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퀴즈 온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여자 변호사분이 나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자신은 인생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새벽에 일어나는 것으로 환난을 극복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수영을 하면서 그 시기의 난관을 이겨내고, 변호사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새벽에 일어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눈앞에 놓인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성공한 지금도 4시 30분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신에게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새벽에 부여하며 생각할 힘을 기른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떻게 힘든 순간을 극복했나?' 생각했다.
나는 내면에 우울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나 스스로가 굉장히 유복하게, 쾌활하게, 밝게 자랐다고 생각해왔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나 스스로의 최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밝지 않으면 부모님이 슬퍼하시니까, 친구들이 답답해 하니까,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나니까 나 스스로 주문 외우듯이 어르고 달래 만든 '척'이었다.
이런 '척'은 나의 삶이 만만하고 괜찮을 때는 잘 들키지 않는다. 원래 내가 그런 사람 같기도 하니까. 나도 긴가 민가 느껴질 때가 많다. 문제는 내 인생 앞에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드러난다. 내면에 아무것도 쌓아놓은 것 없이 '척'만으로 살아온 사람은 대개 폭풍우가 몰아치면 종이인형처럼 쉽게 젖어버리고 흘러가버린다. 매일을 '척'하며 살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에 생각지 못한 태풍이 닥쳤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몰랐고, 무얼 해야하는 지도 몰랐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젖어갈 뿐이었다.
'인생의 난관'이란 건 다양하다.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내가 내린 기준은 '내가 내 의도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무언가에 의해 생긴 것'이다. 그래야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가 좀 편해지니까. 내가 선택해서 결과가 좋지 않은 건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억울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대개 나는 그랬다. 후회가 싫어서 내가 저지른 일은 결과가 나빠도 귀엽다고 여기고 말았다.
누군가는 부모를 잘못 만나는 것에서 인생의 난관을 맞고, 또 누군가는 무모하게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를 만나 인생의 난관을 맞고, 또 누군가는 누군가 무심코 버리고 간 담배꽁초로 인해 난관을 맞곤 한다. 나의 경우는 오빠였다.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오빠를 잘못 만나면 인생이 꽤 서글프다. 어려서는 맞느라 슬프고 커서는 욕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클라이막스는 오빠같은 사람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바로 새언니다.
새언니는 내 머리채를 잡고 나를 못살게 굴었다. 오빠는 자고 있는 내 방에 들어와 조용히 살라며 뭐라뭐라 알아듣기 힘든 욕을 하곤 했다. 나한테만 하면 참 다행인데, 새언니는 엄마까지 때렸다. 나는 새언니가 집어 던져 부셔진 핸드폰을 쥐어 들고 경찰서로 달려가기도 했다. 지구대원들이 나를 가운데에 두고 둘러 앉아 따뜻한 차를 내주시며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셨지만, 결론은 대부분 집안 일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 집에서 나를 지켜주지 못해 달려간 지구대도 별 소용 없던 셈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죽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다. 목을 매기도 하고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죽고 나서 절규할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사라지질 않는다는 핑계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았다.
밝은 '척'을 하며 살던 나는 진짜 난관에 부딪히자 그걸 이겨낼 힘이 없었다. 이 난관은 내가 원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앞이 보이질 않았다. 내가 엄마를 지켜줄 수 없는 것도 너무 서글펐다. 아빠가 은퇴를 했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무시를 당하는 걸 보기만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왜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쌓아놓지 않고 이렇게 빈 깡통처럼 살고 있었을까? 무력감에 시달려 겨우 생각해낸 게 자살이라는 종착역이었다. '척'하는 사람의 무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내게는 생각보다 꽤 많았다. 새언니가 들어와 내 인생을 본격적으로 어질러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기 이전에도 많은 아픔과 충격들이 있었다. 새언니가 만든 난관 외에도 긴 기간 만나왔던 남자의 배신, 친구라 여겼던 지인의 뒷통수 등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일들이 켜켜이 쌓일 때마다 나는 항상 허우적댔다. 상처는 아물기도 전에 흙으로 덮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프지 않은 줄 알았다. 흙으로 덮은 상처는 곪고 닳아서 더 이상 살이 아니게 되었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했다.
이제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내 내면의 상처가 아이에게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강박도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척'하며 살기 보다는 나 스스로를 드러내고 치료하고 극복해서 나만의 힘을 쌓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이 안 되고, 문장의 나열이 어색해도 그게 내 어설픈 마음이겠거니, 하며 일단 적어내려갔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이내 지우곤 했다. 쓴 글을 지우고, 또 쓰고. 내 마음의 상처가 깊어질 수록 글은 길어졌지만, 이내 나 조차 읽을 용기가 없어 컴퓨터 뚜껑을 덮곤 했다.
용기를 내보려 한다.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어디든 털어놓고 싶었다. 혹시 그 사람들이 보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일단 적고 본다.
인생이 힘들 때, 나는 일단 적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언젠가 다시 보면 '별것도 아니네!' 하는 이야기가 나올 거란걸 저는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