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반증
어쩌면 꽤 오래전부터 내 의지와 무관하게, 종종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떠올리곤 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이 상상들은 차갑고 날카로워, 소름이 돋고 온몸에 힘을 주어 떨쳐내려 애쓰게 된다.
등산길에서는 정상에서 발이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바퀴가 지면을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어김없이 기체결함이나 기상이변 장면을 상상을 하게 된다, 운전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반대편 차가 중앙선을 넘어 나에게 돌진하거나, 지하철 플랫폼으로 향해 내려가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앞으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는 이 끔찍한 장면들에 대한 상상이 왜 종종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도 상상이 현실로 이어진 적은 된 적은 없었지만.
문득 떠오르는 건, 예전에 즐겨 보았던 '데스티네이션'이라는 호러영화다. 다섯 편이나 제작된 꽤 좋아하는 시리즈였는데, 보통 호러영화는 전상이 꽤 길게 남아서 자주 즐기지 않는 장르였다. 그러나 굳이 혼자, 극장의 좌석에서 점점 움츠려가며 숨조차 조심스레 쉬면서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속에서는 비현실적이지만 치밀한 상상력으로 끔찍한 시퀀스로 죽음의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나에게는 그러한 영화적 상상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결의 공포가 나에게도 밀려오는 것이다.
이런 상상들이 머리를 엄습해 올 때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라 치부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털어내는 루틴마저 생겼다. 마치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듯,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상념을 내보내는 물리적인 동작들도 실제로 꽤 도움이 되었다.
회사 점심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하러 간 곳에서, 불쑥 나의 이런 상상을 동료들에게 얘기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얘기를 듣던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의 그 시기가 행복했나 보네요."
"네?" 순간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지금이 너무 좋으니까요. 그게 깨질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것 같은데요. 이 순간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뎅,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발상이었다. 회사동료의 생각의 모양은 남다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에 대략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등산을 하면서 폐 깊숙이 들어오는 청명한 공기와 정상에서 느끼는 약간의 아찔함과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 여행지에서 와아-하고 감탄했던 풍경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적당히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면서 퇴근하는 금요일의 지하철 플랫폼 등 크고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떠오르자, 동료의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동료의 말 한마디가 나를 부드럽게 흔들며 아하 모먼트를 가져다주었다. 끔찍한 상상들이 늘어나는 건, 오히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반증이었으니까. 나에게 어떠한 정서적인 결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했던 고민이 한순간에 꽤나 꾸준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함께 있던 또 다른 동료 B 가 그때 말했다.
"나는 반댄데."
"그래요?"
"나는 죽는 상상은 안 해요, 근데 나는 가끔 다치거나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상황으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어디 고립되거나 하고 싶기는 해요. 하하."
예의 동그랗게 눈을 뜨고 경청하던 동료 A가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B 씨는 요새 힘든가 보다. 어디 잠시 정당한 사유로 회사와 가정으로부터 떠나서 쉴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겠네요."
B 씨의 표정으로 보니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듯했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떠오를 때도 있어 공감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날, 중요한 발표가 예정된 날, 그런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 못 할 것 같다고 할까...'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날 저녁 다시 문득 생각했다. 나는 평소 스스로를 행복으로 진입하는 문턱이 낮은, 행복 진입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노을 지는 햇살이 노랗게 주위를 물들일 때, 풍경 사진을 찍었는데 꽤 근사하게 찍혔을 때, 책 속의 한 문장이 마음에 와닿을 때 등 사소한 것들에 충분히 행복의 순간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자 행복하다고 주문을 외우듯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가지 생각은 늘 가지고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와 '그래서 감사하다'이다. 이 평온한 일상에 대한 감사였다. 어쩌면 이런 작은 행복에 대한 나의 인정이, 끔찍한 상상들을 알람처럼 내게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때때로 소름 끼치는 상상들이 나를 찾아오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한 번 다르게 바라보려 한다.
'혹시, 요새 나 좀 행복한가?'
끔찍한 상상이 들 때면 내가 행복한 상태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작은 신호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꾸준하게도 가족, 회사, 개인의 삶에서 수많은 신경 쓰이고 속상한 부분들은 많지만.
얼마나 좋아지려고 이래? 하는 마음으로,
꽤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고,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