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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창업 후 1년-1

가족 사업은 가족끼리 싸운다

by LEESHOOP 리슙



몇 달 전부터 턱관절이 삐그덕 댄다. 오른쪽 턱이 유독 쑤신다. 밥 먹을 때 턱이 반만 벌어진다. 그 이상 벌리고 싶어도 아파서 안된다. 자려고 누웠을 때도 조금만 턱 주변 근육을 움직이면 불편하다. 고2부터 재수생까지 나를 괴롭혔던 스트레스의 부산물이 다시 올라왔다. 그것도 10여 년 만에. 반가운 사람이면 좋으련만 질환은 전혀 반갑지 않다. 그 뒤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대체 스트레스는 어떤 원리로 관절 이상의 기폭제가 될까.

가만 보니 2016년 1월 가까스로 한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멀쩡히 잘만 달리던 그때 처음으로 극심한 발뒤꿈치와 아치 통증으로 한동안 달리지 못했다. 졸업 후 면접을 보고 합격한 첫 직장이었다. 한 달 동안 13명 이상의 사람이 그만두고 회의 때마다 대표가 담배를 태우고 노동청에서 끊임없이 전화가 오던 그런 곳이었다. 한 달 반 다니고 그만뒀다. 매도 처음 맞는 게 낫다지만 호됐다. 20대 사회 초년생은 쓰레기 같은 회사에 다녔던 자신도 쓰레기 같다는 착각에 잠식당했다. 마음이 그런데 몸이 우뚝 서 있을 리 만무했다. 몸도 마음의 늪에 고스란히 빠져들었다. 그래서 다리에도 병이 났으리라. 후 같은 부위가 그만큼 아픈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근의 턱관절 통증은 생애 통틀어 공식적으로 스트레스가 준 세 번째 병이다. 첫 번째는 입시이고 두 번째는 직장이었다면 세 번째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고 싶어 시작한 일과 스트레스는 반비례하지 않는다. 인생은 상 100%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거다.

열아홉 살, 스무 살 렵 무조건 목표하는 곳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재수를 했고 원하던 곳에 나름 멋지게 들어갔다. , 거기까지. 대학 생활은 전혀 멋지지 않았다. 3학년 1학기 휴학 전까지 남들 앞에서 마음 놓고 활짝 웃어본 적이 얼마나 될까. 얼굴마저 갈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가 극도로 밉고 원망스러웠다. 오해할까 이야기하는데 얼굴을 간다는 건 성형을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뜯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우울한 사실이다. 다행히 휴학이라는 제동을 걸면서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있지도 않은 죄로 비롯된 거운 죄책감을 내 속에서 내 손으로 직접 밀어냈다. 즐거울 때면 당연히 즐거워도 된다는 안도감, 스스로의 웃음부터 책임져야 하다는 의무감 차차 터득해 갔다. 어린 시절 잊어버렸던 자연스럽게 웃는 방법이 마침내 생각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 안 쓰고 어떻게 보일지 전혀 눈치 보지 않는 편안한 웃음을. 자기혐오와 열등감, 비교 의식으로부터 스로를 분리해 낸 자신이 나름 멋지고 대견다. 안 그랬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다.

휴학 시절 디자인 말고 '딴짓'들이 큰 도움이 됐다. 그중에는 엄마와 함께 1년 가까이 다닌 합창단도 좋았다. 모두 엄마 또래셨는데 같다고 좋게 봐주셨다. 덕분에 주눅 들지 않고 복학 전까지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새벽마다 엄마와 함께 한 산책도 좋았다. 땀 흘렸던 작은 성취들이 모이고 모여 자아 안정감을 튼튼히 어줬다. 오후에는 혼자 한번 더 산책을 다녀왔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서히 뛰기 시작했.




엄마와 대학 시절은 물론 그 전과 후에도 좋은 추억 감정이 수도 없이 많았. 유대감도 었다. 그렇기에 학원 사업도 망설임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마나 보기 좋은가.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사업. 합창단도 해봤으니 학원도 당연히 잘하겠지.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가족과 사업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당신이 30년째 보고 온 사람이라도 일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접하게 된다. 가족은 팀이 아니다. 때로는 타인이 훨씬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그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상 세 번째 스트레스성 질환의 원인은 사업 파트너, 엄마와 충돌이었다. 금이야 잘 지내지만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갈등이고 고통이었다. 하지만 한 번은 꼭 부딪혔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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