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07 뮤지컬 《그레이 하우스》 김지온 & 최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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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절망 끝에 한 사람은 피를 택했고 한 사람은 먹을 택했다. 전자는 피동적이고 후자는 능동적이다.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게 인간일 테지만 현실은 자주 선택받은 자의 특권으로 둔갑된다. 선택받지 못한 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위험에 처하는데, 그 길이 하나밖에 없을 때 삶은 가장 비극으로 치닿는다. 관심 밖의 삶을 택한 적도, 택할 수도 없던 그는 벼랑 끝에 내몰려서야 소멸할 자유를 얻는다. 그런 전자를 다시 살려놓는 건 먹을 택한 후자. 소리 낼 수 없던 새들은 활자의 숲에서 다시 태어났고 비로소 마음껏 노래를 부른다. 더 이상 무언가를 동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존재 그 자체로서의 기쁨에 겨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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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레이 하우스》의 '제롬'을 보며 소설 《파친코》의 '노아'를 떠올렸다. 피부처럼 들러붙은, 단 한 번도 원치 않았던 이중성을 벗겨내고자 둘 다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인정받을 수 있던 존재감이 오래도록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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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언니 덕에 좋은 극을 많이 봐왔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질투를 느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런 극에 출연하여 저런 필모그래피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부러웠다. 동시에 공개 오디션을 따로 거치지 않고 먼저 선택받을 수 있는 배우들과 치열하게 부딪히고 존재해야 하는 배우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도 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