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러 가는 한낮의 시내버스 안.근로자의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붐빈다. 대뜸 거친 욕이 들린다. 기사님이다. 뒷문 카드 리더기에 누군가 연속으로카드를 대서 거슬리셨나 보다. 안내음성('이미 처리되었습니다')이 대여섯 번 반복된다. 오죽 힘들었으면 저렇게 성을 내실까.이런 날은 도로도 혼잡하니 운전도 배는 힘드셨겠지.나에게 한 욕이 아니란걸 안다. 그렇지만 나는 괜히 죄스러워진다. 자주 타던 운전석 바로 뒷자리가 새삼 불편해진다. 순간 엊그제의 글이 스쳤다. '그저께 나도 기사님의 욕 같은 글을 쓴 게 아닐까?' 애꿎은 사람을 괜히 좌불안석하게 만드는 그런 글을. 낯이 화끈거렸다. 아무 죄도 없는, 오히려 시간 내서 부족한 글을 읽어준 고마운분들한테 뭔 짓을 한 거지. 부끄럽고 민망했다. 이 글을 빌어 사과드린다. 이제 새마음으로 다시 쓰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주칠 때 옛적부터 그리워하던 고향에 당도한 기분이 든다. 가본 적 없는 고향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먹먹해지고 여려진다. 그럴 때는 내가 잠든 새 감정만 그 사람을 만나고 와서 알고 반기는 건가 싶다.이렇게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감정이 공감일 것이다. 얼마큼 비슷하게 느낄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나는 가능한정확하고 온전하게 느끼고 싶다. 최근에 나를 뭉클하고 부드럽게 만든 이야기는 하와이춤을 추는 '하야티' 님이 인스타그램에 쓴 <훌라당 창당을 기념하여> 글이다.나는 하와이춤을 춰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데 읽고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yaatiismove
이런 글은 읽고 나면말랑 따뜻해지면서외로움이한 움큼 줄어든다. 이때 외로움의 재질을 알아채는데 외로움은 대체로 딱딱하고 무겁다. 외로움이 줄어들면 자유가 나풀 내려앉는다.자유는 감사도 같이 데려온다. 자유와 감사는 한쌍이기 때문이다. 감사할수록 자유롭고, 자유로울수록 감사하다.2023년 4월에는 자유도, 감사도모두 다 잊고 지냈다.잊은 줄도 몰라서 그냥 없는 것만 바라봤다. 무력감과 절망감이 사무쳤다. 팔이 접히는 안쪽 바로 위의 푸른 혈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구체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라며 유혹하는 혈관.그러다4월 29일과 30일에 곁에 있던 고마운 친구두 명(한 명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지만 여하튼) 덕분에 눈길을 들어 다른 곳을 바라볼 수있었다. 5월의 차창 밖을 보게 해 준다정한 그들에게 감사하다.
그냥 자신의 것을 있는 그대로 꺼내되, 무턱대고던지지 않고살뜰하게 다듬어 글로건네주는 다정함도 있다. 그런 다정함들이 모여있는 곳이 내게는 브런치이다.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전하기 위해 골몰하는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한다. 글을 읽을수록 나는 다정함에 물들면서 둥글해진다. 나를둥글게 만드는 글은 한 곳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수필, 문학, 과학(아직도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인문학, 철학, 인터뷰, 뉴스기사, SNS, 영어 문제 지문까지. 만나고자 하면 어디서든 만난다. 그중 예리한 정과 망치 같은 글은 어디로 굴러가고 어떻게 굴러가야 할지 알려주고, 따스하고 먹먹한 글은 계속 굴러가게 해 주면서 나와 같은 다른 공들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5월은 그냥 가볍게, 덜 심각한 공으로 둥글게 굴러가려 한다. 느리든, 말든다시 한번 굴러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