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화이글스라는 팀을 응원하게 된 사연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대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화이글스의 연고지는 대전이다. 그 곳에서 태어나 17년을 살고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내 인생의 딱 반절을 살아난 곳이다. 대전.
슬픈 건 막상 그곳에 살 때는 한화를 그렇게 응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학생일 때만 해도 나는 야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남들처럼 공부보다는 남여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시험기간이랍시고 독서실을 끊어놓고 새벽 3시까지 남자친구였던 중학생 친구와 아무 곳에나 앉아 노가리를 까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그냥 평범한(?) 중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야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건 2006년부터였다. 한화는 이 때 구단의 절정을 맞이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야구라는 것이 좋은 성적만으로는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야구단의 매력은 다양한 요소에서 나온다. 구단이 가지는 이미지나 구단을 이루고 있는 선수들의 매력과 각각이 풍기는 냄새가 팬들의 팬심을 자극하고 열정을 끌어 올린다.
그 당시 한화이글스의 냄새는 톡톡 튀는 사이다같았다. 현재 괴물로 불리는 류현진이 신인으로 데뷔를 하던 해였고, 송진우를 비롯한 구대성, 장종훈 등 레전드들이 막판 스퍼트를 올려 좋은 성적을 내던 때였다. 한화라는 구단이 잘 하기도 했지만 각각의 선수가 꼭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각자의 소설을 썼다. 06년 한화의 시즌 성적은 4위에 불과했지만, 가을야구에 진출한 한화는 갑자기 불꽃 열정과 패기를 보이며 장렬하게 준우승을 했던 멋진 해였다.
사실 그 때 나는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즌 내내의 소소한 경기내력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때를 시작으로 해서 한화에 대한 사랑이 피어났다. 슬픈 일이다. 정점을 찍은 순간부터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걸 의미하는 건데.. 과거가 없이 높은 지점에서 시작한 사랑은 꽤 기구하다.
한화의 역사는 거기까지인 듯 했다. 08년도에 들어서 당시 주요멤버였던 김태균 이범호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이 팀을 이탈해 올림픽 경기를 뛰는 데 정신이 없었고, 결국 시즌 성적은 5위로 마무리 지으며 4위까지만 진출할 수 있는 가을야구에 가지 못하게 됐다. 이것이 한화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한화는 그 때부터 잿가루가 되어 하염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9년, 한화는 팀 역사상 첫 꼴찌를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8개의 팀이 경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간 한화는 가장 못해도 7위에 머무르곤 했다. 꼴찌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팀의 역사라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 지금 당장 못하더라도 잘 하는 팀은 그 DNA가 팀 안에 박혀 있다. 지금 10:0으로 지고 있더라도 10:11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지금의 두산이 그렇다.
하지만 한화는 그간 잘 길러온 팀의 리빌딩에 실패했다. 2009년 팀을 지탱해오던 레전드들이 줄줄이 은퇴를 하면서 팀을 지탱할 정신적, 물리적 선수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조금만 기우뚱 해도 쉽게 무너졌다. 그런 패배의 기록들은 쌓이고 쌓여 꼴찌라는 결과를 낳았다.
모든 운동들이 그렇겠지만, 팀은 이번 시즌만을 위해서 팀을 운영하지 않는다. 다음 해를 위한 선수를 준비하고, 또 그 다음해를 위한 팀의 전력에 대비한다. 야구선수들의 직업적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다. 이르면 19살, 늦으면 24살에 시작하는 야구선수의 수명은 길어봐야 40살이다. 그것도 아주 잘하는 선수에 한해서만 그렇다. 실력이 받쳐주지 않거나 부상을 당하면 30살이라도 야구를 그만둘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야구팀들은 매번 백업선수를 발굴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 뛰는 선수들의 뒤를 이을 선수들을 찾고 또 육성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옵션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야구경기를 하는 것만이 프로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육성 또한 하나의 경기인 셈이다.
하지만 한화는 그 과정을 놓쳤다. 육성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로 돈이 없어서라는 말이 많았지만, 뭐 난 잘 모른다. 결과만 볼 뿐이다. 09년 한화에는 선수가 없었다. 소년가장 류현진만 남아 팀을 지탱하고 있었다. 5선발로 로테이션을 돌리는 한화의 승패기록이 승패패패패 승패패패패 승패패패패로 기록돼 있다는 건 아마도 야구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일 테다.
소년가장 헨진이는 큰 돈을 안겨주고 떠났습니다.. -mbc espn 당시 경기영상
슬프게도 06년 시작된 나의 한화 사랑은 꼴찌의 삶이 시작된 09년에 꽃을 피웠다.(그때만 해도 금방 회복할 줄 알았다.) 그 때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수능준비를 하고 공부를 하느라 눌러왔던 야구사랑 본능을 그 때야 제대로 터쳤다. 야구를 보고 야구를 탐닉하느라 전공공부는 뒷전이었다. 동기들은 공부에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 동기들의 눈에는 내가 좀 별나보였을 것 같다. 별나보였을 것 같은게 아니라 실제로 별나게 봤다. 한 소리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 다녀서 너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수업을 빼먹고 매일 야구를 보러 갔다. 야구 동호회에 가입하고 공만 주으러 다녔다. 경기에 가서 경기 기록을 하며 야구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야구를 팠다. 전공수업은 매번 F였지만 나는 한화의 경기기록을 외우다시피 복습하고 학습했다. 그렇게 공부했으면 진짜 벌써 성공했을 것 같은데..(웃음..ㅎㅎ..)
