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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hyeonju Jun 27. 2021

엄마는, 우리는 괜찮아

너도 커서 너 같은 딸 낳아보라던 잔소리를 듣던 딸이 엄마가 되었다



  자정을 기점으로 금식에 들어갔다. 몇 초를 남기고, 마지막으로 얼음물 세 잔을 연달아 벌컥벌컥 마셨다.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몇 시간 뒤면 달라질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밤을 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래 시계를 뒤집은듯 긴 밤은 순간에 아침으로 바뀌어 있었다. 곧바로 일어나 샤워를 했다. 며칠동안 씻지도, 머리를 감지도 못할테니 이 기분을 잘 기억해둬야지.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의 촉감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예정보다 두 시간 일찍 병원에 도착해 수속을 하고 병실에서 기다렸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가는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고 엄습하는 불안에 마주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을 피했지만 막상 제대로 인사를 못 하면 서운할 것 같아 눈인사라도 하기로 했다. 여전히 애틋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그 존재감이 나를 금세 진정시켜주었다. 나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따 봐!


  수술방에 들어가 마취를 기다릴 때까지 딱 한가지 생각 뿐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저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바람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한다. 아기는 수술 시작 8분 만에 세상에 첫 울음을 내질렀다. 거즘 한 해를 꼬박 기다린 우리의 작은 아가를 보고도 울지는 않았다는 남편은, 회복실로 온 나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나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모든게 잘 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다 괜찮은 건지 묻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 뒤는 마취가 덜 깼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리려면 계속 말을 해야 한다고해서, 남편은 자꾸 내게 말을 걸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자꾸 맥북 비밀번호를 알려줬다고 했다. 

  단어를 이어 말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는데, 심지어 그 통증마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남편이 아기의 첫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줬다. 핸드폰 속 아기는 내가 그렸던 것보다도 너무 작고 귀여워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데리고 왔다. 남편에게 여기저기 이상은 없는지, 건강한지 확인시켜주고 곧이어 내 팔에 안겨주었다. 머릿속이 수많은 느낌표로 가득 찼다. 아기는 조금 보채는가 싶더니, 뱃속에 있을 때 배를 토닥이며 불러주던 그 이름을 두세번 불러주었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나는 꼭 감은 두 눈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어제의 나를 칭찬했다. 페인부스터를 하기로 한 건 모르긴 몰라도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통주사며 수액이며 양 팔에 꼽고있으려니 몸이 배겼다. 그래도 아기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에, 시키는대로 열심히 몸을 좌우로 굴리고, 돌리고 돌렸다.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바늘로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헛기침을 자주 해야 몸 안에 남은 마취약이 빠진다는데, 배에 힘이 들어갈때마다 찢기는 듯한 통증에 몸이 떨렸다. 산후 조리는 진작부터 남편이 해주기로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날 것의 상태로 내보여야 한다는 것에 괜한 굴욕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손가락 발가락 몇 마디를 빼면 도무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이 몸을 전부 맡긴다는 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패드에 땀이 차고, 복대가 조금만 눌려 있어도 배가 찌릿찌릿 아려왔다. 남편은 그런 나를 살뜰하게 챙겼다. 혈관통 때문에 손이 떨리고 고개를 숙이기가 힘들어, 끼니마다 미역국 말은 밥을 호호 불며 떠먹여 줬다. 


  미역국에도 생각보다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고기, 닭고기, 바지락, 홍합 등등. 그래도 오징어는 너무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숱한 입원으로 여러 병원 밥을 먹어봤지만 아무리 병원 밥이 다 거기서 거기래도 미역국에 오징어라니. 생전 처음 보는 조합이었다. 웃음이 났다. 나이 서른이 넘어 누가 먹여주는 밥을 먹다니. 남편은 내게 전생에 큰 죄를 지었을까 아니면 내가 남편에게 큰 사랑을 줬던 걸까. 기왕에 그럴거면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길 바라야지. 나는 이 생에도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사랑할 것 같으니까. 


  쩍-하고 둘로 나뉠 것만 같은 몸뚱이를 일으키는 연습을 했다. 혼자서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해서 남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수유를 시작했다.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데 아기를 한번이라도 더 보는 핑계로 부지런히 수유콜을 받고 왔다갔다 했다. 그래도 수술한 산모 중에서는 꽤나 회복력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이게 남편이 주는 사랑의 힘이라고 굳게 믿었다. 흔히들 임신했을 때 겪는 설움이 평생 간다고 하던데, 반대로 받은 사랑 역시 평생 가겠지. 지금까지의 기억으로 남은 평생을 살라해도 충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편은 내게 날마다 더 큰 사랑을 주고 있지만.



  엄마는 잔소리를 할 때면 늘 너도 커서 꼭 너 같은 딸 낳아봐라 했다. 그리고 나는 옛날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댔다고 자식이 부모 맘을 다 알면 괜히 자식이냐고 쏘아붙이던 망나니였다. 삶에 있어 나보다도 더 큰 존재가 생긴다는 걸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남편과 나를 닮은 아기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조차도 싹 달아난다. 속싸개에 폭 둘러쌓여 방끗거리는 우리 아기. 처음 그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아니 작고 작은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던 그 순간부터 나의 크립토나이트, 아킬레스건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랬듯 언젠가 적잖이 속을 썩일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괜찮을거다- 이제 막 부모 맘을 알아가는 중인 자식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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