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진로에 대해 뚜렷이 아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 보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문제다. 나도 내 앞길을 잘 몰라 구만리는 돌아서 온 것 같다. 심지어 그렇게 돌아온 이 길이 (사실은 아직 선택되지도 않은 길인데도) 맞는 건지 아닌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
진로가 너무 명확하고 분명해서 앞길을 창창하게 달려가는 사람을 나는 딱 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 전 남친이다. 그의 전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전국적으로도 인정받은 실력인 만큼 그의 인생의 앞길에는 고민이 없을 거라고 항상 확신했다. 물론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이 그 앞길을 갈고 닦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세상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하지만 그런 그도 다 그만두고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가만히 앉아 수건을 접고싶단다. 원래는 고깃집이 하고 싶었는데 뭔가 더 평안한 일이 하고 싶다며 수건접는 쪽을 택했다
처음엔 그의 발언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너의 인생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남, 그래도 부럽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었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연봉으로 인정받고 더 나아가서는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을 갖고도 그는 힘들어했다. 어려워했다.
대단하고 부러워 그 어려움을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간다. 예전 간지러운 드라마 속 이민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버티라고. 그는 하루도 빠짐 없이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아슬아슬한 삶이었다. 그의 실력이 출중한 만큼 그가 맡고 있는 일들은 다 대단히 중요한 일들이었다. 그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건 그가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는 입버릇처럼 "여유를 갖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가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 스스로는 조금 내려놓고 좀 더 가볍게 지내고 싶다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 그는 언제나 최고가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일찍이 자신의 진로를 정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내 재능과 탈렌트를 알고 시간낭비 없이 그걸 계발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라서 못한다. 더구나 우리나라 의무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더욱 알기가 쉽지 않다. 다들 하라는 공부만 하고 그렇게 대학을 간다. 전공같은 건 하나 중요하지 않다. 일단 간판만 선택하고 보면 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가 그렇게 학비를 몇천 씩 날렸다. 그 돈이면 정말 더 재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을텐데.
나는 어학을 전공했다. 어학을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대학에서 무려 통번역이라는 전공을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안녕하세요~저는 한국인이라 한국말밖에 못해요 뿐이다. 그래도 저 말은 전공 언어로 열심히 외워뒀다. 저 말을 들으면 현지인들은 신나서 더 말을 건다. 몰라! 모른다고! 그만 말해!!!
아빠가 허리가 휘도록 대주신 학비는 그렇게 공중분해됐다. 심지어 나는 투고(학사경고 두 번)까지 받아서 초과학기에 매 학기 계절학기도 들었다. 역시나 쉽지 않은 딸램이다. 그 말은 돈을 어마무시하게 썼다는 말이지! 하지만 그렇게 퍼부은 돈이 모두 쓸모없게 돼 버렸다. 돈만 버린게 아니다. 내 시간도 없어졌다. 나는 대학생활로그 시간을 핵폭탄 터뜨려 뻐어엉~ 날린 사람 중 하나다.
날려버린 대학생활동안 나를 대변해준 것은 전공도 대학도 아닌, 야구와 글쓰기뿐이었다. 그 두 단어만이 나를 대표했다.잃어버린 대학생활을 메꿔주는 유일한 단어였다. 하지만이런 저런 이유로 이 마저도 포기했었다.내 앞날을 위해 나는 또 다른 길을 돌아야 했다.
야구와 글쓰기를 포기하고 도전한 건 최후의 보루였던 시험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게 시험을 준비하는 능력은 없었다. 수능이 내 인생 시험의 막차였다. 결핵이라는 장애이자 구원에 이끌려 시험까지 내려놓고 나니 아이고 죽지도 못하고 나는 뭐해먹고 사나 하는 생각을 접을 수 없었다. 병상에 누워 오롯이 그 생각만 했다. 나라는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석이 뭐가 있을까 하는 것이 유일한 고민이었다.
많은 문과생들의 고충 중 하나가 기술이 없다는 것인데, 역시나 문과쪼랩이 배울 수 있는 기술엔 뭐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서 나온 답이 우습게도 또 언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간 배워왔던 언어와는 다른 언어였다.
바로 컴퓨터의 언어다. 이 생각은 그 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전 남자친구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물론 나의 결정에 굉장히 기분나빠했다. 그리고는 날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 짓은 하지 말라며, 이 계통의 물을 흐리지 말라며! 너같은 애가 와서 일하기 시작하면 나는 놀고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해야 한다는 쓰리고 짜릿한 팩트를 마구마구 던져줬다. 하지만 뭐, 내 코가 석자인 사람에게 그런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법이다.
결국 나는 개발을 배웠다. 6개월간 학원을 다녔다. 지금 남편을 소개시켜준 언니도 그곳에서 만났다. 개발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재능을 많이 탔다. 논리적이어야 하고, 어느정도 이해력도 있어야 했다.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원인과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 없이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이 되기도 했다. 남편을 소개시켜준 언니와는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지내는데, 그 언니는 지금 최고의 연봉을 찍으며 최적의 직업을 만난 듯이 잘 지내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우리가 흔히 들어본 회사로 이직도 척척 하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그저 문과 찌질이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나에게는 논리라는 것이 내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이상한 생각 시스템을 가진 철저한 백지 창의력 타입의 뇌 소유자였다.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동반한 이야기를 즐겨 하는 내가 논리가 바탕이 되는 개발을 잘 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끈기도 없어서 코더도 못한다. 그래도 웃긴 것은 6개월이라는 교육 끝에 아이티 업체에 취직을 하긴 했다는 점이다. 더 웃긴 건 코딩실력이 아니라 글쓰기와 야구때문에 합격했다는 거다.