그렇게 학교 다녀서 너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라는 문장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입으로 자주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야구를 저딴식으로 해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해? 이러다 구단 없어지게 생겼네"따위의 문장 말이다. 야구를 보다 보면 험한 말이 자주 나오곤 한다. 내 모습도 오징어를 씹으며 욕설을 날리는 아저씨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꼴찌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매일매일 욕 할 일이 좀 많다.
아무튼 그런 야구사랑 덕에 이 얘기도 글로 수만번 옮겨 적었다. 내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한화의 역사도 같이 안다. 한화가 얼마나 대단한 팀이었는지, 얼마나 매력적인 팀인지, 원래 이런 팀이 아니었다는 걸 알리느라 꽤나 수고로운 일들을 하곤 했다.
그런 야구에 관심이 떨어지게 된 건 새언니의 횡포를 만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고, 정말 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다. 한화를 좋아하면서 슬픈 감정이 나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한화의 모습이 나와 비슷해보였기 때문이다. 과거가 아무리 화려한 들 무슨 소용이야. 과거를 빛내던 선수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무수한 멋진 기록들이 한화의 역사를 빛낼지언정, 그것은 현재에는 이미 끊긴 기록이다. 현재의 새로운 역사는 과거와는 사실 크게 관련이 없다. 육성에 실패한 구단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선수들이 오지 않는다. 돈으로 선수를 채워보려는 시도도 이제 먹히지 않는다.
나의 모습이 한화에 비치는 것 같아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화는 꼴찌에서 나오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초반엔 격렬하게 경기를 하며 꼴찌를 했지만, 지금은 무력하게 당연한 꼴찌가 되고 있다. 야구팬들도 초반에는 열정적인 꼴찌에게 많은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날이 갈 수록 무기력한 꼴찌들의 당연한 패배는 지루한 경기만 남겼다. 비난조차 하지 않는 팀이 되었다.
한화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은 보살이란 게 사실은 크게 좋은 의미같지는 않다. 붓싼 싸나이들과 가시나들처럼 격렬하게 저항하고 욕도 하고 쓴 소리도 부어야 한다. 우리의 민주항쟁 역사도 그렇지 않나? 틀린건 아니라고 소리쳐야 한다. 하지만 보살이랍시고 허허 웃으며 좋은게 좋은거라며 충청도 냄새 풀풀 풍겼더니 11년이라는 대단한 성적이 이제는 8위 꼴찌가 아니라 10위 꼴찌가 되었다. 그 사이에 두 팀이나 새로 창단했는데도 그들보다 못한 팀이 되었다.
그런 한화를 돌아보며 자꾸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11년째 리빌딩하는 팀, 11년째 리빌딩에 실패하는 팀, 11년째 무기력한 팀, 11년째 꼴찌가 당연한 팀
2020년 한화가 18연패를 끊으며 모두가 눈물을 흘릴 때의 사진이란다.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내가 다 감동스러움..ㅠㅠ -연합뉴스 사진
이건 나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하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삶이란 그런 거라면서 나의 패배감을 인정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나를 다독였다. 다독이는 건 네가 할 일이 아닌데말야..
결혼을 하면서 그런 무력한 경기를 보는 게 싫어 야구를 보지 않았다. 3년이란 시간동안 야구를 안 본건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두산팬이었기 때문에 더욱 야구가 보기 싫었다. 하필 꼴찌와 1등이 만나 할 말이 더욱 없어지곤 했다. 아무리 꼴찌라도 내 편은 내 편이다. 못해서 내가 욕하는 건 별 문제 안되지만 남편이 욕하면 그건 남편을 후려 칠 문제였다.
그렇게 그만 둔 야구팬 보살을 다시 시작하게 된건, 한화가 팀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을 데려올 만큼 리빌딩에 대한 의지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해도 작년과는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선수가 전혀 보강되지 않았고, 그간 육성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선수풀이 그대로일터였다. 선수놀이, 특히 투수로 놀음하는 스포츠는 감독이 달라진다 한들 크게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한화라는 팀의 도전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다르게 팀이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선수를 운용하고 경기를 진행할까? 여태 보지 못한 투지를 이제는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씩 설렜다. 인터넷 첫 화면에서 스포츠란을 제외한지 오래였다. 앞으로 스포츠뉴스는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마음을 고쳐 다시 스포츠뉴스를 앞으로 꺼내왔다. 한화의 소식이 조금씩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나도 조금씩 변해보려 노력중이다. 그래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뭐라도 쓰기 위해 항상 생각이란 걸 하려는 중이다. 봄의 이야기도 쓰고 남편의 이야기도 쓴다. 하지만 나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는 걸 알았다. 과거 나의 전부였던 야구라면 나의 얘기를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야구얘기는 좀 간결하게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길고 긴 지루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 보니 여전히 나는 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
야구경기를 보고 있으면 희노애락이 다 담겨 있다. 소리지르고 환호하고, 기뻐하고 좋아하다가도 욕설이 난무하게 된다. 인생의 흐름을 경기에서 모두 보는 것 같다. 예전에 기사를 쓸 때는 사실 기반의 이야기를 쓰느라 사실 고생이었다. 나는 객관적인 이야기에 조금 취약한 편이다. 기사를 쓸 때마다 내 감정이 스며든 기사를 보는 게 나 스스로 민망했다. 모든 구단의 이야기를 다루곤 했지만 자꾸 드라마처럼 이야기가 나와 곤란했다. 다시 지우고 또 쓰기를 반복하곤 했다. 경기 자체가 드라마같은 걸 어쩌란 말야
앞으로 여기 쓰여질 한화와 나의 이야기가 지루한 9이닝의 이야기가 될지라도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문을 열어본다. 한화도, 나도 꼴찌인건 괜찮아. 하루하루 한 뼘씩만 자라보자. 보살인생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