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추로스와 따뜻한 커피
언젠가 글을 쓰게 된다면
첫 글은 꼭 스페인 생활이 결정된
합격 이메일을 받은 날부터 시작해야지 생각했다
스페인에 가지 않았다면 글을 쓰고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회사 일 말고 다른 일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이메일은
내 인생을 바꾸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1차 화상 면접을 너무너무 못봐서
당연히 탈락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통과했는지 다음 면접 메일을 받았고
"I am pleased to inform you that ~~“
로 시작하는 최종합격 메일을 받고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프로세스가 진행될수록
합격에 대한 기대감이 커짐과 동시에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스트레스도 같이 커져가고
어차피 떨어질 거면
차라리 처음에 탈락하는 게 낫다는 싶으면서도
한 켠 너무너무 합격하고 싶은 그런 마음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수시로 메일함을 체크하다가
토요일 새벽 최종 합격 메일을 받고 만감이 교차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살던 집을 빼고 짐을 부치고 등등
출국까지 한 달 반 여간의 치열하기 그지없던 시간은
일단 뒤로 하고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
드디어 출국
학교와 살 집을 세팅하느라 먼저 가고
남편과 아이들이 한 달 여 뒤에 올 것이므로
나는 이민가방 2개 기내 캐리어만 들고
나름 단출하게 출국했다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에서는 거의 자지 않는 편이었기도하고
또 오전 비행기인 데다
두고 온 딸들 생각에 14시간 내내 깨어 갔던 것 같다
손미나 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고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메모를 하고
와인을 계속 마시면서 ㅎㅎㅎㅎ
근 14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도착
반가워 스페인
바라하스 공항에서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회사에서 보내준 픽업 기사분이
엄청 좋은 차로 임시 숙소에 내려주셨다
키만 받고 헤어졌는데
열쇠를 못 열어서 식겁했었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렇게 저렇게 돌려도 왜 이렇게 안 열리던지
왜 유럽은 디지털 도어를 쓰지 않을까
임시숙소는 고야역 근처의 자그마한 레지던스였다
1층에 나름 유명한 인도요릿집이 있었지
침실 하나, 거실 하나, 부엌이 있고
작은 테라스도 있어서
혼자 지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근무 시작일까지 열흘 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은행계좌를 개설해야 하고
살 집, 아이들 학교도 알아봐야 하고
할 일이 많았다
다음 날부터 아침부터 에이전트와 약속이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린 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너무 배가 고팠지만
또 문 못 열까봐 그냥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에이전트와 만나기 전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근처 바를 찾아
추로스와 커피를 주문했는데
만들어둔 추로스여서인지 차가웠고
초코라떼를 따로 주문해야 되는 것을 몰라서
다 식은 추로스를 씹으며
이걸 무슨 맛으로 먹지하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커피는 따뜻했네
그게 마드리드에서의 첫 끼였다.
그리고 3년 남짓의 마드리드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