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여름휴가
1년 여만에 예전에 살던 곳에 가볼 기회가 생겼다.
다녔던 병원에 들러 볼일을 보고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생각했다.
이 쪽에 사는 E한테 연락을 해볼까, S? 아니면 Y?
이사 온 후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진 친구들 몇몇이 떠올랐지만
다들 가족과 보낼 것이 명확한 토요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평소 혼자 하고 싶었던걸 하자 싶어
일단 극장에 가서 ‘헤어질 결심’ 2회 차 관람을 했다.
두 번째 보니 보이는 것이 더 많고, 행여 있을지 모를 잔인한 장면에 대한 불안함도 없어서
이전보다 영화가 더 밝은 톤으로 느껴졌다. 이 영화 알고 보니 유머 코드가 많았네!
W 없이 혼자서 극장에 간 것도 정말 오래간만의 일이다.
그 자체가 낯설고 신선한 경험으로 느껴졌다.
20대 땐 혼자 극장 가는 게 취미였는데,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달라진 나 자신을 실감한다.
그다음엔 슬렁슬렁 백화점 구경을 했다.
예쁘고 새로운 것들이 자꾸만 나를 유혹한다.
‘나는 많은 것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야. 이런 옷, 가방, 신발을 걸치고 갈 곳도 없다고!’
애써 재워둔 물욕이 잠에서 깨어나려고 꿈틀거리는 것 같아 얼른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사로 인해 떠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던 동네 도서관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곳의 안부가 궁금했다.
도서관 근처에 살 때엔 오히려 도서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다.
집에서 대출 기간 동안 느긋하게 읽을 생각으로 책을 빌려오거나 반납하는 곳으로만 활용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도서관에 충분히 머물렀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사전 정보가 없는 책을 펼쳐 들고 책 속에 빠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자체로 만족감에 몸 전체가 빵빵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만의 짧은 여름휴가를 완벽하게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