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새로 들어오는 아이 못지않게 예상 밖의 틈새로 나가는 아이도 다분하다. 학원을 한 지 어느덧 1년.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일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잦은 이별이라 하겠다. 몇 개월이라도 가르쳤던 아이 한 명이 그만두면 아무리 연달아 문의가 들어와도 좀처럼 씁쓸함이 쉬이가시지 않는다.
A라는 학생은 6월 즈음 왔다. 처음에는 수학과 영어를 같이 하려다 영어는 안 맞는다고 하여 한 회 수업 후 그만뒀다. 그 뒤로 수학만 계속 들었다. 그러다 9월 중순, 수학 선생님이 나에게 A가 고민이 많아 보이니 잠깐이라도 상담을 해줄 수 있냐 여쭤보셨다. A와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중3인 A는 어떻게 진로를 잡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공무원도 괜찮고 최근 법의학자에도 관심이 생겼다 했다. 그러면 먼저 법의학자 관련도서를 같이 읽어보자고 했다. 진로탐색을 위한 최고의 가성비로 책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15분짜리 유튜브는 너무 짧다).
그리고 A는 이제껏 소설책만 즐겨 읽고 인문•사회나 과학, 철학 같은 분야는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비문학(독서) 글을 조금씩 봐두어야 내년에 만날 고등국어에 겁먹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유성호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4주 동안 세 차례에 나눠 읽고 간단한 감상을 나눴다. 부담 없는 분량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화제가 책에서 점점 A의 개인사로 자연스레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 주, 한 주 A와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속에 있는 이야기가 하나씩 꺼내질 때마다 있는 힘껏 마음으로 귀 기울였다. 그만큼 이 친구가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올겨울의첫눈이 내린 오늘
A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한낮동안 들이닥친 갑작스러운 행정 업무와 시험 대비로 정신이 없었다. 입술이 바싹 말려들어갔다. 진이 빠져 팔이 후들거렸다. 곧 있을 수업을 위해 억지로라도 밥 몇 술을 떠야 했다. 그렇게 원장실에서 급하게 식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한창 수업 중인 수학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수학 선생님이A에게 인사하는 반가운 목소리. A에게 교실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실 참이었나 보다. A는 원래 그다음 차례 수업이었다.
'저, 학원 끊으려고요.'
A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물건을 환불하러 마트에 온 손님 같았다. 이윽고 수학 선생님의 당혹스러움과 탄식이 섞인 음성이 상담실로 가는 발자국 소리로 이어졌다. 몇 분 후 선생님이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A가 학원을 그만둔다 했다고, 나보고 얘기 좀 해보라고.
A에게 물어봤다. A는 요즘 계속 울면서 숙제를 했다고 했다. 그냥 공부를 하기 싫단다. 혹시 수학 선생님과 안 맞는 부분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건 전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좋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아예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이해하려 노력했다.그래, 너의 마음이 지옥이었구나. 그렇게 급하게 통보할 정도로. 뭐가 급했을까 궁금했다. 그럴 거면 그냥 전화나 문자를 하지 싶었다. 아무래도 같이 학원 앞까지 따라온 친구가 오래 기다릴까 걱정됐나 보다.
급하게 삼킨 밥이 깔끄러웠다.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환불 안내를 했다. 원래는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교육청에서 지정한 학원 규정에 따르면 수업일이 절반 이상 지나면 환불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A는 처음과 달리 아무 말이 없었다. 마지막 마음까지 털어 남은 수업 3회를 환불해 줬다. 일자로 다물렸던 입술이 곧바로 계좌번호를 읊었다.
아이를 원망해서 뭐 하겠냐 싶지만은 오늘만큼은 넋두리를 하고 싶었다. 만남만큼 이별 방법도 평범하길 아니 그냥 똑같기를 바라는 게 욕심일까. 맨 처음 전화로 문의했던 것처럼 전화나 문자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중학생이면 어른은 별로 상처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별로 잘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의 나까지 나서려 한다.아서라. 너도 A처럼 그 나이대에 그랬겠지.