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와 재키를 둘둘 말아 접이식 카트에 담고 셀프 빨래방으로끌고 간다. 연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4대 있는 건조기가 모두 돌아가고 있다. 부지런한 1인 가구들. 결제 후 불림코스 30분, 건조30분을 선택한다.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끄적인다. 핸드폰은 괜히 정신만 산만해지니 진작에 엎어놓는다. 기다리는 시간이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딴짓할 명분이 생겨 기분이 좋다. 다만 퇴근한 직후라 서서히 눈꺼풀이 씀벅거린다.
한 시간여의 시간이 흐르고 '-삐, 삐, 삐, 삐-'.
마침내 들리는 종료음.갓 나온, 퐁 솟아오른 따끈한 새 이불을 얼른 끌어안고 싶어 바로 문을 연다. 훅 덮쳐오는 열기.늘 이 순간에 사로잡힌다. 빵 굽는 수고의 10분의 1도 안될 노동시늉만 해도 얼추 비슷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니. 희한하게 옷은 새로 빤다고 새 옷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이불은 새로 빨기만 해도 새이불 같다.발효가 잘 된 빵처럼 따끈하게 부푼 이불을 건조기에서 얼른 꺼낸다. 팔뚝까지 뜨끈해지는 황홀한 이 기분. 일순 모든 게채워진다. 한여름에도 이런 찰나의 뜨거움이 좋다. 마치 뙤약볕에 달궈진 차에 바로 올라앉았을 때처럼. 쿠키반죽도 이런 기분일까.찰나의 즐거움을 만끽하자니 어느새 시계는 밤 11:58. 몽롱하다.그래도 할 일을 하나 해치워 다행이다. 새로 빤 이불을 덮고 자면 밤새 새 마음이 자라겠지.
나에게는 몇 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중 '새 마음'이란 기둥을 참 좋아한다. '새 마음'을2021년 봄에 구매했던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새 마음으로-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에서 직면한 후 여태껏 기둥이자 거울로 삼아 왔다. 처음 독서 후 2년이 흘렀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여전히 새롭다. 아마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새로우리라. 지금도 첫 번째 인터뷰어인 이순덕 님(이대목동병원 응급실 청소를 27년 이상 해오고, 한 달에 네 번 쉴 때마다 목욕 봉사를 다니시는)을 볼 때마다 주체하기 어렵다. 금세 울컥한다.이어서 나오는 윤인숙 님이야 말해 뭐 할까.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어쩜 이리들서로닮았는지 신기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터뷰속 그들이내가 아는그들과 겹친다. 활자 위로 수많은 도로와 외로운 차선이 그어진다. 20년 넘게 불빛이 명멸하는도로를 새벽 1시까지 운전하며홀로 수업을 다닌 엄마가 그려진다.
인생은 달라도 생은 같다. 각자의 초침이라 할지라도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죽음을 향해간다. 나는 초침 어딘가에 무한히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공간에 들어가고 싶을 때마다 뛰고, 사색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쓴다.
감히 서로의 생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계산 없는 복을 줄 수 있는 복 받은 자들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똑같은 24시간을 살아도 누군가의 숨과 마음을 살리는 사람들, 선거나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이미 영웅인 수많은 영웅들을. 나는 그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내 세상의 기둥들이다.겨우 마주칠 때마다 또렷하게 인사하거나 관련 청원에 열심히 동의를 누르고 댓글을 달뿐이지만(이제는 글로나마 더 끄적일 수 있다) 그래도어떻게든 지지할 것이다. 피상적인 봄날이 아닌 당신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이고따뜻한 봄날을 염원한다. 나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 내가 잘 살려면 당신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굴뚝같이 믿는다. 안희선, 안현선, 윤인숙, 장병찬, 김경연, 김혜옥, 이영해, 채수아, 문는, adhdcafe, 해피유쌤, 과학전공선생님, 학교선생님에서 새로 교육업을 하시는 작가님,설빛, Rae kim, 유위아이, 레오, sunny, 웅쉬, 보선그리고 이위록. 이외에도 수많은 님들. 모두 자주 행복하게 사시라(출간을 앞둔 빨양c 작가님처럼 꼭 한 번 다른 작가님들 이름을 넣고 싶었다).그밖에 이름만 모르는 수많은 그대들, 기필코,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