나설 때면 나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짐을 준비해 다녔다. 매일 변화가 크지 않은 출근길을 떠나면서도 가방 가득 채워진 수많은 파우치 속 생존키트들은 내게는 당연하게 지참해야 하는 물건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가장 용도를 궁금해하는 배낭 속 물건들 중 하나는 케이블 타이다. 일반적인 케이블 타이와 다르게 재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케이블타이는 늘 챙겨야 할 리스트에 있다. 도대체 일상생활에서 케이블 타이를 어디에 사용할 수 있냐고? 놀랍게도 최근 등산 중 정상에서 등산화 밑창이 완전히 분리되어 떨어져 정말 난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방 속에 있던 케이블 타이로 동여매는 임시 조치를 하여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물건들을 챙기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 해소의 목적만은 아니다.


1년 내내 가지고 다니며 사용할 기회가 없던 물건이라 할지라도 한 번이라도 정말 필요한 순간은 한 번은 오게 되어있다. 그 순간이 되면 내가 이렇게 사용하려고 그동안 가지고 다녔구나! 내가 옳았어!라는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맛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성취감과는 다른 영역에서 꽤 기분을 고양시켜 준다. 학창 시절에서도, 회사에서도, 가까운 사람들이

“혹시 ‘그거’ 있나요?”라고 나에게 물어봤을 때

“응, 있어요.”

“아니, 이게 도대체 왜 있는 거예요?”

하면서 번지는 그들의 놀라움과 미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도라에몽, 보부상과 같은 종류의 별명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혹시 몰라 병에 걸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대비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고, 나와 같은 사람을 아직은 만나지는 못했지만 분명 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생각의 모양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언제 한 번 정말 모임이라도 갖고 마음껏 공감의 장과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내가 매일 등교할 때마다, 출근할 때마다 가방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점차 짐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넌 참 별종이다라고 하실 때도 많았지만,

“모든 것은 준비다.”

라고 항상 준비성에 대해 강조하셨던 아버지의 말씀과

“남자는 항상 깨끗한 손수건 하나는 가지고 다녀야 한다.”

라고 말씀하시며 정갈하게 다려진 손수건을 건네주시던 어머니의 가르침과 같은 가족 문화 영향도 분명히 있다. 특히 엄마의 백에서 나오는 수만 가지의 물건들을 볼 때면 유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하며 첫 차가 생겼을 때 가장 기뻤던 이유는 엄청나게 효율적이고 큰 이동식 캐리어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픽업트럭을 사고 싶어서 반쯤 미쳐있었다. 픽업트럭 뒷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담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에 실제로 거의 구매 전 단계에 이르렀다가 겨우 제정신을 찾았다. 나의 생활 패턴 상 환경의 변화가 없는 당분간은 픽업트럭 주변에 가지 않아야 한다. 언제 다시 마음속 카탈로그가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최근 거북목 진단을 받았다. 거북이처럼 등에 짐을 지고 다닌 결과, 정말로 거북이가 되어가나 싶었다. 자꾸 담이 결리고, 근육통들이 생기는 것에 노화의 과정인 것인지 운동부족인 것인지 고민에 휩싸이고 있을 때 즈음,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찾은 의사 선생님은 여러 주의사항 속에 되도록 배낭을 무겁게 다니지 말라 당부하셨고, 내 안의 어디선가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산책을 하며 나에게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렇게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잘 챙겨주고 싶은 이타적인 면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타인의 감사, 즉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의 감사와 인정의 순간이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조금은 내려놓고 스스로 편해지면 좋겠다는 그 말을 듣고 보니 매일 이고 지고 다니는 배낭에는 나를 위한 물건들보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일 년 내내 사용하지 않았던 휴대용 반짇고리는 나를 위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조금씩 생각의 모양을 바꾸고 있다. 내 가방 속 물건들을 하나씩 덜어내고, 조금씩 나를 중심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여전히 꽤 묵직하지만 가방이 가벼워질수록 내 마음도 함께 비워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그렇게 매일 필요한 물건이 많지는 않다는 점을 느끼기도 하고, 이젠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를 위해 조금은 덜 준비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물론 혹시 모르니까 라는 생각의 모양은 변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온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고, 언젠가는 나의 생각의 모양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혹시 모르니까. 다만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기 위해 힘을 쓰지 않고, 힘을 뺀 그 자리에 다른 것들로 채워가야 할 지점이 왔음을 느낀다.


호쿠시라는 나의 이름도 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그런 이름이 아닐까 싶다.

혹시 모를 수만 가지의 가능성 앞에서 오늘 조금은 가벼워진 첫 발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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