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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HOOP 리슙 Aug 08. 2023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삶

편지를  필사하다

생일이다. 이제 몇 분 뒤면 생일은 다시 저만치 떨어진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한번 더 살아있기를.


올해는 이해하고 행할 여력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예전보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랬기에 당연히 기대도 안 했다. 아니, 절대 해서는 안 됐다. 혹시나 그러면 가 도둑놈이라고 스스로에게 윽박질렀다. 

얼마 전 만난 모임에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완전히 제쳤다고 믿은 기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알고 지낸 10여 년 넘짓한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서운한 감정이 일었다. 비슷한 장면이 또다시 재생됐다. 아, 맞다. 몇 년 전에도 이랬었지. 잊고 살았던 어렴풋한 경험과 그때 느꼈던 동일한 감정이 시간을 거슬러 겹쳐졌다. 당장 벗어나고 싶었다. 그다음도 쭉 혼자만의 생일을 보냈고 싶었다.




 그들은 매 생일을 성실하게 챙겨 이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번 축하받은 기억으로 두 번의 서운한 생일은 기꺼이 묻을 수 있 것 같았다. 렇게 마음먹어지지 않더라도 억지로 해야만 했다. 기필코 상쇄리라는 의무감 붙들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비워다. 그리고 나는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나를 다시 소생시킨 건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가족사업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가족이 말이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역시 크로아티아 속담처럼 신은 한 개문을 닫으면 백 개의 문을 열어주신다. 그뿐이랴, 간단한 안부인사조차 먼저 건네지 못했던, 만난 지 최소 몇 개월 이상 된 이들에게 긴 장문의 카톡을 받았을 때 어찌나 기쁘고 미안하던지.


작년 영어회화 클래스에서 만난, 나와는 10살 넘게 차이나는 침착하고 이지적인 친구, 재작년에 퇴사하고 이제껏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팀원, 세련된 닉네임을 지닌 언어와 멋진 레오까지. 혼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살짝 겸연쩍어졌다. 나는 아직도 한창 멀었다, 제대로 깊어려면.




오늘을 위해 새로 주문한 노트가 제시간에 도착했다. 아직 남아있는 외롭고 쓸쓸한 구석을 마저 채우고자 오늘은 편지를 필사하려 한다. 책을 필사한다는 생각만 해봤지, 이제껏 받은 편지를 필사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이것들만큼  따뜻하고 뚜렷한 문장도 드물 텐데. 등잔 밑이 어두워도 한참 어두웠던 나는 연필을 든다. 편지를 받아볼 수 있는 삶, 받은 편지를 필사할 수 있는 삶이라니. 생각보다 아주 근사하다.



p.s. 얼마 전 근원적 외로움이라는 적확한 단어로 나의 외로움을 달래, 벅차게 힘든 때를 보내고 있는 친구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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