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ESHOOP 리슙
Sep 30. 2024
날 친구라고 했다. 나도 두 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최근까지 만나본 결과 그 사람과 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각자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가 상이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좋은 친구나 건강한 관계는 경청과 호응, 질문 세 가지가 적절하게 오고 가는 사이이다. 가식적인 아첨 말고 순수하고 진심 어린 호기심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7:3]까지 치우쳐도 괜찮다. 어쩌다 가끔 상대방을 저 밑바닥에서 꺼내야 하거나 같이 어둠 속에서 손을 잡아줘야 할 때는 [10:0]이어도 된다. 그럴 때는 전적으로 적극적인 경청자가 된다. 온몸과 마음으로 힘을 실어 듣는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 마음을 티끌만큼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다. 그런 만남은 헤어지고 나서도 후회가 없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도리어 뿌듯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와의 이번 만남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만남에서 전부 제시간에 도착한 적이 없었다. 첫 번째 만남 때는 장마라서 1시간 반 늦었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 뒤의 만남도 연달아 그러니 더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출근은 정시에 잘하던데. 그리고 만나는 내내 그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쏟아졌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드문드문 건네던 질문으로 짐작해 보건대 지금의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게 확실했다. 내가 이미 몇 년 전에 시들해진 관심사에 한정하여 나를 볼 뿐 현재의 내겐 무관심했다. 그에 비하면 직업명마저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난 이유는 첫 만남 때 지고 갚지 못한 어떤 마음속의 빚이 계속 남아있던 탓이었다. 그래서 만나는 내내 그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친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열심히 귀담아듣고 공감하고 부탁받은 대로 도왔다. 돕는 동안은 딱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로써 그에게 진 빚을 상쇄했다고 이제는 떨쳐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쉽지 않다. 탐탁지 않은 역할에 부응하느라 쏟은 시간과 에너지가 못내 억울해서인지 내가 도구였다는 기분을 쉽게 떨쳐낼 수 없다. 진심이 담긴 관심과 구체적인 질문을 조금이라도 받았더라면 그를 마음 편히 좋은 친구로 뒀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크다.
빨리 이 숙취가 없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