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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HOOP 리슙 Jul 31. 2023

학원 창업 후 1년-1

가족 사업은 가족끼리 싸운다



몇 달 전부터 턱관절이 삐그덕 댄다. 오른쪽 턱유독 쑤신다. 밥 먹을 때 턱반만 벌어진다. 그 이상 벌리고 싶어도 아파서 안된다. 자려고 누웠을 때도 조금만 턱 주변 근육을 움직이면 불편하다. 고2부터 재수생까지 나를 괴롭혔던 스트레스의 부산물이 다시 올라왔다. 그것도 10여 년 만에. 반가운 사람이면 좋으련만 질환은 전혀 반갑지 않다. 그 뒤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대체 스트레스는 어떤 원리로 관절 이상의 기폭제가 될까.

가만 보니 2016년 1월 가까스로 한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멀쩡히 잘만 달리던 그때 처음으로 극심한 발뒤꿈치와 아치 통증으로 한동안 달리지 못했다. 졸업 후 면접을 보고 합격한 직장이었다. 한 달 동안 13명 이상의 사람이 그만두고 회의 때마다 대표가 담배를 태우고 노동청에서 끊임없이 전화가  그런 곳이었다. 한 달 반 다니고 그만뒀다. 매도 처음 맞는 게 낫다지만 호됐다. 20대 사회 초년생은 쓰레기 같은 회사에 다녔던 자신도 쓰레기 같다는 착각에 잠식당했다. 마음이 그런데 몸이 우뚝 서 있을 리 만무했다. 몸도 마음의 늪에 고스란히 빠져들었다. 그래서 다리에도 병이 났으리라. 후 같은 부위가 그만큼 아픈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근의 턱관절 통증은 생애 통틀어 공식적으로 스트레스가 준 세 번째 병이다. 첫 번째는 입시이고 두 번째는 직장이었다면 세 번째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고 싶어 시작한 일과 스트레스는 반비례하지 않는다. 인생100%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을 거다.

열아홉 살, 스무 살 무조건 목표하는 곳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재수를 했고 원하던 곳에 나름 멋지게 들어갔다. , 거기까지. 대학 생활은 전혀 멋지지 않았다. 3학년 1학기 휴학 전까지 남들 앞에서 마음 놓고 활짝 웃어본 적이 얼마나 될까. 얼굴마저 갈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가 극도로 밉고 원망스러웠다. 오해할까 이야기하는데 얼굴을 간다는 건 성형을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뜯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우울한 사실이다. 다행히 휴학이라는 제동을 걸면서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있지도 않은 죄로 비롯된 거운 죄책감 내 속에서 내 손으로 직접 밀어다. 즐거울 때면 당연히 즐거워도 된다는 안도감, 스스로의 웃음부터 책임져야 하다는 의무감 차차 터득해 갔다. 어린 시절 잊어버렸던 자연스럽게 웃는 방법 마침내 생각.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 안 쓰고 어떻게 보일지 전혀 눈치 보지 않는 편안한 웃음을. 자기혐오와 열등감, 비교 의식으로부터 스로를 분리해 낸 자신이 나름 멋지고 대견. 안 그랬으면 지금 나는 없었을 테다. 

휴학 시절 디자인 말고  '딴짓'들이 도움이 됐다. 그중에는 엄마와 함께 1년 가까이 다닌 합창단도 좋았다. 모두 엄마 또래셨는데  같다고 좋게 봐주셨다. 덕분에 주눅 들지 않고 복학 전까지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새벽마다 엄마와 함께 한 산책도 좋았다. 땀 흘렸던 작은 성취들이 모이고 모여 자아 안정감을 튼튼히 어줬다. 오후에는 혼자 한번 더 산책을 다녀왔그로부터 몇 개월 뒤 서히 뛰기 시작했.




엄마와 대학 시절은 물론 그 전과 후에도 좋은 추억 감정수도 없이 많았. 유대감다. 그렇기에 학원 사업도 망설임 없이 결정할 수 있었다. 마나 보기 좋은가.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사업. 합창단도 해봤으니 학원도 당연히 잘하겠지.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가족과 사업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당신이 30년째 보고 온 사람이라도 일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접하게 된다. 가족은 팀이 아니다. 때로는 타인이 훨씬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그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상 세 번째 스트레스성 질환의 원인은 사업 파트너, 엄마 충돌이었다. 금이야 잘 지내지만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갈등이고 고통이었다. 하지만 한 번은 꼭 부딪혔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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