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hyeonju Jun 24. 2021

혼자의 시절은 끝났다

나를 넘어서서 나를 돌아보다 - '엄마'가 된 나의 일기


  세상에 나 하나만 있었을 땐 내 삶의 관심은 온통 나에게 쏠려 있었다. 때로는 넘칠만큼 과하다 싶다가도 가끔은 그것도 부족하단 생각이 들만큼 나는 욕심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했고, 해야 하는 일이라도 하기 싫을 땐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치워버리곤 했다. 


혼자라는 것은 책임질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책임지고 보살필 사람이 나 하나라는 뜻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야하는 책임을 뒤로 하고 어떤 것이 최선인지조차 가려내지 못한 채로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서른을 보냈다. 


나는 나조차도 버거워 나만 알고 살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럴 줄 알았다. 





  인생은 A에서 출발하여 B에 도착하는 직선이 아니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대전제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띄어쓴 칸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따라서 모두는 각각으로 구분된다. 앞으로 간 것을 뒤로 물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조용히 묵묵히 앞으로 가고 있다. 


  어떤 영화 주인공의 집안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겪었던 시간 속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마법의 능력이 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는 믿음을 가진 그는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려 ‘최고의 순간’을 만들었고 결국 이상형인 여자와의 연애, 결혼에 성공한다. 예쁜 딸 아이도 낳는다. 그러다 여동생이 사고로 크게 다치게 되자 그는 시간을 되돌려 사고를 막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간을 되돌린 영향으로 아기가 바뀌어 버린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일어난 일’을 일어나게 만들기 위해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딸을 다시 품에 안는다. 그리고 다시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 


맨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정작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 장면이, 부모가 되고나니 가장 와닿는 장면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우리는 살면서 좋은 일들만 많이 일어나길 바라지만, 살다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쯤은 이만큼 살았으면 잘 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삶의 시점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하루를 수십 번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할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그 누가 다른 시간을 살고 싶겠는가. 




  나만 알았던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다. 똥을 길가에 두면 오물일 뿐이지만 밭에 두면 거름이 되듯이- 그래도 그 방황 끄트머리에서 뭐라도 해봐야지하는 그 마음만은 남았다. 내 옷에 달린 주머니가 달랑 두 개 뿐이라고 불평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그 주머니에 구멍이라도 안 난게 어디냐 싶게. 감히 나조차도 어쩔 도리가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혼자였던 시절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던 나는 이제 딸바보 겁쟁이가 되었다. 있지도 않은 자식*을 걱정하던 나는, 이제는 자식이 있어서 걱정이다.


 눈을 뜨면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라고 생각한다. 그 누가 육아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지옥이라고 했던가. 부은 눈으로 쪽잠을 자며 아기와 복작거리는 하루, 귀를 때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이 쿵쿵 울릴 때도 있다. 그럴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건 당장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도 그 순간이 지나면 후회와 자책만이 쌓일 뿐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차라리 나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면 편안해진다. 나조차도 내가 버거우면 잠시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아기를 키우면서부터 그 시절 나는 어땠을까 또 나의 엄마는 어땠을까를 매순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가 전부였던 나는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면서 나로 한번 더 살아가는 느낌이다. 나의 어린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엄마의 마음을 다잡는다.


  혼자의 시절은 끝났다. 내가 돌보아야 할 것은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니다. 이제는 최선이 아니면 안 된다. 나의 하루가 더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 이미 오늘 하루를 살았던 것처럼 겸허하고 무던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자. 가끔은 뜨겁게 행복하고 때로는 눈물로 차갑게 식더라도, 하루의 끝에서 나를 토닥일 줄 알자. 



*있지도 않은 자식을 걱정한다는 말은 작가의 브런치 미디움 웰-던 라이프

"딸, 엄마, 며느리 - 잊지 못한 딸이 있지도 않은 딸에게" 중 의 내용을 언급한 것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