취직을 하고 나서 채용비하인드를 들었다. 내 이력이 너무 재미있었단다. 이력서를 재미있게 읽기는 처음이었다고. 뭐 내가 전공한 언어와 이쪽 언어는 전혀 다르지만 어차피 신입 뽑으면 교육은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니 이놈을 뽑나 저놈을 뽑나 그게 그거란다. 그래서 이왕 뽑는거 재밌는 애를 뽑았단다. 그게 뭐야.
나는 당장 일 할 곳만 구하면 됐기 때문에 뭐가 됐든 일단 취직만 하면 됐다. 하지만 역시나 나와 개발은 전혀 맞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매일 알고리즘을 풀고 디비 공부를 해댔지만, 역시나 논리 없는 내 돌머리와는 전혀 연이 없었다. 그야말로 꼴통이었다. 내 준 숙제를 다 한 뒤에는 그냥 내가 할만한게 뭐 없을까 뒤적대는 게 전부였다.그러다 회사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메뉴얼의 내용이 형편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그 메뉴얼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어색한 문장을 고치고 비문을 수정하고, 흐름이 맞지 않는 글과 설명들을 모조리 바꿨다. 이게 뭔 말인가 싶은 애들을 다시 읽고 처음 읽는 사람이 봐도 이해가 되게끔 메뉴얼을 싸그리 수정했다. 역시 그게 내 천직이었다.
회의록을 작성하고 보고서를 썼다. 그 밖에 글을 쓰는 일들은 내가 다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수습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모조리 다 글쓰기였다. 어쩔 수 없이 미팅에 모두 참여하며 열심히 회의록을 작성했다. 그런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 결국 나는 이 길을 가야겠구나. 별 수 없다. 나는 어디를 가든 결국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이구나 싶었다.결국 수습기간을 끝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언어라는 건 수학과 굉장히 흡사하다. 모든 건 답이 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다. 빈칸에 들어가는 말은 모두 정해져있다. 토시 하나라도 틀리면 그건 틀린 답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취약하다. 성실함이 부족한 것도 있고, 답이 정해진 것을 습득하는 데 굉장히 게으르다. 타고나기를 그런 걸 거부하는 기질인 것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그냥 내 입맛대로 답을 작성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전공성적은 아주 형편없다. 특히 전공필수와 같이 문법이나 강독, 시청각과 같이 반드시 정확한 답을 적어야 하는 것들은 재수강을 해도 결국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사실 이건 성실함의 문제라서 뭐라 할 말이 없다.그냥 내가 게으르다고밖에 표현할 수 가..
이런 대학 성적에서 구원을 받은 건 역시나 글쓰기였다. 글은 아무리 많이, 길게 쓰라고 해도 겁이나지 않았다. 소논문으로 20페이지 이상의 글을 작성하라고 해도, 지금 당장 3시간동안 한 문제를 가지로 a4 3장 이상의 분량으로 답변을 작성하라고 해도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분량이 초과될까 두려웠다. 정말로 그런 과목들로 내 학점은 간신히 구원받았다. 0점대 학점을 3점대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모두 글쓰기가 있었다.
36개월이 될 때까지 봄이를 내가 볼 계획이라 아직은 일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봄이의 두 돌을 맞이하면서 12개월 가량 남은 나의 커리어의 시작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사람인에 들어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곤 한다. 그게 나의 주부로서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유일하고도 가장 효능감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서, 나도 앞으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주문을 외우는 꼴이라 습관처럼 들어가곤 한다.
언제나처럼 글과 관련한 일들을 찾으며 느낀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게 뭘까. 나는 결국 글쓰기를 할테지만, 이 글쓰기를 통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게 뭘까 하는 목표와 목적 없는 글쓰기를 다시금 돌아본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사실 글쓰기가 아니어도 되겠지만, 결국 또 다시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숱한 경험은 나를 같은 자리에 되돌려놓았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또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현재에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내 용돈을 버는 수준에서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글이라 마음껏 써지지 않을 때도 있고, 쓰는 행위 자체를 멈추고 싶을 때도 있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지만 세상 어느 누가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글을 쓰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지낼 수 있겠나. 하루키나 돼야 가능할 일이지.
결국 쓰고자 하는 행위 자체에 목적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목적에도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싶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이것뿐인데. 즐겁게 글을 쓸 수는 없는걸까.
며칠이나 책상앞에 앉아 글감을 떠올리지 못해 마음이 두근대고 죄짓는 기분이 든 잉여인간의 구구절절 변명이었다. 이마저도 봄이가 울어 중간에 끊겨버려 할 말을 잊었다. 분명 원하는 결말이 있었는데, 재우다 보니 그새 까먹었다. 2시간 전 나는 무슨 말을 하고싶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