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던 분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4월 말에 갔던 넷째 이모네 이후로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기는 오랜만이었다. 누군가 직접 요리하고 차려준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맛있게 먹은 식사였다. 얇게 저민 오이와 빵 위에 올린 잠봉, 그리고 후식으로 먹은 얼그레이 가루가 버무려진 복숭아가 맛있었다. 먹고 나니 몸과 마음이 차올라그날의 하늘에 닿을 듯했다. 언젠가 보낸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 기분이 어렴풋이 났다. 나른하고 평화로웠다.원목장 위의 레몬밤 향기는싱그러웠고 아이의 사랑스러운 미소는 간지러웠다. 편안함을 주는 사람의 공간은 주인과 닮아 타인을 포근히 감싸는 힘이 있다. 그런 곳에서 맛보는 정성은 그저소중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기분좋은 브런치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 근래 자주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계속 경험했다.그래서 그렇게 끌렸나 싶기도 하다. 여기서는 1,500원에서 3,000원 사이의프랜차이즈 커피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제대로 시간을 들여 만든 정성'이다. 1,2분이면 바로 뽑아낼 수 있는커피머신과 달리 이곳에서는 최소 7분 정도는 기다려야 잔이 채워진다. 그러고 나서도 3분을더 기다려야한다. 그때비로소 커피를 마시기 가장 알맞은온도가되기 때문이다.자칫 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10분 정도면 바리스타의 공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충분히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 또막상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보다 보면 시간은금방 지나간다.특히 왜필터 속 원두를스푼으로자분자분 눌러야 하는지, 왜 왼팔은 뒷짐을 진 채오른팔로만 주전자를 들어야 하는지도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리고궁금증의 절반 이상은처음 머금는 한 모금이 말없이 답변해줄 것이다. 여러모로 커피를 '차린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카페이다.
핸드드립 까페 <Gentle Kettle>
한창 어렸을 때는직접 요리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마땅히 집주인의 미덕이고 의무라생각했다. 엄마의 맛있는 요리도 당연했고명절날의 고된 노동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나이를 먹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그 모든 게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스스로의 몫만 차려먹기도벅찼다. 평일은 퇴근하고 오느라 바빴고 주말은 주말대로 쉬기 바빴다. 그래서 내게는 수저 하나 더 놓아타인의 먹을 몫까지 기꺼이 챙기거나 스스럼없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이멋져보였다.
나가서 먹든 시켜먹든값을 치르고 사 먹는음식에서도 정성을 맛보기란쉽지 않은 일이다. 정성은 생각보다 특별하다. 주기도, 받기도 어렵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연히라도 정성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기분 좋을 수가 없다. 마치 선물과도 같다.
내가 줄 수 있는 정성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비록 요리는 어렵지만 고맙다는 표현은 얼마든지 잘할 자신이 있다. 특히 꼬박꼬박 제때에 하는 인사가 중요하다. 만일 그날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은 메시지로라도 꼭 건넨다. 나 같은 경우 SNS에 올리는 사진이 단순히 자랑하려는 인증샷이기보단 고마움의 표현일 때가 많다. 집에 직접 초대받은 경우엔 조그마한 선물을 함께 챙겨간다. 상대가 들인 시간과 수고에 비해 약소하더라도 고마운 성의를 표할 수 있다. 사실 이 정도는 평소 스스로에게 쏟아붓는 정성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당연하면서도 충분히 할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